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뇽>지금다시 돌아봐도 그때만큼 신났던 적이 없다.
“우리 같이 살면 그릇은 전부 흰색으로 하자.”
“무늬 없는 거로.”
같이 살자고 말만 했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막상 같이 살날을 잡고 보니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환상도 생겼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테리어를 잘해놓은 집처럼 꾸미고 싶고, TV에 나오는 것처럼 예쁜 식기들로 밥을 차리고 친구를 초대하고… 이런저런 환상들이 생겼지만, 현실은 그런 것들과 꽤 멀다는 진리를 깨닫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집 크기는 한정적이었기에 이사에 앞서 각자의 짐을 얼마만큼 챙겨야 할지 정리가 필요했다. 둘 다 행거를 사용하고 있으니 옷장을 사는 대신 그것을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고, 각자의 책상은 집의 전체적인 인테리어 톤 앤 매너 -밝은 나무색 혹은 흰색 가구로- 와 맞지 않아 부모님 집에 두고 오기로 했다. 알의 집에는 고등학교 교실에 있을법한 1인용 책상, 의자 세트가 있었는데 새로 사는 대신 그것을 가져오고 싶어 했지만 역시나 내가 인테리어(톤 앤 매너)를 문제 삼으면서 좌절됐다.
살림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냉장고. 선호하는 브랜드엔 원하는 디자인이 없고, 원하는 디자인을 찾았더니 1등급이 아니고, 1등급이기까지 한 모델은 가격이 비싸고… 무한루프의 고민 속에서 국내 브랜드샵이나 전자제품 종합 매장에 몇 번이나 갔는지 모른다. 같은 매장에 5번씩 간 곳도 있고 -그 집이 가전이 제일 많았다- 하루에 여러 곳을 둘러보기도 했다. 냉장고 같은 것은 한번 사면 10년을 쓸 텐데 아무거나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 집에서 가장 장수해야 하는 아이템으로 선정된 냉장고를 위해 몇 달 동안 몇십 군데를 돌아다녀 보고 내린 결론은, 매장에는 팔기 쉬운 상품만 전시한다는 것이었다. 예산이 적은 사람들에겐 등급도 상관없이 싸고 작은 것. 예산이 넉넉한 사람들에겐 4 도어에 노크온으로 켜지는 도어 화면, 온도조절, 1등급이기 까지 한 거대한 냉장고만 전시되어 있었으니 우리 같이 '좋지만 작고 활용성이 높은 것'을 원하는 사람에겐 마땅한 제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선호하는 브랜드, 선호하는 옵션, 선호하는 등급 등 각종 조건을 걸어 겨우 원하는 제품을 사게 되었는데, 인터넷으로 살 거 왜 그렇게 돌아다녔냐고 물으신다면, 돌아다녔으니까 대충 시장 가격도 알고 유행하는 스타일도 알게 되어 스펙에 대한 기준이 생겼으니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만약 냉장고를 구경하고 다니지 않았다면 우린 인터넷에서 보고도 비싸다고 (시장가를 몰랐다) 한참 동안 저렴하고 좋은 냉장고를 찾아 인터넷을 붙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살림인 밥솥을 갖다 놓는 과정도 조금은 독특했는데,
“이삿날을 잡아야 하는데.”
“손 없는 날인가 그런 거?”
“응. 근데 그게 목요일이야.”
부모님과 살면서도 이삿날을 따로 잡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게 무엇인지 몰랐던 나와는 다르게,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께서 날을 잡아 오던 알은 중요한 행사인 ‘이사’에 가장 길일인 날을 잡아 왔는데 하필 그 날은 두 직장인에게 피곤하기만 한 목요일이었다. 연차를 내서 쉴 수 있는 금요일을 두고 목요일 이사라니, 그건 안 될 말씀. (목-금 이틀 연속 휴가를 내자니 우린 회사 눈치를 보는 힘없는 직장인에 불과했다) 길일 따위는 별로 상관없는 나 대신, 어머님의 어명으로 길일에 이삿날을 맞추는 갖은 방법을 모색하던 알은 갑자기 묘안을 찾았다는 듯 나에게 실현 가능한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사하기 전에 밥솥을 먼저 갖다 놓으래.”
