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살면 안 싸워? -2

<알> 뇽은 화해를 잘한다.

by 뇽알

누군가에게 친구랑 같이 산다고 털어놓으면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싸움의 기준부터 명확하게 세워야 하는데, ‘각자 소리 지르고 따지는 것이 싸움이다’가 기준이라면 우리 사이에 싸움은 없다. 대신 ‘둘 사이에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이 싸움이다’라고 정의 내린다면 드물게나마 싸움은 존재한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둘 이상의 사람이 같이 있으면 서로에게 못마땅한 부분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집 밖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활동 영역이 겹칠수록 내 기준에 비추어 거슬리는 부분이 생기는데, 하물며 같이 살면 오죽할까. 뇽과 나 역시 인의예지보다 본능에 충실한 짐승 같은 인간이라 타인에게 그다지 관대한 편이 아니다. 심지어 성격과 취향도 너무 다르다. 이 정도면 싸움에 최적화된 구성인 것 같은데 의외로 아직까지 박 터지는 싸움은 없었다. 어째서?


둘 다 착해서는 아니다. 성격의 단점을 거론하자면, 뇽의 경우 불같은 성미의 소유자여서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직구로 훅 들어온다. 지금은 “나이 먹어서 화낼 힘도 없어”라고 버릇처럼 이야기하고, 실제로도 20대 때에 비해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직선적인 성격은 여전하다. 나의 단점은 꽁한 것이다. 남에게 지적을 잘 안 하는 대신 혼자 마음의 벽을 점점 높이 쌓는 타입이다 - 어렸을 땐 이 마음의 벽이 정점에 이르면 생뚱맞은 시점에 절교 선언을 해버려서, 인생에서 총 세 명에게 일방적으로 절교 선언을 했던 흑역사도 있다. 이런 옹졸한 녀석! -


직구를 던지는 놈과 귀를 막는 놈이 부딪치는 순간을 떠올려보면 다음과 같다. 보통 충돌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던 중 성질 급한 내가 뇽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잘라먹는다거나, 혹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을 해서 뇽의 기분이 확 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이 순간 뇽은 내가 자신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입장은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필하려고 적극적으로 대답하다 헛발질을 해 버렸다는 것이다 - 뇽은 안 그래도 큰 눈을 안광이 형형하게 뜬 채 “넌 대체 왜 그래?”라는 말을 뮤지컬 발성으로 쩌렁쩌렁 외치고, 나는 전혀 예상치 않은 순간 비수처럼 날아온 질문에서 ‘왜 그런 것이냐’라는 요점은 빼버리고 분노의 억양만 귀에 담은 채 어쩔 줄 몰라하다가 자리를 피해버린다. 분위기는 충분히 나빠졌는데, 싸움은 시작하자마자 일시 정지 버튼이 눌린 상황.


210427.jpg 한쪽은 타오르고 한쪽은 얼어붙는다.


이 상태로 화해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만고의 진리 “시간이 약이다” 가 통하는 편이다. 길면 한두 시간 동안 서로 다른 공간에 있다가 뇽이 먼저 와서 말을 건다. 아까의 좋지 않았던 상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일상적인 대화를 걸면, 나 역시도 뚱한 얼굴을 억지로 풀고 평소처럼 대답한다. 함께 밥을 차려 먹고, 이부자리를 펴면 언제 싸웠냐는 듯이 평화가 찾아오지만, 서로의 마음속에서 아까의 갈등 상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몇 시간 혹은 며칠이 지난 뒤에라도 뇽은 당시의 일을 언급하며 제대로 오해를 풀기를 바란다. 나는 뇽이 기분이 상했던 포인트를 받아들이고 사과하지만, 그때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는 편이다.


나는 어떤 이야기든지 화를 내면서 이야기하면 말의 핵심 대신 목소리 톤에 담긴 분노만 인지한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잘못을 무섭게 추궁하면 인정하지 않고 피하는 것처럼. 그래서 갈등 상황 당시가 되었든, 그 순간이 지난 후에라도 그 분노의 톤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돌이켜봤을 때 스스로 어른스럽지 못했다고 느끼지만 고질병이다. 뇽 역시도 돌직구로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상처를 받는 걸 알지만 적당한 톤으로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른다. 둘 다 나이를 먹으면서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절대로 고칠 수는 없다고 여기는 부분이다. 대신, 싸움의 누적 데이터를 토대로 서로 조심하는 편이라 과거에 비해 부딪치는 횟수가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절교 선언의 흑역사가 유구한 내가 이렇게 화를 잘 내는 뇽과 지금까지 헤어지지 않은 이유는, 뇽은 섭섭할 정도로 직구를 날리는 대신 충돌 후에 빠르고 정직한 사과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번 먼저 빈정 상해서 나에게 화를 냈을 텐데도, 막상 내가 대꾸하지 않고 굴속으로 들어가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게 뇽이다. 덕분에 ‘싸울 바에는 절교를 한다’라는 신념의 옹졸한 내가 네 번째의 절교 사례를 만들지 않고 조금이나마 철이 들었다.



눈싸움.jpg 첫눈 오는 날, 눈싸움하자고 먼저 말해놓고 가열차게 얻어맞는 뇽.


싸움의 가능성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뇽과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같이 살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마도 이러한 믿음의 근거 역시 시간이지 싶다. 우리는 이미 혈육과 같이 산 시간만큼 함께 해오면서 같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해졌고, 서로의 생활 패턴이나 습관에 대해서도 부모님보다 잘 알고 있다. 위에 언급한 고질적인 성격의 결함이 서로가 아니면 그 어떤 사람에게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주제에 어떤 날은 서로 넌 정말 착하다며 띄워주기까지 하니, 둘 다 앞으로 더 나은 인간이 될 가망은 없어 보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친구랑 살면 안 싸우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는 게 좋겠다. 누구랑 산들 안 싸우겠냐, 그래도 이 친구랑 있을 때 그나마 덜 싸운다고.



<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