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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Jan 01. 2023

두 달 내내 매일 전화하던 고객님

문득 생각이 나요

코로나19가 닥치기 전

2017년부터 19년도는 이틀 이상의 연휴라면 해외로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해외를 쉽게-쉽게 넘나들었다.


나는 그 정점의 시기에 여행업계에 있었다.

관광지식정보시스템 > 통계 > 관광객통계 > 출국 관광통계(2010~2022년)


또 이때는 대부분의 예약이 웹에서 모바일로 전환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 팀도 고객 문의가 웹기반인지 모바일기반인지 확인 후 같은 프로세스로 상담해야 했기에 배터리가 떨어지지 않게 핸드폰도 켜놓고 일했다.




나는 19년 3월 말에 퇴사했다.


그 고객은 4월 중순 베트남 여행을 앞둔 선생님이었다.

어느 모임에서 총무를 맡게 되어 호텔을 예약했다며 예약이 잘 되었는지 확인 전화를 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xxx호텔 예약 잘 되어있습니다. 대표인은 xxx님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꼭 xxx님이 체크인 부탁드립니다. 여권은 꼭 챙기시고 오른쪽 상단에 있는 인쇄버튼을 눌러서 바우처도 출력해 가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전화가 왔다.


"제가 너무 불안해서 그러는데 숙박객 12명의 명단을 미리 전달드릴게요. 그리고 일정상 다른 사람이 가도 체크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러면 실제 체크인하실 분 성함만 전달 주시면 처음 말씀 주셨던 분이랑 실제 체크인하실 분 명단만 호텔 측으로 전달할게요. 12명의 명단을 모두 주시면 나중에 고객님 일정상 혹시라도 일정상 숙박객 교체가 이뤄질 때 호텔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을 수 있어 우려되어서요."


"아 네~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xx 씨~"


바우처 내 담당 직원란에 내 이름이 적혀있긴 하지만 내 이름을 부르는 고객은 한 명도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친근하게 xx 씨라고 부르는 건 처음이었다.

아마도 너무나 많은 질문을 물어보는 게 민망해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나가려는 그분의 또 다른 노력이었을 수도 있다.



며칠 후,


"저희 12명 꼭 다 같이 갈 거예요~! 12명 명단은 제가 이메일로 드릴게요. ^^ 도움 주셔서 감사해요~"


목소리만 듣고 사람이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

40대 중반의 왠지 뿔테 안경을 쓸 것 같은 중년 아주머니.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사교성이 꽤나 좋으실 것 같은 기분 좋은 목소리지만

가끔은 하루에 100여 개가 넘는 예약이 들어올 때도 있어, 할 일이 산더미인 와중에 같은 내용으로 몇 번씩 전화가 올 때면 받기 싫을 때도 있었다.


"이름이 잘 들어간 게 맞겠죠~? 이미 예약 확인이 잘 되어있을 것 같긴 한데 한 번만 더 체크부탁드려요. 중요한 여행이어서요. 아참, 호텔로 좋은 뷰 달라고 요청도 함께 넣어주시겠어요~?"


"네, 제가 몇 번이나 확인해서 이미 예약은 잘 들어가 있습니다. 좋은 뷰 달라고 요청 넣으면서 한번 더 체크해 드릴게요, 다만 요청 주셨던 좋은 뷰는 확정은 아닌 점 참고 부탁드릴게요!"


나는 그 선생님도 이해가 갔다.

12명이 좋은 호텔에 하룻밤을 묵으면 하룻밤에 100만 원은 훌쩍이다. 그분도 바쁜 업무 와중에 이렇게 체크하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테다.






약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근무하며 한 명 한 명 예약건이 소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가 가족여행을 가는 것처럼, 워크숍을 가는 것처럼, 내가 마치 그 팀인 것처럼 생각하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겠지만 여행업계는 꼼꼼함이 기본이다.


해외 항공사는 철자 하나만 틀려도 출국을 불허했고, 홍콩의 몇몇 호텔 역시 이름 중 알파벳 하나라도 틀리면 숙박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면 까다로운 후속처리가 이어진다.

절대 불가하다는 프런트오피스 직원 vs 긴 여행에 지친 고객.


일단 고객이 먼저 카드를 오픈해서 숙박한 이후 귀국하면 길고 긴 환불전쟁이 시작되는 거다.

그게 철자를 잘 못 쓴 고객과실일지라도 우리는 고객을 대신해 융통성을 발휘해 달라고 해외호텔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 (대부분은 불가했고, 이걸 어떻게 고객에게 잘 설명하는지는 직원의 역량에 달렸다)


그래서 예약 업무를 할 땐 고객이 틀린 것도 전화해 다시 물어봐야 했다.

이를 테면 어떤 고객 한글명이 김혜수인 경우, 영문명에는 kin hye soo 또는 kim hye su로 기재하는 경우가 있다.

"kim 할 때 n으로 잘 못 쓰신 것 같은데 여권에 n으로 기재되어 있으시냐"

"보통 soo를 많이 사용하시는 데 su가 맞으시냐"

 이런 것까지? 하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뒤 탈이 없었다.






아무튼 나는 전직을 준비하기 위해 꽤 오랫동안 고민했고, 3월 말 회사를 떠났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갑자기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xx 씨, 잘 지내요?"

뜨끔.. 친했던 동료지만 갑자기 연락이 와서 놀랬다.

혹시 실수하고 간 일이 있나?


"다른 건 아니고, xxx 고객님 알죠? 그 전화 엄청 많이 오던 고객님."


"당연하지. 기억나요. 왜요? 지금쯤 여행 끝났을 텐데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ㅎㅎ 놀랠 줄 알았어요. 다른 건 아니고 xx 씨한테 고맙대요. 많이 귀찮게 했을 텐데 한 번도 성가신 티 없이 응대해줘서 너무 편하게 잘 놀다 왔다고!"


"다행이다. 뿌듯하네!"


일을 하다 보면 나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힘들고 지칠 때 내가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상대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래서 일하는 게 재밌다. 나를 알아갈 수 있어서.






가끔 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매일같이 전화하던 그 고객이 생각난다.



그 고객의 불안함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무슨 장치를 넣어야 했을까?

그럼에도 불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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