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기 전에는 누군가 퇴근 후의 일정이나 주말 계획을 물어보면 최소 동네 카페나 극장에 갈 거라는 이야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주저 없이 집이라고 답한다. 매 주말이 지나면 SNS에 주구장창 밖에서 돈 쓴 얘기만 올려놓던 내가 한동안 잠잠하게 있자, 지인이 요샌 왜 어디 갔다는 얘기가 없냐고 물었다. 심플하게 답하자면, “집이 최고야!”라고 하겠다.
물론 독립 이후 카페나 극장 혹은 여행 일정을 완전히 접어버린건 아니지만, 독립 이전 주말 일정의 기본값이 외출이었다면 지금은 확실하게 집으로 바뀐 것이다. 주변에서는 정말 금송아지라도 숨겨놓은 것처럼 집으로 곧장 달려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나는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독립하기 전에는 그렇게 밖으로만 돌았던 주제에, 인간이란 참 간사하죠. 알고 보면 ‘집’이 최고인 게 아니라 내 마음대로 통제가 가능한 ‘내 집’이 최고인 것 같다. 치우는 만큼 깨끗해지고, 인테리어에 내 취향을 완벽하게 반영할 수 있고, 집에 오자마자 눕든지 잘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있든지 간에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다. 예고 없이 찾아와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불청객 또한 없다. 대신 입맛 없을 때 같이 배달 음식을 먹거나 예능을 보면서 같이 웃을 사람은 있다. 이만하면 집으로 곧장 갈 만한 조건이 아닌가. 전자는 독립과 동시에 당연하게 주어지는 혜택이라면 후자는 동거인과 성향이 잘 맞아야 가능한 것인데, 다행히도 나는 같이 살기 전에 nnn번의 베타테스트를 거친 파트너와 함께하게 된 덕분에 ‘집이 최고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둘이서 조립한 드레스룸 가구. 힘들었던 만큼 애착이 간다.
집에서 특별식을 만들어 먹거나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을 때도 좋지만, 다소 고생스런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서도 뿌듯하니 좋고 주말에 대낮이 되도록 나란히 소파침대에 누워있다가 <출발! 비디오 여행>을 봐도 좋다. 이게 뭐 별일이냐 싶겠지만 독립하기 전에는 별일이었다. 기껏 열심히 청소했는데 알아주기는커녕 금방 어지르는 사람이 있질 않나, 원치 않는 아이템이 내 방 인테리어로 갑자기 합류하거나, 멍하니 누워 있자니 누군가 방문을 벌컥 열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식사도 원하는 메뉴를 원하는 때에 먹을 수가 없을뿐더러, 나중에 먹으려고 쟁여놓은 비장의 간식이 나도 모르는 순간에 사라지는 일도 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양보의 연속인 것인데, 더 많이 양보하는 부모님이나 오빠보다 내가 훨씬 못 견뎠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딱 저 닮은 자식을 낳아서 유별난 인간과 함께 사는 고통이 어떤 건지 느껴보길 기원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나는 자유를 찾아 떠나버렸다. 그것도 본인 못지않게 유별나지만, 희한하게 잘 맞는 친구와 함께.