“그건 왜?”
“그래야 잘 먹고 잘 산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포털사이트를 뒤져보니 우리나라의 오래된 풍습으로 이사를 하기 전날 가마솥을 먼저 옮겨놓아 조왕신에게 이사를 미리 알렸다고 한다. 근데... 우린 전기밥솥인데?
“그러니까 밥솥을 손 없는 날에 갖다 놓으면 어때? 그날을 이사한 날이라고 하면 되지.”
“오, 천재.”
평소대로라면 별일 없이 피곤해+뭘 먹을까 만 생각하며 퇴근했을 목요일 저녁. 우리는 당시 텅 비어있었던 우리의 첫 번째 집으로 신나게 달려갔고, 때마침 배송 온 전기밥솥의 포장을 풀어 거실 한가운데 가져다 놓았다. 무교에다 토속신앙에 대한 상식도 무지하여 이런 절차에 대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와 달리, 알의 경우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머니가 하면 좋다고 권하신 기도를 하며 밥솥을 모셨다(?). 어머니가 추천하는 모든 것을 곧잘 하는 효녀 알은 휴대폰을 들어 어머니가 전한 경문 같은 것을 읽고 손을 모아 기도 후 간단히 절을 하는데, 옆에서 구경만 하던 나는 일단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부모님께도 1년에 한 번 절을 하는데 -그나마도 올해는 패스했다- 밥솥에 인사하는 것은 왠지 민망해서 옆에 서있다가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우리 건강하게 잘 먹고 잘살게 해 주세요.”
종교는 없지만 소원을 들어준다면 뭐든 좋다! (기복신앙 만세) 근데 그 소원을 누구에게 빌었는지는 모르겠다. 딱히 뚜렷한 종교가 없는 우리는 서로에게 그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밥솥까지 들어갔으니 이제는 가구를 들여놓을 차례. 첫 번째 목표는 소파베드였다. 허리가 아파 좌식 생활이 어려운 나는 소파도, 침대도 필요했지만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려다 보니 둘 다 사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고심 끝에 우리는 ‘소파베드’를 사자는 합의점에 이르렀는데 그렇다면 광명으로 한 번쯤 발걸음을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 저렴하고 예쁜 가구 하면 역시 북유럽 그 브랜드! 당시 각자 살던 곳에서 광명이 멀긴 했지만 우리는 후일 우리 집안의 인테리어를 참고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오픈 시간에 맞춰 광명으로 향했다. 오픈 시간이었음에도 인산인해를 이루는 사람들 틈에서 알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구 보는걸 이렇게 재밌어한단 말이야?”라며 놀란 표정으로 말했지만 머지않아 본인도 이것저것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거의 본능과 같이- 갖가지 소품들을 장바구니에 밀어 넣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분양 모델하우스 같은 -어쩌면 더 아름다운- 쇼룸을 보면 당장이라도 내 공간을 이렇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두근거리는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 그리고 일단 가면 빈손으로 나오는 법이 없지!
그 브랜드엔 유명한 소파베드가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침대로 펼쳤을 때 높이가 너무 낮아서 접기가 불편하게 설계된 지라 그냥 펼쳐놓고 살 것 같았고, 다른 하나는 인조가죽에 수납도 포함한 점은 맘에 들었지만 시커먼 가죽 소재의 디자인이 별로였다. 기본적으로 소파베드는 젊은 세대가 공간 절약을 위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이건 소파베드 니즈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 아닌가!
결국 광명에서 니즈를 해결하지 못한 우리는 다음날 하남 소재의 대형 쇼핑몰에 꽤 큰 매장을 가지고 있던 리빙 브랜드를 방문했고, 바로 그곳에서 현재 우리 삶의 반려인 소파베드를 만났다. 너무 어둡지 않은 베이지색의 인조가죽에 가격은 생각해둔 예산을 약간 웃도는 수준, 인조가죽이라 물걸레 사용도 가능하다고. 이 멋진 물건을 포기할 리가 있나! 그 소파에 앉아 우리는 인터넷 판매 가격을 살폈고 한정적인 예산안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현장에서 실물 구경을 하고 인터넷을 통해 구매했다. 몇 만 원도 아니고 12만 원 차이는 그럴 만하지 않은가.
