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같이 살면 어때?

"우리가 함께 사는 이야기를 써볼까?"

by 뇽알

<끝내면서>


친구와 함께 산 지 4년 차, 그리 길지는 않지만 크고 작은 추억이 가득한 그 시간들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나는 일상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해서 틈틈이 SNS에 올려놓기는 하지만 그런 짧은 게시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컴퓨터나 핸드폰을 켜는 것보다는 인화한 사진을 꽂아놓은 낡은 앨범을 펼치는 것이 훨씬 낭만적이지 않은가. 옛날 사람인 뇽과 나는 10대 시절까지의 사진이 두꺼운 접착식 앨범에 들어있는데, 필름 카메라로 찍은 거라 대부분 한 장씩밖에 없는 소중한 사진들이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가 상용화된 뒤부터 저장 공간이 부족한 게 문제일 정도로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시간이 지나 찾아보게 되는 건 늘 그 두꺼운 앨범이다. 그렇게 손에 잡히는 앨범의 맛을 잊지 못해서 국내 여행 사진 중 일부는 폴라로이드 사이즈로 인화해서 미니 앨범에 따로 보관해놓기도 했다.


기억 속의 바다로 언제든 데려다주는 여행 앨범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사진 앨범처럼 지나간 나의 생각과 감정을 생생하게 되살려줄 글을 쓰고 싶었지만, 매사에 그러하듯 나에게는 생각만 있고 추진력이 없다. 뇽은 늘 내가 아무 말이나 뱉을 때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냐며 감탄하지만, 나는 대책 없이 뱉은 나의 말을 구체화시키는 뇽의 능력이 훨씬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만 해도 그랬다. 어느 날 뇽이 나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며 여행기를 같이 써보는 게 어떨까 제안했을 때, 나는 그보다 우리가 함께 사는 이야기를 먼저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같이 살기 전이나 후나 여행은 특별히 시간과 비용을 들여 먼 곳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사명감에 사로잡혀 기록을 남겨두고 곱씹었지만, 정작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던 독립 및 동거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펼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 친구와 교환일기나 릴레이 소설을 쓸 때 느꼈던 소소한 재미를 오랜만에 되찾고 싶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내가 종종 심심풀이로 눈팅하러 들어가는 커뮤니티에서 가끔 내 또래나 훨씬 어린 친구들이 친구 관계의 어려움이나 불신을 토로하는 글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친구와 유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해 본 것이었다.

그리 대단치도 않은 생활상을 자랑하거나 ‘지침서’ 같은 훈계조의 표현을 쓸 생각은 없다. 그냥 웹툰이나 웃짤을 볼 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웃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바라는 게 있다면 혹시라도 친구랑 같이 살아보고 싶기는 한데 나처럼 잔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서로에 대해 더 탐구해보고 확신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뇽에게 책의 제목과 장의 구성을 줄줄이 뱉으며 당장이라도 책이 나올 것처럼 주절거렸던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던 건지, 제목을 멍청하게 바라보며 시작을 못 하는 게 며칠째였다. 하지만 우리 집 편집장은 ‘실천하지 않을 계획이라면 말도 꺼내지 말아야 한다’라는 칼날 같은 신조를 가진 자라, “힘든 건 알겠으나 너에게는 5만 자의 과제가 있다”라며 냉혹한 채찍질을 아끼지 않았다. 뇽이 손을 댄 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중도에 불을 꺼버리는 경우가 없다. 그걸 제일 잘 아는 내가 어쩌자고 내 무덤을 팠을까.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라던 내가 의무적으로 퇴근하고 글 한 줄, 주말마다 열 줄씩 분량을 늘려가는 생활을 지속하면서 집안일을 신경 쓰지 못하고 피로 누적으로 괴로워했지만, 글쓰기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놀라울 만큼 즐거웠고 힘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글쓰기 준비물: 노트북, 블루투스 키보드, 커피와 초콜릿, 카페 음악 스트리밍


무엇보다도 NAS의 사진 폴더만큼 정리가 안 된 내 머릿속에서 기억을 뒤적거리는 동안, 잊고 지냈던 보석 같은 순간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올 때가 가장 행복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 - 몰랐는데 성경 구절이었다 - 을 실천하려면 “범사를 기록해야 한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시간이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기록하고 곱씹을수록 가치가 오래도록 유지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라는 유명한 카피를 쓴 카메라 광고를 처음 봤을 당시에 ‘고작 기록이 어떻게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다 담을 수 있단 말이냐’라며 내심 반기를 들었었다. 하지만 이번에 글을 쓰면서 그때 가졌던 나의 생각을 철회하기로 했다. 정말이지 기록이라도 해놓지 않는다면 우주 먼지 같은 내 인생, 내 마음이 무엇으로 남아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싶었던 것. 후대에 남기는 건 둘째 치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밑 빠진 독처럼 새어 나가는 추억과 감정을 조금이라도 건지게 된 것이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이라 하겠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이 새삼스럽게 밀려왔다.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 불평을 일삼았던 가족들에게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늘 내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나의 지기(知己) 뇽에게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새로운 작업을 통해 얻은 자극과 의욕은 덤이다.

계획했던 것만큼 이야기를 잘 풀어내지는 못했고, 나와 뇽의 이야기가 얼마만큼의 웃음이나 공감대를 선사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지만, 한 사람이라도 읽으면서 즐거웠다면 좋겠다. “우리는 이렇게 산다”라며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가 쇄도한다면 더욱 좋겠다. “친구랑 같이 살면 어때?”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최종 답변은 “생각보다 재밌고, 생각보다 안 싸우고 잘 살고 있다.”라고 하겠다. 만약 이 책의 다음 시리즈가 존재한다면 “친구랑 아직도 같이 살아?” 가 되려나. 10년 뒤쯤 생각해보겠다.





- 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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