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다정히 걷게 만드는 힘이 있다. 도시의 소음에서 아주 조금 비켜나 있으며, 발길이 닿는 곳마다 적당히 한적하고 사람 냄새가 난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어디든 천천히 걷다 보면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발을 옮기는 일인가 보다. 거창할 필요 없이 그저 걷듯이 다정한 것. 때로는 머지않아 누렇게 변해갈 세상의 풍경을 기다리는 일처럼 조금 설레고 외로운 것.
여름밤을 걸으며 가을을 기다리다 보니 조금 외로워졌다. 여름을 걸을 때는 그저 여름만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 너머를 자꾸 생각하는 습관을 언제쯤 그만둘 수 있을까 싶지만 나에게 그런 재주는 없는 것 같다. 늘 반박자 느리게 계절을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벌레도 불빛도 많고 이야기도 끝없이 생길 것만 같은 여름밤을 사랑하고 싶어서 흐물거리는 몸을 이끌고 나온 걸지도 모른다.
산책의 묘미 중 하나는 낯익은 얼굴들이 가득한 골목에서 낯선 길고양이를 마주치는 것이다. 꿉꿉한 동네 여기저기를 사뿐히 쏘다니는 고양이들을 보는 것까지가 밤산책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홀린 듯 손을 내밀다가, 밥 한 끼 챙겨준 적도 없으면서 품을 내어주길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금세 거두었다. 나비야, 하고 멋대로 이름을 짓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나처럼 여름마다 그늘진 곳을 찾으며 가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고양이들의 사진을 잔뜩 찍고 돌아오는 길엔 그리운 사람과의 지난 대화를 떠올렸다. 걷는 동안 수없이 복기하며 흩어졌던 말들이 다시 천천히 모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공기가 조금 선선해지고 마음도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날이 추워지면 이 길을 자주 걸을 테고 그러면 동네의 풍경을 더 구석구석 다정히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여름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