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같이 살면서 생긴 변화는? 1

<뇽> 내가 집순이가 될 줄이야

by 뇽알

나는 스스로 역마살이 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밖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외식을 좋아하고, 카페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했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지금도 좋아해 마지않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까지 집에 있고 싶어 했던 적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웹디자이너라는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듯 나는 야근과 거의 한 몸인 사람이었다. 어쩌다 한번 '제시간'에 퇴근하면 오히려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방황할 정도로 야근이 당연시된 직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으니 야근을 하는 데 있어 큰 불평 없이, 그냥 으레 그려려니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내가 야근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잔업이 있다면 불평 없이 회사에 남아 저녁 먹고 밤 11시까지 야근하고 택시 타고 귀가하기도 했던 내가 '우리 집'이 생긴 이후 서둘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은 잔업을 집으로 가지고 오는 한이 있어도!

회사 경비를 소진하겠답시고 몸에 좋지도 않은 배달음식과 각종 조미료로 요리된 외식으로 공짜 저녁을 때우기보단 잘 맞는 친구와 함께 수다 떨며 간단히 하는 저녁이 훨씬 즐겁고, 식사를 하면서 회사에서 화났던 일, 답답했던 일을 풀어내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독립 이후부터 평일 저녁은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약속을 잡지 않게 되었다. 회식도 최소한 전날 통보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당일에 갑작스럽게 잡힌 게릴라 회식은 집에 일이 있다는 핑계로 피하게 됐다. - 집안일에 대한 구체적인 사연은 어떻게든 만들면 그만이다 - 그와 동시에 집에 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혼자 살면 외로워서 그런가 보다 싶기라도 하지,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 왜? 그럴 거면 결혼은 왜 한 거야? 사실 이 부분은 지금까지도 도무지 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모두 행복하길 바라며 미래를 그리지 않는 것일까?


코로나의 긍정적인 작용 중 하나는 회식을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집에 보내줘라!


또 바뀐 점 하나는 부모님과 살 때는 TV에 관심도 없었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보는 채널을 어쩌다 같이 보는 정도였는데 - 보고 싶은 방송은 컴퓨터로 다운로드하여 보곤 했다 - 지금은 적극적으로 채널을 찾아서 틀고, 너무 조용한 건 싫다며 어떻게 해서든 백색소음을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TV로 유튜브 채널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난 뒤 ‘카페 음악’ 등의 채널을 찾아서 듣기까지 하는데,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알은 백색 소음이 없으면 집중을 못하는 나를 보고 자신의 아버지가 떠오른다며 웃었지만 나의 선택에 반대를 한다던가 하는 일은 다행히도 벌어지지 않았다. 알은 뭔가에 집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잘 모르고, 웬만한 소음도 딱히 방해가 되지 않으니 나에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다만 알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니 나는 너무 밝은 조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라식수술을 하면서 내 동공 크기가 다른 사람들의 평균에 비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때문인지 빛에 취약해서 금방 눈이 시리고, 빨리 피곤해지며, 매우 맑은 날엔 1~2시간만 외출해도 두통에 시달린다. 때문에 나는 컴퓨터 작업을 할 때만큼은 어두운 환경에서 모니터 불빛 만으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알은 이것만큼은 이해를 못하고 눈 나빠진다는 이유로 항상 불을 밝게 켜 놓는다. 처음엔 밝은 환경이 어색했고, 집중하고 싶은 대상 외의 것이 너무 많이 보여 집중을 못했지만 지금은 옛날에 비해 밝은 조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알이 자거나 부재중일 땐 메인 조명을 꺼놓는 등 다시 어두운 환경으로 만들어 놓곤 하니 아마도 알이 알면 원치 않게 내 눈 건강을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난 그전에 비해 말이 상당히 많아졌다. 부모님과 살 때는 이렇게까지 많은 말을 했던 것 같지 않은데 - 퇴근 후 인사 이외에 한마디도 안 했던 적도 있다 - 요즘은 친구가 옆에 있다 보니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물론 대화가 없다고 불편하거나 어색한 사이는 아니지만, 같은 경험을 공유한 만큼 하고 싶은 말도 더 많아지는 법인지 최근의 이야기를 했다가 10년 전 이야기로 넘어가거나, 어떤 연예인 이야기를 했다가 갑자기 <무한도전> 이야기로 흘러가기 일수이다. 알과 나는 <무한도전>을 10년 넘게 함께 봐오면서 수많은 명장면을 함께 기억하고 있어, 무한도전의 명대사를 동시에 이야기할 때가 많은데 이건 같은 콘텐츠를 즐긴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것이라 우리 둘만의 개그코드가 되어버린 셈이다.


