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살면 안 싸워? -1

<뇽> 알은 싸울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by 뇽알

“혼자 안 살면 누구랑 살아?”

“친구랑.”

“친구랑 살면 안 싸워?”

친구랑 같이 산다고 말했을 때 100이면 99 정도는 이렇게 물어본다. 안 싸우냐고. 그런데 그 싸운다는 기준이 애매해서 나는 그때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최근 우연히 적당한 대답을 찾았다.

"남편이랑 살면 안 싸워?"




남녀가 같이 살아도, 가족이 함께 살아도 싸울만한 일은 종종 발생한다. '아, 이제부터 공부해야지'라고 마음먹었는데 그 순간 부모님이 "너는 공부 안 하냐?" 하면 싸우게 되고, 나름 정리해놓은 옷장인데 "이건 무슨 돼지우리냐"며 내가 오랫동안 입은 옷을 갖다 버리면 또 싸우게 된다. 컴퓨터가 집에 한 대밖에 없으면 형제와 싸울 일이 생기고, 나는 퇴근하고도 집안일하는데 쟤는 퇴근하고 소파에 누워만 있다고 하면 또 싸울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두고 '남편이랑 살면 안 싸우냐'라고 묻지도 않고, 부모님과 조금 투닥거렸다고 해서 '같이 살면 안 된다'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삶에는 크고 작은 다툼들이 있는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알과 만나고 친하게 지낸지도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그 많은 시간 동안 내가 토라진 적도 있었고, 화가 난적도 있었고, 왜 그러냐며 말로 따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절교하지도 않았고 친구들 중 누군가 "너네는 안 싸우냐"라고 물을 때도 '뭐, 별로.' 정도로 대답을 하고 만다. 어떻게 매일 24시간 감정 상하는 때가 조금도 없을까. 그래도 굳이 싸움이냐 아니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도 '별로' 정도로 얘기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린 소리 지르며 싸우지 않고, 싸울만한 상황이 되면 독립된 공간을 찾아들어가 대화를 차단해 그 순간을 치워버린다.


알의 경우에는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나와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거나, 나의 말에 상처를 받아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생기면 그것을 바로 말하기보단 잠깐 독립적인 공간으로 간다. 이전에 살던 집은 방이 두 개 더 있어서 안 쓰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고, 지금의 집은 작은 옷방이 하나 딸려있어서 그곳으로 간다. 보통 그러고 나면 나도 기분이 상해서 - 알은 감정적으로 지쳤을 때 아무리 말을 걸어도 달래지지 않는 편이다 - 내 나름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딴짓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먼저 말을 거는 것은 98% 나의 몫이다. 아니, 도대체 왜 찬 방바닥에서 보일러도 안 켜고 누워서 자냐고.


210427-1.jpg 아르르르르르.....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싶어 하는 나는 이유를 묻거나, 사과하거나, 서운했던 부분을 말하고 알은 그 순간 생각나는 말들로 오해를 해소하곤 한다. - 실제로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다 - 어떠한 문제든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우린 서로에게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트러블이 발생할 때면 나는 알에게 “왜 그러는 건지 제발 말을 해 줘”라고 청해 보지만 알은 한 번에 말을 들어준 적은 없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왜 화가 났었는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억이 안 난다고 하고, 화가 난 순간엔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난 아직도 ‘그때 왜 화가 났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순간의 기억들이 몇 가지 있다. 하지만 이유를 몰라 기억 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그 언젠가 토라진적이 있었지' 정도로 추억할 뿐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분 나쁜 감정을 장시간 노출하지 않는데 알이 퇴근 후 오랜 시간 말을 하지 않거나 어두운 기운을 내뿜으면 같이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불안한 마음이 들어 기분을 좀 풀어주기 위해 먼저 말을 꺼내기도 한다.

“오늘 회사에서 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

“아니.”

곧이곧대로 들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정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면 자신을 피곤하게 한 그 누군가를 신나게 씹으며 대화가 이어질 것이니. 무미건조한 대답은 도저히 기분을 풀어줄 방법이 없어 잠시 시간을 가지고 각자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미쳐 1시간도 지나기 전 다시 내가 말을 꺼내는 것으로 적막이 깨진다.

“뭐 먹고 싶어? 뭐 해줄까?”

“… 김치전.”

자, 이제 김치전을 하면 된다. 푹익은 김치를 꺼내 다져서 부침가루와 섞어 전을 부치고 나면 알의 입이 열린다. 누구누구 때문에 힘들다고, 짜증 난다고. 그럼 김치전과 함께 알을 힘들게 한 그놈을 열심히 씹어준다. 보통 이러면 알의 기분이 누그러지기 마련인데 하필 이런 날 나까지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럼 그것은 ‘고요한 싸움’이 되고 만다. 나도 힘들어!


서로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달래듯이 하는 ‘무슨 일 있어?’라는 질문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 다 지쳤으니까. 그럴수록 더 다운되는 기분은 나아질 줄을 모르고 둘 다 딱히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술로 분위기 전환을 한다는 것도 우리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럴 땐 여느 때와 같이 그냥 시간이 답이다.


love-2706241_1920.jpg 안 좋다가도 좋아지는 게 친구관계


“친구랑 살면 싸우지 않냐?”라는 질문의 저변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싸움은 부부관계에도 있고, 부모 자식 관계에도 있고, 형제간에도 있다. 친구라고 없을 리가? 그렇다면 그런 질문은 ‘친구랑 싸움 = 다신 안 봄’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는 의미일까? 가족은 안 그러면서? - 물론 싸우고 안보는 가족도 있다지만 - 어쩌면 친구관계에서 형성되는 ‘동등함’을 잘못 이해하여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일까? 하지만, 웬만한 친구 관계는 그렇지 않다. 동등하기에 양보하고, 참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관계. 그것이 친구가 아닐까? 상대를 100%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 우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라는 것이었다.


누구와 살더라도 싸울 일은 많다. 방을 돼지우리로 만들어 놓으면 엄마와 싸울 일이 생길 것이고, 샤워 후 욕실 바닥에 엉켜있는 머리카락을 치우지 않으면 그 누구와 살아도 반드시 싸움이 벌어지고 만다. 친구와 살면서는 설거지를 안 해도, 청소를 안 해도, 상대방의 물건을 말없이 써도 모두 싸움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누구와 살더라도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먹었으면 치워야 하고, 어질렀으면 정리해야 하고, 빌려 쓴 것이 있으면 갚아야 한다.


우리는 싸울 일이 많지 않다. 일단, 집안일을 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둘의 취향이 극명하게 갈리기에 싸울 일이 아예 없고, 서로 내가 좀 더 일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제 네가 했으니 오늘은 내가 한다’ 같은 계산이 없다. 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결국 알이 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알은 “설거지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 이해를 못 하겠다. 좋아한다면서 그것도 못 해주냐”라며, 살아있는 부처와 같은 말을 한다. 사실 이와 같은 글의 끝에서 결론을 내자면, 내가 꿀 빠느라 싸울 일이 거의 없다.



<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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