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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이제는 도망치지도 못 해

by Carroty

3일 차 글쓰기를 위해 브런치 스토리에 접속했다. 여느 때와 같이 알림 확인을 했는데, 이개 웬걸. '조회수가 10000을 돌파했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글은 다름 아닌 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1화, 어차피 말해도 관심 없을걸. 통계를 보니 다음 메인페이지에 올라간 것 같았는데,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 기쁨도 잠시였다. 이젠 쉽게 포기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헛웃음만 났다. 매일 열심히 연재하라는 관리자의 응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은 양압기가 너무 불편해서 뒤척이다 일찍 일어났다. 9시쯤 되었나 했는데,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네 시간 남짓 잠 탓에 공복혈당이 126mg/dL로 어제보다 높았다. 그렇지만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봐두었기도 했고, 오늘부터 아침 산책으로 바꿀 계획이었어서 반려견 봄비와 함께 산책에 나섰다. 내심 산책을 다녀오면 혈당도 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들 속에서 공원 산책을 간다는 것은 왠지 모를 여유를 만끽하게 해 줬고, 내가 출근할 당시 부러워하던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모자와 마스크로 나를 꽁꽁 숨겨버린 지금은 한껏 산뜻하게 차려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근사해 보였다. 어제 남편에게 '우리 집에서 봄비가 제일 안쓰러운 것 같아.'라고 말하니, 남편이 '내가 제일 불쌍한 것 같아.'라고 말해서 같이 웃어넘겼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속으로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있잖아, 나는 그런 네가 부러운걸.'이라고 생각한 내 마음을 알까?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 자영업자는 고정 수입이 들어오는 직장인이 부럽고, 직장인은 마음대로 출퇴근 시간을 정할 수 있는 자영업자가 부럽고. 이렇게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쥘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끊임없이 부러워한다.



산책 중 너구리를 만나, 너구리에게 달려들어 친구가 되고자 하는 15kg이 넘는 녀석을 말리느라 팔이 뽑혀나가는 줄 알았다. 산책을 마치고 측정한 혈당은 117mg/dL. 첫 측정 이후 1시간 정도 지난 것과 산책의 콜라보라고 볼 수 있었다. 꽤 만족스러웠다. 계획했던 단백질 셰이크도 먹었다. 아, 오늘은 정말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걸?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남편이 배고프다며 깨웠다. 또 한시였다. 최근 들어 자꾸 남편한테 화가 많이 나는 이유가 내가 출근을 안 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같이 붙어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출근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출근하는 사람이 멋져 보이긴 하지만, 나는 지금의 삶을 조금 더 누리고 싶다. 그래도 덕분에 점심식사는 기가 막히게 챙겨 먹는다. 그걸로 오늘도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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