뇽알의 삶을 대변하는 무도짤


하지만 이렇게 같이 사는 사람과 잘 지낸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끔은 혼자 있고 싶다고 느낀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는데, 같이 살게 된지 1년 반 정도가 지났을 시점 너무나 혼자 힐링하고 싶었던 마음이 커 혼자 2주 동안 뉴욕으로 떠난 적이 있었다. 같이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인 데다 알을 혼자 집에 두고 떠나는 것도 마음이 영 편치 않았지만, 그땐 왜 그렇게 혼자 뉴욕에 가고 싶었는지, 왜 그렇게 훌쩍 떠나고 싶었는지, 왜 그렇게까지 공항에 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14시간의 비행 끝에 혼자 떨어진 뉴욕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입국 수속에 평소보다 2배나 긴 시간이 소요됐고, 택시비를 셰어 할 일행이 없는 나는 대기시간으로 인한 추가 비용까지 들여가며 숙소까지 오는 택시비를 비싸게 지불해야 했다. 도착한 숙소는 4인실이었지만 비수기였던 탓에 그 공간을 혼자 쓰게 되었고, 비가 그친 다음 날 아침부터 진정한 ‘나 홀로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30대 초반에 거의 혼자 - 룸메이트 및 하우스메이트가 있었지만 - 돌아다니며 생활했던 경험이 있다 보니 이번에도 혼자 생활하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차피 모두 익숙한 길이고, 아는 곳이고, 어느 정도는 대화가 통했으니까. 하지만 홀로 떨어진 이국땅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심했다. 낯선 이에게도 조금은 친절했던 뉴욕 사람들도 옛날같이 않게 변했고 -트럼프 정권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혼자 있으면 곧잘 말 시키는 문화도 사라졌다. 길에서 갑작스레 재채기하면 ‘Bless you’라며 복을 빌어주는 문화도 거의 사라졌고, 심지어는 은은한 인종차별까지 자리 잡고 있으니 오래된 추억 속의 뉴욕은 이미 죽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야 비로소 알의 빈자리가 많이 느껴졌다. 같이 있었으면 덜 외롭고, 덜 심심하고, 덜 서러웠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허전함이 더해졌다. 거기에 기쁜 일이 없으니 체력까지 쉽게 바닥이 나는 건지 조금 걷다 벤치에 앉아 쉬기를 반복했는데, 그때의 시간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무의미한 나날에 가까웠다. 물론 꿈꿔왔던 행복한 힐링의 시간도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 떠나기 전 Bryant Park에서 멍 때리는 시간을 갖고 싶어 했다 - 틈틈이 힘듦, 심심함, 무료함이 찾아와 굳이 한국시간으로 알이 깨어있을 시간쯤에 메신저를 붙잡고 이런저런 사진을 보내며 수다를 떨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혼자서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완전히 변해버린 것이 아닌가!

여행 갔다 왔을 뿐인데 환영의 메시지를 준비한 알


그렇게 2주 정도를 완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이후 난 이전처럼 ‘혼자 여행 갈 생각’ 따위는 아예 접어버리게 되었다. 그전까지 경주도 부산도 속초도 뉴욕도 혼자 제법 잘 돌아다녔으면서 알과 몇 년 같이 산 사이 알이 없는 시간들이 어색해졌고, 무료해졌다.

“안동 가고 싶다.”

“날 풀리면 가자.”

간단한 당일치기 여행이라면 그녀 없이도 가능할 텐데, 난 요즘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나의 사소한 것을 알리길 좋아하고, 알아주길 바란다. 아주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이었던 내가 친구와 같이 살면서 이렇게 변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뇽>

keyword
이전 21화친구랑 사는거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