가끔 뇽은 나란히 앉아서 빨래를 개거나 각자 소일거리를 하다가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는 아르키메데스 마냥 “나 지금 너무 행복해!” 하고 외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놀라지도 않고 “나도!”하고 화답한다. 무엇 때문에 날벼락 같은 행복을 느꼈는지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휴일 낮에 볕이 잘 드는 카페 창가에 앉아 책을 읽거나, 행인 구경을 하면서 차를 홀짝일 때의 평온함이 내 집에 깃들어 있으니 행복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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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생긴 변화가 있다면, 청소에 열의를 갖게 된 것이다. 우선 새집에서 오염도 0의 상태로 시작하는 바람에 조금만 더러워져도 눈에 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동력이요, 또 한 가지는 뇽의 결벽증 덕분이다. 뇽은 처음 만난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바닥 결벽증을 달고 살아서, 웬만해서는 실내에서 슬리퍼를 벗지 않고 식당 선정 기준도 맛보다 청결도가 앞설 정도로 민감하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의 나는 정기적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통을 비우기는 했지만, 평상시에 바닥 상태를 유심히 보거나 세면대의 물때를 의식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 나에게서 굳이 결벽증이라고 규정할 만한 요소는 손을 박박 씻는 것과 설거지할 때 그릇을 여러 번 헹구는 정도인데, 그게 지켜지지 않는다고 해서 잠이 안 올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니다 -
그러나 장판과 타일이 온통 하얀 집에 뇽과 함께 들어온 다음부터는 청소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화장 지우기도 귀찮은 평일 저녁에 싱크대 얼룩과 방바닥 머리카락이 눈에 띄면 훔쳐내야 안심이 되고, 씻고 나서는 반드시 유리닦이로 타일에 튄 비눗물을 밀어내야 속이 시원하다. 장판을 훔치다가 흠집을 발견하면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락스 묻힌 휴지를 덮어놓고 칫솔로 박박 문질러가며 헹궈도 끝내 완벽 제거에 실패한 줄눈 곰팡이 때문에 욕실 세제 광고만 나오면 눈을 못 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검색창에 ‘줄눈 곰팡이’를 쳤다가 또 처음 보는 제품에 혹했다. 뇽에게 이야기했더니 “너 또 인스타 봤지?” 하고 비웃음을 샀지만, 인스타 아니다. 인테리어 커뮤니티다. 쳇!
옷을 갈아입고 아무 데나 대충 걸쳐놓는 버릇이 종종 튀어나와 행거와 서랍장 정리는 마음 잡고 해야 하지만, 전반적인 청결도는 자취생 평균 이상이라 자부한다. 최소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우리 집 결벽쟁이에게 칭찬을 듣는단 말이다. 여기까지 쓰고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내 자부심에 상처를 내는 머리카락과 웬 얼룩이 바닥 여기저기에…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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뇽이 나에게 가져다준 또 다른 변화는 소음이 있는 일상에 익숙해지게 한 것이다. 나는 출퇴근길에 버스안에서 자장가용으로 음악을 듣는 일을 제외하고는 일상이 거의 무음인 사람이다 - 사무실 안에서도 핸드폰 알림음이 듣기 싫어서 무음으로 해 놓는다 - 뇽의 경우에는 보든 안 보든 간에 늘 TV를 틀어놓는데, 특히 놀 때보다 일을 할 때 틀어놓는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컴퓨터로 작업할 때만이 아니라 설거지를 할 때나 목욕을 할 때도 늘 배경음악을 틀기 위해 아이패드를 들고 가는데, 뇽의 메인테마는 대중가요나 클래식이 아닌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다.
욕실에서 물소리보다 “방포하라!”라는 외침이 더 크게 울려 퍼지는 집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가. 얘는 진짜 김명민 없었으면 인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이순신>과 함께 일궈낸 성과가 어마어마하다. 거의 드라마 회차와 맞먹는 디자인 작업, 목욕, 요리, 설거지를 해냈다고나 할까 - 내가 손을 다치거나 퇴근해서 죽상을 하고 누워있으면 뇽이 <이순신>과 함께 설거지 봉사를 한다 - 하도 많이 봐서 거의 외우고 있기 때문에, 배경음악으로 쓰기 좋다는 것이 뇽의 주장이다. 잠시 <여인 천하>나 <주몽>으로 외도한 적도 있었으나, 아직까지 노동요의 자리는 <이순신>이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뇽의 영원한 뮤즈, 불멸의 김명민
식사를 할 때는 주로 예능을 틀어놓는다. 단순 배경음악용 혹은 식욕 증진용으로는 <신서유기>나 <강식당>을 틀고, 식사를 좀 길게 할 것 같으면 <차이나는 클라스>나 <역사저널 그날>, <알쓸신잡>을 본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는 <무한도전 오분순삭>을 틀어놓고, 자기 전에는 유튜브에서 타로카드 영상을 틀어놓는 뇽이다. 본인도 타로카드를 볼 줄 알면서 굳이 남이 설명하는 걸 왜 찾아보나 했더니만,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조곤조곤한 유튜버의 음성을 들으며 꿈나라로 가기 위해 튼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내가 먼저 잘 때는 뇽의 책상에서 짤끄닥대는 기계식 키보드 소리가 ASMR로 들려온다.
