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fred 관찰 일지
사이클론 'Alfred'의 접근 소식으로 브리즈번 전체가 떠들썩했다. 모든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대중교통 운행이 중지되었으며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사이클론 상륙 며칠 전부터 CBD 내 모든 마트는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빵이나 물 같은 품목들은 늘 솔드아웃이었다. 그렇게 브리즈번은 순식간에 유령도시가 되었다.
- 3월 6일 오전
가끔 햇살이 비칠 정도로 평온하다. 그야말로 폭풍전야. 그러나 거리의 사람들과 자동차의 수는 눈에 띄게 준 모습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에선 단수와 정전을 대비하여 여분의 물을 준비하고, 보조배터리를 충전해 놓으라는 경고 메일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룸메이트 미란기는 혹시 심심하면 읽으라며 책까지 빌려주었다. 사실 아직까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큰 도시 전체가 고립될 수도 있다고?
- 3월 6일 오후
휴교령이 무색할 만큼 오늘은 무탈히 지나갈 듯 보인다. ABC 뉴스에선 하루종일 사이클론 얘기만 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보도에 따르면 실시간으로 상륙이 늦춰지고 있고, 천천히 이동하는 사이클론인 것으로 보아 대륙 안에서도 오래 머물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이르면 내일 저녁, 늦으면 모레 새벽이 절정일 것으로 전망한다고 한다. 아, 밤 9시부터는 기숙사 엘리베이터의 운행도 중지되었다.
- 3월 7일 오전
물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화장실 청소를 했다. 깨끗해진 화장실을 보니 밖에 나가지 못해 울적했던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다른 룸메이트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을 생각이다. 느지막이 문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밀린 잠을 몰아자고 있는 듯하다.
- 3월 7일 오후
학회 참석 차 멜버른에 있는 재스퍼의 비행 일정이 한 차례 더 미뤄졌다. 오늘 밤부터는 기숙사 엘리베이터 운행도 중지된다고 한다. 감금된 지 이틀 만에 사회성이 떨어지는 기분이다. 알프레드가 완벽했던 내 주말 일정을 망쳤다. 구름의 색깔이 무섭게 달라지고 있다. 창밖으로 들리는 바람 소리 또한 매섭다. 오늘이 지니면 정말 사이클론이 오려나?
- 3월 8일 오전
아침부터 화상영어 선생님과 스카이프를 했다. 아직까지 수업을 받고 있는 건 아니고, 호주에 가서도 연락하라는 말이 생각나서 한 번 연락드려봤는데 우연히 시간이 맞았을 뿐이다. 통화를 하는 내내 과거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정말 영어가 늘었음을 실감했다. 대화의 흐름이 눈에 띄게 빨라졌고,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되묻는 일도 없었다. 알프레드의 존재감은 온 건지 만 건지도 모를 만큼 여전히 미미하다.
- 3월 8일 오후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열심히 꼬셨는데도 넘어가지 않았다. 밖에 나가고 싶은데 동시에 나가고 싶지 않은 기분. 알프레드는 이제 지나간 듯 보인다. 내일은 꼭 외출해야지.
- 3월 8일 오전
사이클론의 진짜 큰 문제는 지나간 후에 따르는 폭우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살고 있는 CBD는 괜찮아 보이지만 외곽의 저지대에 위치한 목조주택들은 홍수 피해를 면피하지 못할 것 같다. 제발 모두 안전하기를. 외출은 무슨, 오늘도 집에 얌전히 있을 예정.
- 3월 9일 오후
짙게 깔린 물안개 때문에 밖을 보기가 힘들 정도다. 다행히 내일부터는 다시 등교가 시작된다고 한다. 근데 과연 몇 명이나 출석할지.. 한편 잔뜩 사다 놓은 간식거리가 거의 다 떨어져서 예민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내일은 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라도 꼭 마트에 가야 한다는 말씀. 하루빨리 브리즈번의 화창한 날씨를 되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