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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흔한 단어 24화

글쓰기

by Carroty

어느새 퇴사하고 두 달이 됐다. 퇴사를 앞뒀을 때는 열정이 넘쳤다. Chat gpt와 뉴스레터 발행, 주 5회 브런치 발행 등 계획을 수립하고 월 천만 원 벌기의 목표를 세웠다. 작가로 거듭나겠다며 에세이, 동화, 독서일기를 요일별로 나눠 연재하겠다는 포부를 세웠다. 하지만 지켜진 건 월요일 에세이뿐이었다.


게임을 하다가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 게 여러 차례였다. 퇴사 직후,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러닝을 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의 글감을 쏟아내는 삶을 상상했다. 막상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에야 하루키의 ‘잠’이라는 단편소설을 접했다.




매일 뭐라도 읽고,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8월 중순부터 하루 10쪽 읽기와 10줄 쓰기를 시작했다. 하루 10쪽 읽기는 지정한 책으로, 10줄 쓰기는 책 읽고 깨달은 바를 쓰거나 모닝 페이지, 에세이 등 뭐든 상관없다고 스스로 규칙을 정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간 게임을 하며 나태한 삶을 살았던 나는 그나마 브런치라도 없었으면 더 망가진 생활을 했을 것 같았다. 브런치 발행에 해당되는 요일 전날에 가끔은 숙제처럼 글을 쓰곤 했다.


나는 언제부터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나 되짚어보니, 중학교 때부터였다. 그때는 인터넷 소설이 유행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던 나는 당시에 인터넷 소설 카페에 단편소설을 연재했다. 겨우 한 편을 완결하고, 그 이후로는 글쓰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위축됐고, 그때부터 '완결'이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렇게 출간의 꿈은 잠시 접었지만, 죽기 전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내는 것이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다. 2022년 여름, 우연한 기회에 글쓰기 수업과 동시에 공저로 출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친구와 함께 수강을 하면서 글쓰기 수업을 하러 갔다. 퇴근 후 부랴부랴 달려가던 수요일 저녁과 해가 지도록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일요일. 그 시간 속에서 글은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공백으로 쏟아졌다.


그렇게 일주일에 하루, 10시간씩 한 자리에만 앉아있었다. 그 시간을 통해 지난 상처에서 치유받기도, 해방되기도 했다.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7년 만에 처음으로 스스로를 세상에 한 발 내딛게 한 유일한 작업이었다. 글쓰기였다. 그다음 해 여름에 나는 에세이 한 권을 오롯이 홀로 써보기에 도전했다. 짧은 시간 동안 더 많은 분량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부족함도 아쉬움도 많았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는 글쓰기가 좋다,는 것을. 나는 글을 사랑하고 글로 꿈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계속 꿈을 꾸고 싶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 꿈을 잃지 않기 위해 브런치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가느다란 줄이라도 잡고 있고 싶었다. 결국 건강 악화로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게 어떤 것보다 강력한 동아줄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작가는 끊임없이 경험하고, 사유하고, 쓰고, 그를 통해서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를 통해 경험과 사유를 기록하며 글쓰기 근육을 지켜가고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사유하는 삶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꾸준히 쓰고, 꾸준히 브런치북 공모전에 참여하고 내가 이 습관을 지켜나간다면 훗날 통창이 있는 방을 책꽂이로 둘러놓고 그 가운데 6인용 테이블을 하나 두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눈 뜨면 그 방으로 와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신 후 글을 쓰는 나를 그린다. 통창을 통해 나의 소중한 반려견들이 뛰어노는 것을 바라보고, 가끔 탄산수를 가지러 오는 남편이 지나가며 나에게 입맞춤해 주고 가는 삶. 그게 내가 브런치를 통해 결국 이뤄낼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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