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지니 가장 아쉬워진 부분이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직장인일 때는 나를 책임져 줄 다음 달의 내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내가 사라졌다. 지금의 나는 남편에게 기대어 산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는 죄로, 그는 나의 물욕까지 떠안아야 한다.
지난달인가, 난데없이 이북리더기가 갖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매일 출퇴근할 일도 없지만, 전자책을 핑계로 핸드폰을 달고 다니는 나를 어떻게든 고쳐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핸드폰 대신 이북리더기로 전자책을 보면 어떨까, 하는 단 꿈을 꿔보았다. 꿈만 꾸는 것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실제로 제품과 가격까지 알아봤다. 대체로 40만 원이 가까운 가격이라는 것을 알고 조용히 창을 닫았다. 대신 서랍장을 열어서 공장 초기화를 해둔 6S를 꺼냈다. 카메라가 망가졌고, 액정에 살짝 검은빛이 돌긴 하지만 이북리더기로 대체하기엔 무리가 없었다.
한 달에 10만 원 정도의 종이책을 사던 습관이랄까, 소비행태도 있었는데 그것도 포기했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빠르게 쌓여가던 책도 줄어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멈췄다. 대체로 많은 책을 구독 서비스로 읽고, 서비스하지 않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집에 보지 않은 책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솔직히 할 말도 없다. 이렇듯 마음껏, 양껏 책을 사지 못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어릴 때부터 버렸던 책과 누군가에게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책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 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위인전, 소설 전집, 과학 전집 등을 비롯해서 학창 시절 내가 좋아해서 사 모으던 해리포터 시리즈. 이사를 다니면서 짐이 되어 버린 것과 낡고 해져서 버린 것, 그리고 내가 읽지 않을 줄 알아서 버렸는데 알고 보니 베스트셀러였던 책들. 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떠다닐 때마다 속이 상한다.
특히 나는 연애하면 내가 좋아하는 책을 상대방에게 많이 빌려주곤 했는데, 헤어질 때마다 그 책을 다 돌려받지 못한 게 매번 아쉬웠다. 그러면서도 다음 상대와 연애할 때, 책을 또 빌려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와 함께 공유하고, 그 또한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얄팍한 욕심 때문에 책을 잃은 것 같다. 책을 잃을 때마다 그 시절의 내가 한 움큼씩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반대로 이별하면서 부러 책을 선물한 적도 있었다. 한상복 저자의 『배려』라는 책이었고, 나는 그에게 차인 마당에도 이 책을 전해주겠다고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헤어짐을 고한 그는 『파이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사람이었고, 나는 아직도 그 소설을 읽지 않았다. 그 또한 내가 선물한 책을 잊었거나 잃어버렸단 이유로 여전히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며 내가 20대 내내 연애한 모든 사람들을 되짚어봤을 때, 함께 카페에 가서 나와 책을 읽은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주로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책을 읽었고, 연애하는 이와 동시에 한 공간에서 책을 읽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안에서 유일한 한 사람이 나랑 같이 책을 읽어줬는데, 그 사람이 지금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과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게임을 함께 하진 않는다. 또한,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분야가 달라서 같은 책을 같이 읽지 않는다. 하지만 한 공간에서 각자의 취미를 즐기고, 서로의 취향을 즐긴다. 그것이 우리가 결혼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려면 취미가 같은 게 좋다고 조언하는 사람들의 말은 결국 '서로의 취미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가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때, 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서 서로의 책 내용을 궁금해하진 않는 것처럼. 결국 우리는 서로가 읽는 책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서로의 취향을 존중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사는 방식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작은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