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특별해질
정제되지 않은 말들로 남기는 2월의 어느 날들에 대한 짧은 기록.
- 재스퍼 동네 근처에서 열리는 주말마켓에 감. 모닝글로리가 잔뜩 올라간 태국식 볶음밥과 쿠키, 커피를 사서 근처 파크로 향했음. 드넓은 언덕에 사람이라곤 우리 둘 뿐. 뜨거운 햇빛 때문에 땀이 흐르는 동시에 시원한 바람 때문에 소름 돋는 감각의 반복. 첫인상과 앞으로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 근데 갑자기 얘가 모닝글로리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냐고 물어봄. 죽을래?
- 나는 모태신앙임. 내 기억엔 고등학생이 돼서야 강제적인 교회 출석을 멈출 수 있었던 것 같음. 그런데 요즘 이곳에선 룸메이트 미란기와 교회에 꼬박꼬박 나가고 있음. 처음에는 친구 사귈 목적이었는데 어느 순간 정말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 예배당에 감도는 홀리한 느낌이 모든 근심걱정을 없애주는 느낌. 이게 바로 자유의지에서 비롯되는 기쁨인가.
- 비자 만료일을 꽉 채워 호주에 조금 더 머물기로 결정함. 그냥 이래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음. 결심한 지 하루 만에 숙소를 연장하고, 비행기표를 취소함.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예감했을지도 모르겠음.
- 드디어 브리즈번에서 유명한 쥴리어스의 트러플 피자를 먹음. 근데 이제 같이 간 애 중에 한 명이 돼지고기를 못 먹어서 베이컨을 뺀. 얘네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새삼 인연이라는 게 참 놀랍다는 걸 깨달음. 반대로 사람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는 것도 한순간. 아직까진 충격보단 안도를 느낄 일이 많아서 참 다행.
- 마지막이라는 명목의 식사 자리가 늘어나고 있음. 언젠가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상상을 하면 정말 기분이 묘해짐. 한편 전혀 다른 문화권의 두 사람이 깊은 친구사이가 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는 생각도 듦. 물론 그래서 더 특별한 거겠지.
- 가장 친한 친구가 졸업하는 날이라 같이 펠롱즈에 가기로 함. 본인이 친구들을 많이 초대했으니 꼭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 막상 가보니 다 같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없어서 그냥 인사만 하고 돌아간 사람들도 더러 있었음. (사실 그냥 집에 빨리 가고 싶었던 걸지도..) 아무튼 결과적으로 나포함 4명만 남음. 그중 한 터키애가 어떤 한국인 때문에 엄청 마음고생 하고 있어서 한참 이야기 들어주다가 옴. 어글리 코리안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 하루.
- 재스퍼랑 브런치를 먹음. 유럽권 대학원에 대한 상담. 이후엔 버블티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폿이라며 보타닉 가든 내 강가 근처 벤치로 데려감. 어깨에 기대라고 하길래 한참 동안 그 자세로 아무 말 않고 있었음. 이후엔 누가 누가 더 좋은 사람인지 대결. 결과적으로 각자가 만나 본 외국인 중에 최고라는 말로 대충 마무리 함. 그리곤 갑자기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늘 웃겨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껴 힘들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더라. 반면에 나는 사람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근데 나 이 얘기 몇 번 들어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