나의 일상 속에 뇽이 침투시킨 소리의 양이 꽤 되지만, 정작 나는 집중하면 주변 소리를 잘 듣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불멸의 이순신>에서 낯선 장면이 꽤 많다. 특히 야행성인 뇽이 내가 잘 시간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에 대해 눈치를 봤으나,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라는 모 정치인의 말처럼 숙면을 향한 나의 굳은 심지를 확인한 뒤부터는 신나게 짤끄닥대고 있다. 내게 있어 뇽이 틀어놓는 배경음악은 일상의 소음이라기보다는 뇽의 존재감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책상 앞에 앉아 뒤통수에 달린 까치밥 같은 똥머리만 보일 때, 씻기 싫어서 몸부림치다가 아이패드와 함께 쓸쓸히 욕실로 사라졌을 때, 가스레인지 앞에서 무언가를 신나게 볶고 있을 때 그곳에서 <불멸의 이순신> 소리가 들려온다면,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잘하고 있구만.’ 하고 안심이 된다. 잠자리에서 들려오는 타로카드 해설은 뇽보다 나를 먼저 재우고 말이다.
심지어 독립 2년 차에 뇽이 혼자 2주간의 뉴욕 여행을 가서 처음으로 떨어져 지냈는데, 놀랍게도 자기 전에 리모컨을 집어 들고 채널을 돌리는 나를 발견했다. 사진도, 목소리도, 향기도 아닌 사극 소리로 누군가를 추억하다니, 참신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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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잠버릇이 험해진 것도 큰 변화다. 우리는 3인용 소파침대(퀸사이즈)를 함께 쓰고 있는데, 분명 독립 1년 차 때만 해도 이 침대가 매우 넉넉했었다. 독립하기 전에 각자 방에서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자던 버릇들이 있어서, 각자의 영역 - 소파침대의 양쪽 끝- 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잘 잤더랬다. 특히 나는 분명 1년간은 미이라처럼 꼿꼿하게, 혹은 공벌레마냥 몸을 말더라도 얌전하게 잤었단 말이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몸집이 더 불어난 탓인지, 마음이 너무 편해서 그런 건지 데굴데굴 굴러다니면서 점차 서로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내 이불을 등 뒤로 숨긴 채로 뇽의 이불을 빼앗고, 뇽은 굴러다니다 못해 다음 날 아침에 바닥에 앉아서 졸고 있는 채로 발견된 적도 있다. 날이 갈수록 정말 이대로 좋은가 싶게 흉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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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건 둘 다 잠꼬대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서로 잠꼬대를 할 때 보면 거의 일상 대화에 가까운 큰 목소리에 발음이 분명한데, 자다 깨서 돌아보면 황당할 정도로 잘 자고 있다. 낚였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놀려먹을 요량으로 카카오톡에 잠꼬대 내용을 기록해놓곤 하는데, 보통 내가 먼저 잠드는 데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카톡 창에는 내 흑역사가 훨씬 많이 기록되어 있다. 꿈속에서 상사와 대화라도 했는지, 한숨을 푹 쉬면서 큰 소리로 “그럼 돌려주세요”라고 외쳤다는 내용도 쓰여 있는데 본인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잠꼬대하는 나를 상대로 뇽이 말을 시키면 대답도 잘한다는데, 역시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뇽도 잠꼬대를 하는 경우가 제법 있지만 보통은 내가 그 소리에 깼다가도 막상 핸드폰을 열자니 귀찮아서 도로 자버리는 바람에 증거가 별로 없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수면 자세를 취하려면 일단 살을 빼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텐데 스쿼트 머신은 식탁 밑으로 들어가서 잠든 지 오래이며, 매일 출근만 하면 스트레스를 업데이트한다. 역시 해결책은 로또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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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변화를 굳이 하나 더 추가하자면, 뇽과 같이 살게 된 다음부터 추위를 못 견디는 약체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우리 집은 항상 오래된 주택 혹은 빌라여서 웃풍이 어마어마했다. 와중에 틈틈이 보일러를 잠가버릴 정도로 부모님의 절약 정신이 투철하여, 겨울에는 반드시 실내에서도 패딩과 두꺼운 수면 바지, 수면 양말이 기본템이었다.
