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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흔한 단어 25화

자식

by Carroty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조카가 내게 물었다.


"이모, 이모는 봄비 엄마야?"

"응, 봄비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랑 헤어졌어. 그래서 엄마가 없어서 이모가 엄마가 되어주기로 한 거야."


조카는 나의 대답을 받아들여서인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사한 미소를 짓고 봄비를 따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물음이 마음속 깊이 남았다. 모란시장 장날에 거리에서 팔리던 강아지. 그게 봄비였다. 아니, 코순이였다. 2018년 5월, 모란시장에서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에게 우연히 구조된 강아지. 태어난 지 불과 2개월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는 무기력하게 누군가에게 팔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페이스북 피드에서 스크롤을 내리다 마주한 코순이의 사진을 보고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일인지 논리적으로 설명이 어렵다. 홀렸다는 말밖에 설명이 안 된다. 단비의 어릴 적 모습을 빼닮은 코순이는 영락없는 단비의 동생이자 자식 같았다. 그리고 우리의 식구 같았다. 코순이를 데려오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남편에게 보여주고, 데려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고맙게도 남편은 흔쾌히 동의해 줬다.



어쩌면 그 해 1월에 우울증, 불안증, 공황장애를 진단받고 생기가 없던 내가 가장 활력이 넘쳤던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처음부터 딩크였던 건 아니었다. 결혼식 직후 자궁 외 임신으로 병원을 오가며 남편은 의사에게 최악의 경우까지 안내받았다. 남편은 '아내를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머잖아 자연유산으로 끝났지만, 죄책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 갑작스럽게 아빠가 돌아가셨다. 나는 연이은 상실로 산책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우울에 이르렀고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던 중 코순이를 보게 된 것이었다. 비록 가진 건 없어도, 널 사랑해 줄 마음만큼은 충분한 나와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입양신청서를 작성했다. 길고 까다로운 심사였다. 은연중 우리가 함께 할 것을 알았던 걸까. 심사 결과도 알기 전, 이미 이름을 지어두었다. 봄비라고.


하지만 우리 쪽에서도 단비의 심사가 필요했다. 단체의 합격 통보를 받은 우리는 단비와 동행했다. 봄비보다 어른이라 너그러운 모습을 보인건지, 단비는 봄비에게 관대했고 함께 산책도 무리 없이 이어갔다. 비로소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남편의 동의, 단체의 심사 그리고 또 다른 반려견의 허가까지. 길고 긴 여정이었다.



이제야 생각해 보면 자궁 외 임신이 아니라 정상적인 임신이었고, 출산을 했다면 예정일이 5월이었을 것이다. 공교롭게 그 달은 봄비가 우리 식구가 된 날이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내 마음으로 낳은 자식을 품기로 했다. 그리고 봄비가 우리 식구가 된 지 벌써 7년이 됐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조금만 뛰면 지치고, 오래 걸으면 느려진다. 단비가 우리 곁을 떠난 지금, 봄비는 천천히 걸어도 좋으니 오래 함께 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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