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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은 영어로 martial law

한국 밖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마음

by 영영

12일 3일 밤. 누군가는 내일을 위해 잠들었을 시각,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이루어졌다. 당연한 상식으로 비상계엄령은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있을 시 내려지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 그의 무책임한 결정엔 그로 인해 야기될지도 모를 갈등과 내분, 전쟁에 대한 고려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국제적 망신, 국가의 수치, 민주주의의 붕괴 말고 이 사태를 설명할 다른 단어가 있을까.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를 향해 질문들이 쏟아졌다. 일본, 홍콩, 프랑스, 칠레, 스페인, 독일, 스위스, 호주. 이렇게나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이 모두 지난밤 벌어진 대한민국의 비상계엄령 사태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이 부끄러웠다. 나는 우리 반 유일의 한국인이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변명해야 했다. 계엄령은 martial law, 탄핵은 impeachment라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평생 몰랐으면 좋았을 이 단어들은 절대 지워지지 않을 얼룩으로 남았다.


같은 반 독일 친구 시나와 전쟁을 주제로 대화한 적이 있었다. 독일인들이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것은 매체를 통해 여러 번 접했던 사실이지만, 정말 그런 줄은 시나를 통해 알게 되었다. 과거에 대한 참회와 반성의 일환으로 독일에는 군복무의 의무도, 핵무기도 없다고 한다. 시나는 전쟁을 무력화시킨 원폭의 끔찍함을 강조하며 다시는 과거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나는 올해 1월부터 대학교 선후배들과 함께 책모임을 시작했다. 내가 호주로 오면서부터는 책을 빌리는 것이 어려워져 잠시 영화모임으로 바꾸어 진행 중인데, 공교롭게도 이번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그린 독일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였다. 이 영화는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소설의 작가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실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참전 군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2시간 밤 남짓한 시간 동안 군대의 존재 이유, 의무 군복무 시스템을 둘러싼 젠더갈등, 기득권층에 의해 민간인들이 희생당하는 전쟁의 민낯,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토의를 통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13년 동안 지속된 시리아 내전,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관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남한-북한의 휴전 상태. 전쟁은 결코 허상이 아니었다. 애써 외면해 왔을 뿐,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끝없이 이어질 전쟁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번 사건은 정말 전쟁이 일어난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국민을 대리해야 할 사람이 국민들을 적으로 돌린 채 본인의 안위만을 목적으로 민주주의를 죽였다. 당신에겐 그럴 권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한국 밖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마음은 끝없이 막막하고,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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