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친구랑 같이 살 생각을 했어? -2

<알> 서로가 가장 잘 이해하고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by 뇽알

꼬꼬마 시절에는 친한 친구와 동화 같은 집에서 같이 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평소에 아무리 잘 지내는 친구여도 생활을 공유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친구가 아닌 오래된 연인과의 결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밖에서 서로에게 보여주는 예의와 배려는 하루 중 일부에 불과한 시간이며, 인간은 고독을 싫어하면서도 자유 또한 놓칠 수 없는 모순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로, 뇽과 알고 지낸 지가 10년이 넘었던 시점에 문득 같이 사는 상상을 해봤지만 그림이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뇽은 나와 코드가 맞아서 같이 있으면 즐겁고 나에게 없는 장점이 많은 친구니까 잘 살 것 같으면서도, 반면 나의 단점 때문에 이 친구가 실망한다거나 서로 양보를 안 하고 섭섭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비관론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가까운 사이에 탈이 나지, 가깝지 않은 사람과는 싸울 일조차 없다”라는 이야기가 진리처럼 새겨져 있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종종 다투는 일이 벌어지면, 역시 따로 살아도 이렇게 안 맞을 때가 있는데 같이 살다가 싸우면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두려웠다.


20180523_071859-1.jpg 같이사는건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었다


뇽이 처음으로 나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했을 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뇽은 나보다도 독립적인 성향이 강해서 아마도 이십 대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뭐든지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추진력이 엄청나서, 그때 내가 바로 예스라고 했으면 이 글의 제목이 <친구랑 같이 산 지 10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위에 언급한 이유 말고도 여러 가지 잔걱정이 많았다. 이직이 잦은 내가 혹시라도 독립해서까지 부득이하게 회사를 그만둬서 집세를 못 낼 위기에 처하면 어쩌나부터 해서, 모아놓은 돈이 빤한데 대체 어떤 집에서 시작할 수 있을지 감이 오지도 않았다.

뇽은 모험심이 강하고 길눈이 밝아 어디다 던져놔도 금방 적응을 하든지 탈출을 하든지 할 사람이지만, 나는 ‘복지부동(伏地不動)’ 그 자체인 인간이라 늘 가던 길, 같은 생활 패턴으로만 움직이고 조금만 변화가 생겨도 걱정이 앞선다. 특히 동네 안에서도 길을 잃은 적이 있을 만큼 심각한 방향치에 길치여서, 이사를 하거나 회사 면접을 보러 갈 땐 늘 사전 답사를 해야 안심할 정도다. 이러니 내가 아는 동네와 멀어지는 것도 적잖이 두려운 일이며, 특히 서울 밖으로 벗어나 지하철이 없는 곳에 간다면 정말 아침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때 못 돌아오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몰랐다.


train-2435279_1920.jpg 오늘도 이 복잡한 도시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여 같이 살자는 이야기는 한동안 묻어두었으나, 매 주말을 같이 보내고 함께 여행을 자주 가면서 같이 사는 거나 진배없는 긴 시간을 공유했다. 서로의 집에 놀러 가는 일이 많았고, 여행을 가서는 돌발 상황에서 서로 의지하며 생각보다 잘 맞는 관계라는 확신을 키웠다. 계획적이고 담대하며 다방면으로 아는 게 많아 세상 혼자 살아가도 문제없을 것 같지만, 체력이 바닥이며 두통약과 소화제를 상비해야 하고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게 회사 생활의 가장 큰 문제인 뇽. 그리고 우물 안 지식과 소심함으로 세상 혼자 살아가면 안 될 것 같지만, 체력이 남다르며 30대 전까지는 두통약을 먹어본 일이 없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이 회사 생활에서 가장 쉬운 나의 조합은 제법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고 여겨졌다. 다만 집을 어디에 어떻게 마련하느냐의 문제는 아직도 나에게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돈이 문제이기도 했고, 가족과 함께 살 때도 이사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터라 생활공간을 바꾸는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늘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해결되는 것.


