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잔소리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공부를 진짜 너어어어무 안 했더니 몇 마디 듣긴 했지만... 사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한다'는 사실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공부도 하고 싶으면 했고, 놀고 싶으면 놀았으니까. 그러한 선택들 중에 다행인 점은 내가 다치거나, 남을 다치게 하거나, 내가 힘들거나, 남을 힘들게 하는 모든 행동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부모님으로써 큰 걱정을 안 했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못 견딜만한 선택을 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큰 반대도 없으셨다. 하다못해 내가 8살의 나이에 '더 이상 피아노 학원을 다니지 않겠다'는 결정에도 반대하지 않으셨으니 어쩌면 조금은 독특한 가정에서 자란 게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도 있겠다.
알을 처음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던 것이 18살의 일이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못해도 한두 달에 한 번은 꼭 우리 집에 놀러 왔고, 한때엔 거의 매주 오다시피 했으니 우리 부모님에게 알은 두 번째 딸이나 다름없었다. 그 친밀감을 토대로 알과 나 그리고 우리 엄마까지 셋이서 함께 해외여행도 다녀왔으니 우리 집에서 알을 걱정한다거나, 알과 함께 사는 나를 걱정할 리 만무했다. 거기에 매 약속마다 일찌감치 준비하고 약속시간 10~15분 전에 도착하는 것을 좋아하는 알의 근면 성실한 부분은 우리 어머니의 최애 부분 중 하나였으니 알과 함께 살면 '지각 안 하면 다행'인 인생을 사는 내가 더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부분도 있었다고 한다. 결과는 놀랍게도 그냥 각자 다른 시간을 산다는 데에 있지만...
나와는 달리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은 알은 부모님과의 담소에서도 재치 있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심지어 따로 살고 있는 지금도 가끔 집에 놀러 갈 때면 알도 함께 와서 맛있는 밥을 먹자고 하시니 생각보다 더 높은 친밀감이 아닌가.
딸, 딸친구, 엄마
앞서 말했듯 우리 집은 잔소리가 없는 편이었는데 결혼 문제에도 마찬가지였다. 꽤 많은 가정에서 자녀가 일정 나이를 넘기면 애인의 유무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듣는다고 하는데 나는 맹세코 단 한 번도 집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남자 친구가 있냐, 데리고 올 거냐, 결혼은 언제 등등 나에게 있어 결혼과 관련된 질문들은 드라마 속에서만 들어봄 직한 말이었는데 - 아마도 20대 초반에 집을 한번 뒤집어엎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난 뒤, 명절날 친척집에서 드디어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생긴 것은 꽤나 드라마틱한 경험이었다.
"너는 결혼 안 하냐?"
나이를 물은 뒤 -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 태반은 내 나이도 잘 모른다 - 훅 치고 들어오는 비수 같은 질문. 너무 안 들었던 내용인 데다가 그때가 한참 TV에서 '명절날 결혼 얘기 물을 거면 100만 원 주면서 물어봐라' 같은 우스갯소리가 퍼졌을 때여서 그런지 나는 가벼운 목소리로 "네, 안 해요."라고 말하며 웃어넘겼다. 왜 안 하냐는 질문이 따라왔을 땐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요."라고 말했지만 보통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일단 결혼만 하면 일이 알아서 풀린다'는 식의 응수가 되돌아오지만 나는 그런 추상적인 미래를 그리는 쪽엔 소질이 없어서 한 귀로 듣고 흘리며 가정에서 이런 질문에 시달리는 청년들을 향해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그런 부모님도 나의 결혼에 아주 관심을 끊었는가 하면....
“난 결혼은 안 하지 싶은데.”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나면 해야지.”
“이 나이에 좋은 사람은 이미 다 결혼했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얼마 전 - 진짜 몇 달 전 - 이런 대화가 오고 갔으니 부모님도 '완전한 포기'는 안 하셨다는 자체 결론을 내렸다. 말을 안 하셨으니 몰랐을 뿐 '좋은 사람 만나면 가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가 남아있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이 생활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과 살림을 하는 데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지만 말이다.
한때 어머니는 “너희 둘이는 같이 다니는 이상 절대 남자 친구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중이다. 솔직히 지금처럼 잘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하늘이 내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가 아니냐며 서로에게 자평하는 이때에 별도로 다른 사람을 인생에 들인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컴컴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부모님은 나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