두 번째 필수 가구는 바로 식탁. 북유럽의 그 브랜드는 다시 말하지만 살림과 관련해선 없는 게 없다. 2인용, 4인용, 6인용, 하다못해 어린이 식탁까지! 이것저것을 둘러보던 중 우리는 그동안 필요성을 못 느꼈지만 오늘부터 필요할 것 같은 확장형 식탁을 만나게 된다. 평소엔 2인용이지만 반만 확장하면 4인용, 완전히 확장하면 6인용이 된다니. 이건 필요하지. 사고 나면 무조건 쓸 일 이 생길 거라고! 해당 제품에 대한 정보를 스마트폰을 이용해 촬영해 둔 뒤 바로 다음 주 구매를 위해 다시 방문 한 그곳에... 미리 봐 둔 그 식탁이 없다?
“여기 있던 2인용 식탁 없어졌나요?”
“이거요, (핸드폰을 내밀며) 이렇게 생겼고, 번호는 이거예요!”
둘의 절박함을 보라. 이 식탁이 아닌 어떤 식탁도 우리에게 의미가 없다는 듯 낯선 직원에게 매달려 구원의 손길을 청했고 우리의 다급한 손길에 붙잡힌 그는 원래 하려던 일도 내려놓고 휴대폰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 바로 직원용 컴퓨터로 향했다.
“재고 있네요. 여기로 가시면 돼요.”
그는 자재 창고 번호를 프린트하여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아아, 품절이 아니었구나. 우리를 기다려 주었구나! 하지만 '재고 있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브랜드는 ‘직접 조립’ 해야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일단 해당 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을 찾는 것부터가 조립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여곡절 없이 손쉽게 구매한 책장이나 책상의 부품이 단순했던 것에 비하면 '확장형'이라는 기능을 가진 식탁은 조금 더 많은 수고를 요했고, 서랍을 3개나 달고 있던 TV장은 일단 부품을 찾는 것 자체가 버라이어티 예능에서만 볼법한 미션 그 자체였다. 상판, 하판, 뒤판, 가림막, 서랍, 레일, 다리 등등 그날 그곳에서 샀던 가구들 중 가장 많은 부품을 자랑했고 창고에서 꺼낼 때부터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까지 했다.
“야, 안에 들어가서 밀어.”
컸다. 무거웠다. 밖에서 끌어당기는 정도로는 꿈쩍도 안 했다. 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알이 자재 창고의 앵글 안으로 쭈그리고 들어가 무거운 티비장 상판을 밀었고, 밖에 있던 내가 잡아당기고 있으니 지나가던 커플이 기함하며 쳐다본다.
“저기 봐.”(속삭이지만 다 들림)
그래, 봐라. 이 자랑스러운 여성들을.
“아 좀 땡겨!”
“땡기고 있어. 그냥 니가 몸으로 밀어!”
“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누가 그랬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그렇다고 정말로 사서 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그릇이며 자잘한 소품까지 전부 구입한 우리의 어마어마한 카트는 당일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카운터에 도착해서도 뻔히 보이는 대량 구매의 건 때문인지 우리 뒤로 아무도 줄을 서지 않았다. 그렇게 결제한 영수증이 내 팔 길이 정도 나오더라.
새집에 가구'조각'들이 도착한 날. 나무판자는 이게 몇 개며, 바퀴는 어느 제품 소속이며, 이 작은 나사는 어디에 끼우는 것인지… 암담했다. 배송 기사님이 “이거 다 조립하시려고요? 본인이 직접? 요금 내면 다 해주는데”라고 한마디 거드셨지만 그런 것에 좌절할 우리가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럴 내가 아니다. “할 수 있어요.” 나는 일단 큰 소리로 장담했고 알은 한숨을 쉬며 쌓인 물건들을 정리했다.