가족과 함께 살면서 생기는 사소한 불만과 불편사항이 세월의 누적과 함께 눈덩이가 되어버렸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 늘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다면 그 누가 독립할 생각을 하겠는가. 어찌 보면 순리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분노할 일이었나 싶은 작은 사건들이 뒤돌아보지 않고 집을 뛰쳐나오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뇽의 경우에는 살면서 심심치 않게 있었던 ‘잘못된 세탁으로 인한 새 옷 사망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다. 뇽의 아버님은 동년배 어르신들에 비해 집안일 참여도가 높은 편이라, 집에서 쉬시는 날에 청소기나 세탁기를 돌리시는 일이 잦았는데, 문제는 세탁할 때 옷감 종류나 용도를 확인하지 않고 한 번에 다 돌리시는 것이었다. 그 안에 린넨 소재 블라우스나 니트가 들어가 있다면 비극은 따 놓은 당상.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뇽은 아끼는 옷을 공용 빨래통에 넣어놓지 않고 숨겨놨다가 따로 빨았으나, 아버님의 세탁물 올클리어를 향한 집념은 끝내 방에 숨어있었던 뇽의 새 린넨 블라우스에까지 향하고 말았다. 결과는 뭐, 두말할 나위 없이 끔찍했다.

블라우스를 자주 사는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어도 펄쩍 뛸 것인데, 하물며 뇽은 옷을 자주 사는 사람이 아니다. 두세 벌을 돌려가며 입다가 정말 닳았을 때 마지못해 옷가게에 가거나 인터넷 쇼핑으로 사는데, 와중에 취향이 확고하여 마음에 쏙 드는 옷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리 급해도 사지 않는다. 다시 말해 뇽의 행거에 걸려있는 옷들은 필요와 취향의 엄격한 시험대를 통과한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인 것인데, 그중에서도 아버님이 망가뜨린 옷은 뇽이 총애하여 평생 드라이클리닝만 하리라 결심하고 빨래통에 내놓지 않았던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뇽의 좌절과 분노는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십분 공감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최애 블라우스와의 이별에서 그치지 않고, 그동안 가족과 공간을 공유하며 겪어온 크고 작은 충돌과 상처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내 방을 아무나 건드릴 수 없다면, 내가 계획한 대로 집안일을 꾸려간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독립하기 전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는 내 방이라는 것이 있어도 그것이 절대적인 나만의 방은 아닌 것이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구라도 필요한 순간에 발을 들일 수 있고, 각자의 기준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참견을 해도 사생활보다 혈연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일로 스트레스가 정점에 이른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경우에는 주로 명절이나 제사 때 내 방이 편의점마냥 열리는 상황이 늘 마뜩잖았고, 큰집답게 정말 크고 오래된 집에서만 살았던 터라 건물 자체의 문제도 심심찮게 있었다. 물이 새거나,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화장실 문이 잘 안 잠기거나 부엌 하수도가 역류하는 등. 특히 물이 새는 문제가 심각했는데, 원인을 찾지 못해 화장실을 뜯었다가 해결되지 않아 내 방까지 뜯게 되었다. 시멘트 바닥 위에 대충 신문지를 덮은 방바닥 꼴을 보고 있자니 정말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미치도록 간절해졌다. 독립을 결심한다고 해서 당장 좋은 집이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지만 - 내가 아무리 철이 없어도 서울 집값의 무서움은 안다 - 적어도 집을 고를 때 가족이 아닌 내가 원하는 조건을 우선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뇽이 부동산 어플을 보여주며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할 때마다 망설이게 했던 수많은 이유들이 일시에 지하 1,500m 암반수로 떠내려갔다. 우리가 같이 살게 된 계기는 둘의 취향이나 가치관이 잘 맞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집을 떠나고 싶은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고, 떠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도 서로가 가장 잘 이해하고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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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가꾸는 내 공간 / 독립직후 우리집을 스쳐지나간 꽃들


같이 살기 전에 했던 염려는 일부 현실로 나타났다. 같이 사는 동안 나 혹은 뇽이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있었고, 사이가 냉랭해지는 순간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서도 우리는 ‘여기가 얼마나 힘들게 마련한 집이었던가’라는 생각을 곱씹으며 돈벌이를 위해 열심히 달렸고, 서로가 아니면 의지할 데가 없다는 절실함을 잊지 않고 섭섭함보다 감사함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서로의 호불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시빗거리를 피하고, 소박하게나마 기쁨과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 다른 누구에게보다 쉬웠다. 가족들과 함께 살 때도 이랬으면 좀 좋았겠느냐만, 혈연과 타인에 대한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게 영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는 대체 불가능한 동종의 인간이다. 이만하면 같이 살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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