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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한 달 전의 마음가짐

새로운 꿈

by 영원 Mar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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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이 말 그대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은 괜히 마음이 뒤숭숭해져 밤에 보타닉 가든을 찾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강가 잔디밭에는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만큼이나 머릿속이 복잡할까? 앞으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의 집은 어디일까.




어제는 6개월간 다닌 어학원의 졸업식이었다. 중력이 센 곳일수록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는데, 내게 이곳에서의 시간은 무중력 상태와도 같았다. 그렇다고 마냥 즐겁기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인종차별 때문에, 인간관계 때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러움 때문에 힘들어했던 순간들도 당연히 존재했다. 심지어 남자친구와 헤어지기까지 했거든.


난 늘 이성이 감성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왔다. 주변에선 어떻게 늘 그렇게 태연할 수 있냐고 묻곤 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건 스스로를 애써 지키기 위한 얕은 속임수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이 정말 다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척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이곳에서 본인들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리고 그 솔직함이 조건 없는 위로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내 마음에 차곡차곡 단단한 울타리가 쌓여왔다. 사소한 일에 울고 웃는다는 게 뭔지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무너져도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 탄력성. 나는 호주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걸 얻었다.




해외 대학원이라는 새로움 꿈을 꾸고 있다. 작년 12월, 플랫메이트의 소개로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그 친구들과 아직까지도 가깝게 지내고 있는 영향이 크다. 서로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졌지만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그들이 멋있어 보였다.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얘기할 때면 반짝이는 눈빛이 탐이 났다. 앞으로 어느 곳에서 살고 싶냐고 물어보면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변하는 그 용기가 부러웠다.


그리고 요즘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한 친구가 내 대학원 준비에 정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친구와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내가 이 호실을 배정받지 않았으면, 아니 본인이 내 플랫메이트의 친구가 아니었으면, 더 나아가 우리가 호주에 오지 않았으면 영영 모르는 사이이지 않았겠냐고. 그렇다.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인연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세상이 아주 조금은 더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평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호주에서의 남은 시간 동안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1.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볼 아이엘츠 시험 준비하기

2. 이곳에서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만들기

3. 소중한 인연들이게 후회 없이 마음 쏟기


모든 경험 속에서 내가 옳은 결정을 했다는 확신을 준 건 언제나 사람들이었다. 지금껏 그래왔고, 이번에도 그래왔으며 가장 마지막 순간에도 그럴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그들이 의지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단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 먼저라는 신념은, 언제까지고 그 자리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 어쩌다 보니 영어 얘기를 하나도 안 했네. 외국인을 만나면 겁 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도 정말 많이 늘었다. I naile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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