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친구랑 같이 살 생각을 했어? -1

<뇽> 독립은 하고 싶었고 집값은 비쌌다.

by 뇽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시점도, 같이 살자고 다짐한 시점도 사실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어려서는 완전한 자유를 꿈꾸며 막연히 '어른이 되면 독립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언제 "우리 같이 살자."라는 말을 꺼냈는지는 명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것 만큼은 확실하다) 이에 알에게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물어보니 본인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꽤 오래전에 이야기해서 오랜 시간 같이 사는 것에 대해 수십 번 고민해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친구랑 산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니까.



30대 무렵부터 우리는 꽤 자주 ‘독립하고 싶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알의 경우 명절을 지내고 나면 그랬고 - 큰집이라 명절마다 손님들에게 자신의 방을 양보해야 했다 - 나는 주로 부모님과 의견 대립을 하거나... 놀랍게도 다이어트를 할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일생 단 한 번도 다이어트를 해보지 않은 나의 다른 가족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권유하곤 했으니 그 모든 것들을 억지로 참고 있는 나로서 아무리 위한다는 마음이 앞섰더라도 반가울 리 없었다.

“하다 못해 냉장고라도 내 마음대로 구성하고 싶어.”

나의 생활패턴에 맞춰진 독립된 공간. ‘독립’에 대한 이야기는 보통 이런 결과를 기대하며 마무리되었다. 그 후 목적이 무엇이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인터넷을 뒤져 독립에 필요한 경비가 얼마쯤 되는지 통계를 내 보았는데 그런 준비과정 속에서 "부모님이랑 살 때 돈 모아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경기도권에서 살고 있는 나와 달리, 평생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알은 서울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을 인생의 철칙으로 여기는 알은 도착시간 변동 가능성이 큰 버스보단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는 지하철을 선호했고, 경기도권에서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필연적으로 버스를 타고 조금 나가야 하는 상황에 대해 거의 공포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eoul-2968290_1920.jpg 이 수많은 집 들 중 내 집/우리 집 하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서울지역 지하철 역세권에 쾌적한 컨디션을 갖춘 전세는 보통의 경제력으로는 택도 없고, 무리하게 들어간다 해도 은행의 힘을 빌려야만 했으며, 월세 혹은 반전세로 선회하더라도 보증금을 올리고 월세를 낮추는 전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서울 거주'는 내 인생에서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두 사람이 살려면 최소 10평 내외의 원룸, 혹은 분리형 원룸이 필수라고 생각했으면서, 동시에 한 달에 50만 원을 넘기는 월세는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선호하지 않았으니 서울에 우리가 기댈 구석이 있을 리 만무했다. 시장 가격을 안 뒤로 내 마음속에서 서울은 점점 더 멀어졌지만, 독립을 꿈꾸던 초창기의 알은 서울을 벗어날 생각이 전혀 없었던데다 반드시 서로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독립 계획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놓였다. 서울+역세권+투룸+월세50이하=... 이게 가능한가?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러 만약 알이 동참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서라도 독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부동산을 알아보고 있을 때쯤 이전과는 달라진 알이 나에게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서울 아니어도 돼. 몰라,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 어디든.”

서울을 고집하던, 그리고 같이 살더라도 독립적인 공간은 꼭 있어야 한다던 알의 생각이 변한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완전히 독립된 공간을 원하는 마음은 모두가 비슷하지 않을까. 그건 지금의 집에서 나는 충분히 행복한가, 아닌가 정도의 차이 일 것이다. 퇴근 혹은 하교 후 집으로 들어와, 집 전체에 비해 꽤나 작은 규모인 ‘내 방’에서 화장실 문제가 아니라면 단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해봄직하다. 지금 살고 있는 그 집은 ‘우리 가족’의 공간이지 ‘나’의 공간이 아니다.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으로 독립했을 시기를 넘기고서야 독립 계획을 구체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의 부동산이란 것은 얕잡아볼게 아닌 데다, 우리의 월급 인상폭은 부동산 인상폭과 너무나 다른 길을 걷고 있었기에 약 1년여 동안 고민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좋은 기회가 생겨 첫 번째 거처를 마련했고, 3년전 당분간은 이사 나갈 기약이 없는 두 번째 거처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행운이 아닌가. 물론 지금의 집 보다 더 큰 집으로 갈 수 있다면 은행 빚을 져서라도 옮길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우린 지금의 우리 집에 만족하고 있다. 여긴 ‘우리’ 집이니까.


친구랑 같이 살기로 다짐했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부분에서 잘 맞는 것은 아니다. 친하게 지낸 20여 년의 세월 동안 크고 작은 문제로 투닥거리면서 서로에게 양보해야 할 문제와 배려해야 하는 문제를 이해 혹은 습득하게 되어 더 이상 크게 싸울 일이 없을 뿐. 피부 타입도, 옷 사이즈도 달라서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없고, 색조화장품은 같은 종 다른 타입으로 2~3개씩 널려있으며, 피부 톤과 타입조차 달라서 파운데이션을 각자 사용한다. 두피체질이 달라 샴푸와 린스도 각기 다른 브랜드의 것이 선반에 꽉 들어차 있고 옷 사이즈가 달라 - 물론 취향도 다르다 - 행거를 공유할 수 없으며, 발 크기와 모양이 달라 신발도 공유가 불가능하다. 캐주얼한 의상을 즐겨 입는 내가 가끔 면접 등으로 포멀 한 정장을 입어야 할 땐 알의 구두를 빌리기도 하지만, 알이 내 신발을 빌리는 일은 아예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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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피부 타입이 달라 화장품이 두 배 / (우) 신발 사이즈도 취향도 달라 신발장이 두 배


심지어 생활패턴도 완전히 달라서 알이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로 이제 막 일어난 나에게 출근 인사를 하고 나가면, 그제야 일어난 나는 텅 빈 욕실을 편안한 마음으로 쓴다.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부딪치지 않고, 다르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다. 퍼즐처럼 잘 맞는 관계 같다고 해야 할까. 심지어 알은 빈둥거리길 좋아하는 나를 타박하지 않고, 본인이 나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것에 대해 ‘할 놈 할’이라고 말하며 억울해하지도 않는다. 지금도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알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혼자 집안일을 하는 알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알은 그런 나에게 뭐가 미안하냐고 되물으며 화를 내지 않는다.

“놀기만 해서 미안.”

“무슨, 밥은 네가 차려줬잖아.”

일주일에 꼭 서너 번은 서로에게 하게 되는 이야기. 미안, 그리고 괜찮아. 이런 관계인 친구라면 같이 살아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같이 살고 있다.




<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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