수많은 살림살이 중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단연코 식탁. 빈집에 하나씩 살림을 갖다 놓을 당시 처음엔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밥을 먹었고 그다음 주엔 소품 샵에서 구매한 작은 베드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이대론 안 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일단은 의자와 식탁이 필요하다! 집의 한쪽 벽에 기대어 놓은 많은 자재들 중 식탁 그림이 그려져 있는 나무판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조립을 좋아하기도 하고 관심도 많은 나와 ‘조립’이라는 말만 들어도 현기증을 일으키는 알. 당연히 나의 활약상이 나올 때가 되었다.
1. 바닥에 상판을 뒤집어 펼친다.
2. 설명서의 순서대로 잘 조립한다.
3. 다 조립하고 작동이 잘되는지 펼쳐본다.
4. 자신의 조립 실력에 감탄한다.
확장형 식탁이라 고정하고 변형하는 것이 많아 약 3시간이라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됐고 난 조립만으로 지쳐 잠시 청소도 안 된 바닥에 누워있던 사이 알은 조립하면서 나온 먼지와 종이들을 정리해 쓰레기장으로 가지고 나갔다. 그러니까 이제 겨우 식탁 조립 끝.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아직 식탁 의자는 없다는 소리가 되겠다.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의자 부품으로 보이는 것들의 포장을 팍팍 벗겨냈다. 의자 방석, 틀, 등판, 다리… 3시간짜리 식탁을 조립하고 난 뒤라 그런지 식탁 의자는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가 아닌가. 1개당 10분 컷. 순식간에 식탁 세트를 완성한 나는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아주 잠깐이지만 가구 조립 알바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상상 속의 어떤 누군가 ‘침대 조립해 주세요’라는 주문을 하는 것을 떠올리다가 '조립 알바'에 대한 고민을 가차 없이 정리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스스로 했음에도 모두에게 권장할 만한 사항은 아니라서 어려서부터 조립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직접 조립하지 말고 돈을 쓸 것을 추천한다. 전문가들이 했다면 내가 3시간이 걸려 완성한 그 식탁도 40분 컷이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완성한 가구는 티비장이었다. 식탁은 바닥에 앉기 싫다는 필요성 때문에 첫 번째로, 책상과 책장도 작업과 정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두 번째, 세 번째로 만들어놓고 정작 티비장은 손을 안 대고 있었으니… 사실 엄두가 나질 않았다. 사실 TV 자체가 계획에 있었던 것이 아닌데 인터넷 설치를 하면 TV를 준다는 광고에 현혹되어 냉큼 해당 통신사의 인터넷 계약을 했고, 얼떨결에 장만된 TV는 집에 온 뒤로 몇 주간 바닥에 놓여있었다. 인터넷 셋톱박스나 가지고 있던 작은 화분들이 점점 거실 바닥에서 그 위용을 자랑할 때쯤 ‘와, 이건 진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드디어 조립을 하기로 다짐했다. 그러니까 그게 물건을 구매하고도 3주가 지난 시점이었는데 수도 없이 쏟아지는 많은 재료들을 바닥에 늘어놓고 보니 더욱더 막막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왜냐? 내일 친구가 놀러 오기로 했기 때문에! 아무리 친구지만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야지! 각오와 함께 펼친 TV장 조립 설명서는 자그마치 3부나 되었고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완성한 TV장 위에 TV, 인터넷 셋톱박스, AI스피커까지 세팅을 마치고 나니 그제야 한 가족이 사는 것 같은 집이 완성되었다.
살림을 마련하는데 든 이 모든 경비는 50대 50의 공동부담으로 마련했다. 냉장고, 가전, 세탁기 등 필수 가전과 식탁, 책장 등 필수 가구에 대한 것은 모두 엑셀에 정리해서 합계금액을 냈고, 여기에 각자 인터넷으로 구매한 물품 금액을 합치거나 공제하여 계산을 정확히 했다. 나는 다행히도 지출내역을 문서로 정리하는 일을 좋아했고, 그 때문에 가계부 작성과 영수증 처리는 지금까지 내가 하고 있다. 알이 하기 싫어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우리의 다른 취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