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에는 이미 웹소설 비엘(Boy's Love) 장르로 완결까지 내신 작가 분이 있다. 그 분에게 위로가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심해작이 대체 뭐지? 검색해 보았다. 찾아보니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작품, 관심을 못 받는 조회 수를 가진 작품 정도의 뜻을 가졌다.
웃고 떠드느라 몰랐다. 얼마 전만 해도 웹소설가로서 데뷔는커녕 원고를 단 1화도 작성하지 않은 사람이라 몰랐다. 계약하고 연재를 하고 완결을 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딱히 남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3화까지 쓴 원고 피드백은 점점 재미없어진다는 것이었다. 희한했다. 나는 점점 재미있게 쓰고 있었는데. 역시 웹소설은 아직 내게 감조차 오지 않는다. 남매작가 중 누나 작가 분이 평을 해주셨다. 1화는 매우 설렜으나 그 후로는 잔잔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글이란 삶을 투영하다 보니 남주랑 여주가 만나서 기껏 산책만 하고 있었다.
산책이 어때서?!라고 우기기에는 웹소설 독자들은 해피엔딩을 쓰지 않는 작가의 작품은 읽지 않고 자신들의 예상과 다른 전개가 펼쳐질라 하면 신명 나게 악플을 단다고 한다. 독자들의 특성상 2화 연속 산책은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얼핏 겉 보기에는 첨단이나 결말이나 스토리전 개가 생각보다 경직된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산책만 하면 안 되고 황태자가 황제의 옥쇄를 훔쳐오거나 애초에 이뤄지지 않을 국가였다 거나 여주가 일만 하고 연애를 안 하는 계기가 된 충격적인 사건 정도를 넣어줘야 한다고 설명해 주셨다. 웹소설은 자극적으로 써야 한다고 하셨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셔서 그냥 듣고 있었다.
딱히 1화도 잘 쓸려고 잘 쓴 게 아니라 그냥 썼는데 칭찬을 받았고 2, 3화도 그저 손 가는 대로 썼을 뿐이었다. 그렇게 초심자의 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계속 썼으면 심해작이 뭐냐, 계약도 못할 뻔했다.
역시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읽기에는 쉬우나 매시간 매초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온갖 머리를 다 써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글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읽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읽기는 쉬우나 쓰기는 어렵다. 웹소설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웹소설을 얕봤다. 막상 열어보니 아주 어려운 거였는데 말이다.
심해라, 그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도 심해에 있었다. 비평을 넘은 비난과 현실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던 중 지지적이고 마음 따뜻하며 유머가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 심해였지만 어둡지 않고 춥지 않았던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현실적인 모습도 충분히 심해였는데 말이다. 우리는 줌미팅에서 화면을 끈 상태로 만났다. 서로의 얼굴을 모른다. 브레인스토밍을 하기 위해 스피커를 켜고 말해야 해서 목소리만 몇 번 들어봤을 따름이었다. 보이는 것은 검은 화면 뿐이었다.
심해는 깊고 어둡고 앞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심해도 비록 내가 좋아하는 바다의 일부지만 우리는 인간이다. 심해에 너무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수면 위 공기도 마시고 싶고 밝은 햇살도 파란 하늘도 보고 싶은 우리에게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심해를 알고 수면 위로 부상해 빛날 이들의 작품이 더욱 깊어지고 가치가 있어지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험생도 아닌데 도서관 마감시간까지 집필을 하고 와서도 불안해하는 작가님의 차기작은 심해에 있지 않기를.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