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타미 Dec 31. 2022

첫 취재

한 마디로 망했다.

취재 : 작품이나 기사에 필요한 재료나 제재(題材)를 조사하여 얻음.


기자의 능력은 취재력에서 나온다. 근본적으로 이 직업은 무언가를 탐구해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첫 취재는 입사 후 1주차에 시작됐다.


메이저급 언론사는 초짜 기자에게 단독 취재를 맡기지 않는다. 아직 현장에 대한 감각을 모르고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습기자의 취재에는 사수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상근 기자가 2명뿐이다. 어쩔 수 없이 나 혼자서 현장에 달려간 이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을 위해 공항철도를 이용한다. 그들은 다음 휴가때 인천공항에 가기 위해서 일한다. / 공항철도 주식회사

첫 취재는 인천 영종도였다. 내가 담당한 분야는 철도인데, 인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와 철도는 괴리감이 느끼지 않는가? 사연은 이렇다. 공항철도는 영종도를 넘어가면 추가운임을 부과한다. 이 ‘추가운임’ 때문에 영종도 주민들은 같은 인천에서도 차별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종도 주민으로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자 정부와 지자체는 영종도 주민들에게 공항철도 운임 지원방안을 고심하게 됐다. 추가운임을 폐지한다면 운영사의 손실이 커지기 때문에 대안으로 주민 전용 할인 카드를 발급하기로 입을 모았다.


하지만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달랐다. 이들은 ‘보편적 할인’을 주장하면서 추가운임 폐지를 요청했다. 애초에 영종도를 방문하는 철도고객은 공항 이용객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을 이용하기 위해 모여드는데, 특별할인카드는 또 다른 차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은 공항철도를 단순히 공항 이용객들을 나르는 철도로만 보고 있다. 이름에 ‘공항’이라는 두 음절이 사실상 이 노선의 성격을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영종도 지역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겠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아마 우리 모두 알지 못했던,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닌가 싶다.


취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취재원’이다.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기사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문지를 표방하는 회사로서는 전문가 혹은 정치인이 좋은 취재원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필자로서는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영종도 주민을 섭외하고 싶었다. 정책 수혜자의 목소리가 어떤지 궁금했었는데, 문제는 내 주변에는 영종도 주민이 없다는 것. 애초에 인천에 연고도 없는데 영종도 사는 친구가 있을 리가.


방법은 단 한 가지 ‘지역 커뮤니티’를 찾는 것이다.


무작정 지역 커뮤니티를 찾아내 보았다. 네이버 검색창에 수두룩하게 보이는 ‘영종도 지역 카페’ 거기서 최적의 선택지를 꺼내야 한다.


가장 회원 수가 많은 카페에 들어갔다. 그다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취재를 요청했다. 나는 미끼를 던졌으니 이제 덥석 물면 끝난다. 10분 뒤, 내가 남긴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지역 커뮤니티 대표였다. 나의 취재 요청을 응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인터뷰 날짜를 잡게 됐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됐었다.


사실 이 정도 발제는 전화 한 통이면 충분히 끝날 수 있다. 이미 지역지에서 다룬 이슈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내가 저 지역지보다 더 잘 쓸 수 있다는 목표도 생기게 됐다. 앉은뱅이 기자는 되기 싫었다.


공항철도를 타고 영종도를 향하는 길이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열차에 캐리어를 끌고 온 사람이 없었다. 6칸에 달하는 열차에 손님은 10명 남짓했다. 전동차에서 내뿜는 모터 소리와 백색소음만 들릴 뿐이었다.


그 소리와 서해 정취에 취한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망각하게 됐다. 어떤 질문을 할지,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첫 취재라는 설렘만을 안고 현장으로 간 것이다. 내 직업의 본질을 잊은 채.


하지만 취재원과 명함을 주고받을 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큰 문제가 될 줄 몰랐었다. 그리고 길지도 않는 시간에 내가 큰 잘못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현장에서는 취재원과 의미 없는 질문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주민 측 주장의 핵심 근거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한 채 이상한 대화만 오갔었다. 취재원의 표정에서도 나를 이상한 방랑객으로 보는 듯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행히 취재원도 내가 초짜 기자인 것을 알아챘는지 자료 몇 장을 건네주었다. 기사 쓰기에 유용한 자료였다. 그때는 이 종이 몇 장이 나를 구원해주는 오아시스 같아 보였지만 지금에서야 취재원이 왜 자료를 주게 됐는지 이해하게 됐다. ‘알아듣지 못하니 다시 공부하고 오라’는 뜻이었다.


데스크로 복귀하는 길. 수중에는 없는 지갑을 털어 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전철역을 향했다. 나 자신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빨리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지갑아 미안하다. 이게 소위 말하는 ‘X발 비용’이구나.


시간은 흐르고 다행히 기사는 완성돼 무사히 보도됐다. CMS(콘텐츠 관리 시스템)를 통해 얼마나 수정됐는지 확인해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었다. 재창조 수준이었다. 그렇게 내 취재는 한마디로 망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출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