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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흔한 단어 23화

우울

by Carroty

단순한 나태인 줄 알았던 무기력은 나를 긴 침잠에 빠지게 만들었다. 글쓰기도 모자라 독서까지도 뒷전에 두고 내가 빠져든 것은 게임이었다. 출근하듯 스팀에 접속하고, 스타듀벨리를 켰다. 이 전원생활 시뮬레이션 속에서 나는 자유인 줄, 방종을 즐겼다. 우리는 학창 시절 '슬기로운 생활'이었는지, '도덕'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교과서를 통해서 배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어쩌면 '사회'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7월 말, 5박 6일이라는 나름의 긴 여행을 다녀오고 그마저 남아있던 모든 루틴이 부서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랐다. 졸리면 자고, 자고 싶을 때까지 자고 일어나서 배고프면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곤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다 배가 고프면 다시 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커피 한 잔을 타서 게임에 몰두했다. 남편이 퇴근해서 올 때까지 게임 속에서 살았다. 게임 속 NPC는 몇몇 빼고 모두 친절했고,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먹고사는 걱정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약 2주가 지났을 무렵. 누구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는 나태로운 삶이 지속되던 어느 날.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던 내게 내가 물었다.


"너는 이 삶이 괜찮니?"


그 순간, 내가 놓친 게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놓친 것이었을까. 나는 분명히 건강해지려고, 건강하게 살아내려고 회사를 그만뒀는데 이렇게 사는 것은 '건강한 삶'인가? 반추하게 되었다. 나는 잊고 지내던 가장 큰 건강 문제를 깨달았다.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8년 전, 공황장애가 온 뒤부터 여전히 우울증으로 약을 처방받아서 먹고 있었다. 이게 일상처럼 되어버리니까 내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무기력은 우울증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방을 위해 의사를 만나러 가면, '언제부터 운동하실 거예요?' 혹은 '이제 퇴사하셨으니까 운동하실 거예요?' 등의 운동에 관련된 질문을 끊임없이 했다. 나는 그 말이 떠오르면서 '걸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나를 살리기 위해 걸어야겠다, 그렇게 '매일 10분 이상 걷기'를 스스로와 약속했다.


아직은 더운 날씨가 계속되어 해가 질 무렵에 집을 나섰다. 오래도록 집 안에만 있어서 나가기를 미루다 미루다 해가 지고 나서야 나가게 된 것이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다짐한 첫날은 의지가 강해서 어떤 약속이든 지키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바로 다음 날, 비가 내렸다. 게다가 약속도 있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10분을 걸으려고 했건만, 무섭게 쏟아지는 비에 발걸음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렇게 '비'를 핑계로 걷지 않으면, 앞으로 나는 비, 바람, 눈, 추위 등 온갖 기상을 핑계로 집에 있을 자신이 넘쳤다. 그래서 우산을 쓰고 걸었다. 그렇게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려 동네 두 바퀴를 돌고 집에 들어갔다.


다른 날보다 나 자신이 뿌듯했다. 의지가 아닌 이해로 만들어진 성공이었다. 나와의 약속을 해내겠다는 의지가 아닌, 우울을 이겨내기 위한 이해로부터 해낸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계속된 걷기가 시작됐다. 어느 날은 남편과도 같이 나갔고, 남편 없이 봄비(반려견)와만 나가는 날도 있었다. 저녁 약속을 위해 만난 친구들에게 '매일 10분 이상 걷기'를 해야 한다며 함께 걷기를 하기도 했다. 다른 일로 늦어져 밤 9시가 되어서 나간 날도 있었다. 너무 늦어서 '하루쯤'이란 생각으로 건너뛸까도 했지만, 공원에 들어선 순간 내가 나와의 약속을 해내기에 늦은 시간이란 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원에는 걷기, 슬로 조깅, 러닝 등 자신만의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허리 보호대나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걷거나 뛰었고, 목발을 한 채로 산책을 나오신 분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앞으로도 나는 어떤 것도 핑계를 댈 순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엔 생명력이 가득했다. 집 안에 나 혼자 누워있을 때는 느끼지 못한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나는 그동안 무엇 때문에 어떤 것들을 못한다고 했었는지 되짚어보게 되었다.


무너질 수도, 주저앉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고 있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을 내고, 일어나서 뛰는지 둘러볼 필요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조금 더 오래 걷고, 어느 날은 목표치만 간신히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꾸준함에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본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함께 해야 할 우울증인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이렇게 함께 간다면 건강한 동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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