아파트에 살았던 뇽은 어쩌다 큰맘 먹고 우리 집에 놀러오면 겨울왕국의 위엄에 기가 눌려 전기장판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했고, 나는 한 시간 전 부터 보일러를 틀어놨음에도 아파트 주민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난방 상태에 머쓱해지곤 했다. 이 집에 계속 살았던 나 역시도 실내온도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겨울왕국에 거주하면서 얻은 한 가지 장점이라면 추위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한겨울에도 반바지에 얇은 스타킹을 신고 출근을 했고, 사무실 안에서는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감기에 거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강인했던 내가, 뇽과 함께 하는 아파트 생활 2년차부터 무너지고 말았다. 뇽은 한겨울에 실내 온도가 24도를 밑도는 삶은 상상하지 못했고, 실내에서 옷을 겹겹이 껴입는 것은 불편하다며 꺼렸다. 추울 때는 춥다는 사람에게, 더울 때는 덥다는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매너이므로 나 역시도 24~26도를 유지하는 것에 찬성했다. 분명 초반에는 집안의 온기가 약간 답답하다고 느꼈건만, 언제부턴가 겨울에도 실내에서 반팔을 입고 있는 것에 적응해버렸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을 먹었다 하면 바로 방바닥 누룽지가 되어버리는 나를 위해 뇽은 아낌없이 보일러를 주는 나무가 되었고, 나는 급기야 미지근한 정도의 방바닥에는 만족을 못 하는 엄살쟁이로 거듭났다. 반대로 그렇게 추위를 탔던 뇽이 오히려 답답하다며 자다 말고 창문을 열 지경이니, 이것이 인체의 신비가 아니던가.
한겨울 누룽지 생활은 참으로 안락하고 좋았지만, 내 몇 안 되는 자랑거리인 건강이 슬슬 무너져간다는 사실을 부모님 댁에 방문하고 나서야 실감했다. 평상시 부모님을 뵈러가면 한 끼 식사와 차 한 잔을 밖에서 해결하고 헤어지곤 했는데, 모처럼 엄마가 상을 차렸다고 집으로 초대하신 날이었다. 집에 들어섰을 때부터 한기가 느껴지더라니, 식사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면서부터는 급격하게 두통이 밀려온 것이었다. 밥 잘 먹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우리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급하게 타이레놀을 삼키며 뇽에게 이야기했더니, 근심스럽게 지켜보던 뇽이 갑자기 빵 터지고 말았다.
“너 내가 예전에 너네 집에 가서 춥다고 몇 번을 얘기해도 이해를 못 하더니, 이제 알겠냐?”
아아,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인 것이다. 내가 없던 두통이 생길 정도로 추운 집에 살았었단 말인가? 혹은 반평생을 그 상태로 잘 살았는데 2년 만에 약골이 되었단 말인가. 진실이 무엇이든 이제 추운 집에서는 못 살겠다. <설국열차>의 세상이 도래하면 가장 먼저 도태될 운명인 것인데, 지금부터 뇽과 함께 살아남을 궁리를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