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같이 살면 어때?

"우리 나중에 어른 되면 같이 살자."

by 뇽알

<시작하는 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학창 시절 가장 친한 친구가 생기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우리 나중에 어른 되면 같이 살자.”

그런데 정작 같이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시절 단 한 번도 서로에게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 사실, 친해진 것이 신기할 정도로 취향도 성격도 반대였으니까.


알은 조용한 사람이었다. 출석을 부를 때마다 독특한 이름이 귀에 쏙 들어와 그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었을 뿐, 번호도 멀고 키도 비슷하지 않아 앉는 자리까지 멀었던 우린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각자 다른 그룹에 속해있어 가끔 인사만 주고받는 정도의 '같은 반 친구' 정도의 사이. 당시만 해도 - 지금도 그렇지만 - 알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겐 먼저 인사를 하거나 일부러 아는 척을 하지 않았고, ‘같은 반이면 당연히 인사를 하고 지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진 나는 그런 알에게 매번 먼저 인사를 했다. 알은 인사를 안 받아줄 정도로 폐쇄적인 성격은 아니었기에 내가 하는 인사를 족족 잘 받아줬지만, 알이 먼저 인사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후일 친해지고 난 뒤 '왜 한 번도 먼저 인사하지 않았나' 물어보니 왜 그래야 하냐고 되묻더라. 이렇듯 우리는 성격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그저 '같은 반 친구' 사이였던 어색한 시간이 흘러 겨울 무렵, 나는 내가 속했던 그룹에서 나와 당시 우리 반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냈던 '홍'의 그룹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홍의 그룹에 알이 있었다.

이미 오랜 시간 친하게 지내던 한 그룹에 누군가의 소개로 새로운 얼굴이 들어서면 모두가 한 번쯤은 경계를 하기 마련인데 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두와 친하면서도 모두가 무서워했던 나에게 - 눈이 크고 목소리도 좀 컸다 -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고 막말도 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우리는 ‘같은 가수를 좋아한다’라는 학창 시절 최고의 공통분모를 통해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으니 나에게 알은 18살에 만난 선물 같은 존재였다. 체구는 나보다 작지만 지금도 나보다 힘이 센 알은 내가 괜히 쿡쿡 찌르는 장난을 치면 전광석화와 같은 손으로 내 목을 한 번에 잡곤 했는데 정작 당한 내가'컥컥'소리를 내며 살려달라고 하는 동안 주변에서는 모두 알을 걱정했다고 한다.

“너 쟤 화나면 어쩌려고 그래.”

힘으로 당한 건 난데?? 어려서부터 체구가 큰 편이라 무슨 일이 터지면 '주모자'로 오해를 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그냥 '아, 또 그러는구나. 난 모르겠다' 하고 넘겼는데 알은 오히려 그들에게 되물었다고 한다.

“맨날 여기저기 인사하고 다니는 애가 왜 무서워?”

나를 감싸려고 한 게 아니라 정말로 애들이 왜 나를 그렇게까지 무서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알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돌아와 장꾸짓을 하는 나를 한심하게 보며 혀를 찼으니 나로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시절의 나는 주목받는 것을 좋아했고 - 교내 가요제나 체육 행사 등에 자발적으로 나갔다 - 알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그렇게 구석에 숨기만 하는 - 진짜로 구석에 숨었다 - 알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알은 무대 위를 좋아했던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반대되는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친한 친구가 되었는지 지금까지도 '정말 신기한 일이다' 라며 수시로 이야기하곤 한다. 어쩌면 내가 알의 유머 감각과 말재간을 좋아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는데, 책을 거의 읽지 않는 나에 비해 알은 독서량이 월등히 높아 유명한 고전 문학의 구절에 개그 요소를 섞어 농담으로 잘 풀어내는 편이다. 알은 “그렇게 말하지만, 너도 그 유머를 알아듣는 거잖아.”라고 부추겨주니 나는 '역시 한국인들의 교육 수준은 높은 편'이라고 자화자찬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20180120_233633.jpg 뇽알의 집


이토록 취향도 생각도 다른 두 사람이 서로 알게 된 지 20년째 되던 해 같이 살기를 선택 했다. 또래의 다른 친구들이 결혼 혹은 1인 가구로 독립을 하던 그 나이에 말이다.

친구랑 같이 산다고 하면 원래 친한 친구들을 포함 직장동료들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일관된 질문을 내놓았는데 우리는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해보기로 한다. 우리 둘의 철학이 다르기에 둘이 따로 쓰고 따로 대답하기로. 그리고 이 재미있는 제안은 역시 알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 나는 항상 알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친구랑 살아보고 싶은 청년들에게, 그리고 친구랑 살면 싸우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설렘 혹은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친구랑 살기, 생각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



icon-뇽.jpg - 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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