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기대되는 그대에게'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는 나의 단편 소설 '마음에 묻다'는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빠를 떠올리며 쓴 소설이었다. 아빠는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완전히 낫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아빠의 술 문제는 우울증에서 시작됐다. 아빠가 젊었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정신과 진료가 보편적이지 않았고, 아빠 또한 병원치료가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20대가 끝날 무렵, 나 또한 우울증을 진단받았으나 처방약을 복용할 때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말에 그때부터 술을 끊었다. 다행이었던 건지, 나는 음주에 흥미가 떨어진 때였고 가무는 원체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웠냐, 하면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떤 중독이든 끊기가 쉬웠다. 왜냐면 다른 요소를 찾아 대체하면 됐기 때문이다. 술, 담배, 카페인 그리고 가챠(확률성 아이템 뽑기) 등 중독은 형태만 바꿔 계속 나를 찾아왔다. 그림자처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한창 회사생활로 힘들었을 때, 내가 중독되어 있었던 것은 아이스크림이었다. 퇴근길,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들어가서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다섯 개씩, 열개씩 쓸어 담아 몇만 원을 결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을 잔뜩 처박고 하나씩 까먹었다. 바는 한 번에 대여섯 개 정도 먹었고, 파인트 한통을 다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먹고 나면 입안부터 목구멍까지는 시원했지만, 마음은 더 텅 빈 기분이었다.
정신과 진료 때, 의사에게 이와 같은 고민을 말했더니 '트리거를 찾아서 끊어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버스를 탈 때, 아이스크림을 사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세요. 버스를 내릴 땐, 가게를 쳐다보지 말고 바로 집으로 향하세요'라고 조언했다. 나는 우울해지면 유제품이 들어간 음식을 찾고, 답답할 땐 시원한 음식을 찾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급격히 올랐던 당이 떨어지면서 우울감을 더욱 부추겼을 수 있다. 게다가 지연성 알레르기로 유제품을 먹으면 염증이 생기는 나는, 제 몸에 독약을 넣고 있었던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회사생활이 종료되고, 내가 가장 끊기 힘들었던 것은 모바일 게임이었다. 꾸준히 과금까지 해가며 해 온 게임을 접기란 쉽지 않았다. 매일 10쪽 읽기, 10분 걷기 등 스스로 만든 루틴으로 하루를 채우고, 핸드폰을 멀리 두고 생활하는 습관을 개선하는 등의 방식으로 접속 빈도를 낮춰 겨우 끊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광고를 보고 홀린 듯 다른 모바일 게임을 설치한 나는 하염없이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바로 한 달짜리 패키지를 결제했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 화면만 두드리고 있었다. 반려견 봄비가 산책 나가자고 쉴 새 없이 끙끙 거리는 통에 일어났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그 상태로 누워있었을지도 모른다.
봄비와 산책을 다녀온 후, 게임을 지우려다 실수로 접속해 또 붙들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삭제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날 하루 중 8시간을 그 게임하는데 쏟아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또다시 자연스럽게 중독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럴 바엔 활자 중독이 되어야겠다. 매일 읽는 것뿐만 아니라 매일 강제적으로 쓰고 발행하는 일을 만들어야겠다. 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시즌 2를 시작해야겠다, 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이 다짐을 브런치에 발행해 버리면 뒷 일은 미래의 내가 책임질 거다. 그러면 나는 자연스럽게 '글쓰기 중독'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장 반가운 중독이 될 것 같다. 이 중독은 나의 삶을 살리는 쪽으로 나를 데려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