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erfect midsummer birthday
남반구에서 보내는 첫 생일이었다. 내 생일은 늘 추운 겨울이었지만 빼먹지 않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챙겼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는 내 생일이 여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번 생일은 정말인지 모든 게 달랐다. 누구와 생일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낯설었다.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오로지 내 선택에 달렸다는 사실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흔쾌히 학교 수업을 빠지겠다고 해준 친구들 덕분에 골드 코스트에 있는 벌리 비치에 가게 되었다. 바다로 향하는 중에도 일기예보는 시시각각 바뀌었다. 아쉬운 마음에 날씨 앱을 들여다보고 있기를 한참, 그저 그런 생각들은 접어두기로 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뭐 어때?
버스를 잘못 탄 탓에 예상시간 보다 늦게 바다에 도착했다. 쨍쨍한 수평선 너머와 달리 뒤에선 먹구름이 쫓아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우리는 곧장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진 채 바다로 뛰어들었다. 함께 초를 세며 달려오는 파도에 맞서기도, 해파리처럼 바닷속을 유영하기도 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바다 앞에선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물미역이 되어 우스꽝스러워진 서로를 놀리거나 물고기들을 보겠다고 물안경까지 챙겨 온 우리 모습이 딱 그랬다. 강한 파도 때문에 바닷속을 볼 수도 없으면서 말이지. 뒤늦게 회상해 보니 훨씬 더 행복한 기억이었다.
정확히 30분이 지나자 천둥과 함께 드물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들이 굵은 빗줄기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우리는 급하게 짐을 챙겨 지붕 아래로 피신했다. 문득 바다를 찾았음에도 비를 두려워하는 행동에 모순을 느꼈다. 그래서 그냥 비를 바다처럼 여기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뭐!
오늘의 점심은 근처 카페에서 사 온 피자와 햄버거였다. 햄버거를 싫어한다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햄버거를 선택하는 걸 보면 사실은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파도에 이어 비까지 맞은 덕에 모두들 지쳐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않고 식사에 집중했다. 몇몇 친구들이 사라진 것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갑자기 등 뒤에서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려왔다. 작은 치즈케이크와 Happy Birthday가 쓰여있는 커다란 초. 신난 친구들의 목소리. 낯선 땅에서 만난 고작 1-2개월의 인연들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 그들의 진심 어린 축하는 그 어떤 선물과도 비할 수 없었다.
편지는 언제나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수단이다. 반짝거리는 분홍색 편지지는 이미 바닷물과 빗물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느 나라에 있건, 어떤 모습이건 항상 응원한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평생동안 기억될 시간을 만들어 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