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어쩌면 속고 있을지도 모른다
점심 약속이 있어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코 끝을 스치는 가을 냄새가 너무 좋길래 워치에서 '실외 걷기'를 켰다. 집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서 책도 반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더욱 들뜬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점점 가로수가 사라졌고, 도서관에 도착하니 이미 걷기 시작한 지 25분이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당기는 종아리 때문에 버스를 타고 싶다는 유혹이 스쳤다. 하지만 괜한 오기에 집까지 걸어갔다. 도착해서 보니 약 3km 정도를 걸었고, 평균 심박수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무리는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혈당이 100mg/dL 정도로 떨어졌구나. 내 몸은 높은 혈당을 유지하고 있는 게 익숙한지, 100mg/dL 정도의 정상수치로 진입하면 비상이 걸린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당 떨어졌다'는 신호를 내게 보내는데, 처음에는 이게 진짜 당이 떨어진 건 줄 알았다. 내가 죽는구나, 이렇게 운동하다가 쓰러지면 어떡하지? 나는 공복 운동이 안 맞는 건가 봐, 하며 온갖 설레발을 치고 '어서 내 입에 당을 넣어줘야 해'라며 혈당 올리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저혈당의 신호라면, 수치상 몇일까? 정말 저혈당일까? 그때마다 측정해 보니, 신기하게도 100mg/dL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속지 않고, 내 몸에게 말한다.
"어, 그래. 지금 정상 수치 진입."
이번에도 어지러움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혈당을 측정해 봤다. 102mg/dL. 정상 수치였다. 안도하며 물을 좀 마시고 앉아있었더니 어지러움도 금세 가셨다. 오늘도 속을 뻔했다. 내가 또 유난스럽게 '어머, 나 죽는 거 아니야'하면서 냉장고에 있는 샤인머스켓을 한 송이 호로록 넣어버렸다면 요 며칠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뇌는 사기를 치고, 인슐린은 파업을 하고 가운데서 너무 힘들다.
그래도 공복 시간을 12시간 이상으로 늘리고, 수면시간을 적어도 7시간 이상 확보하니 공복 혈당이 110mg/dL 정도로 떨어졌다. 그전에는 130mg/dL 정도에서 유지됐던 걸 생각하면 꽤나 긍정적이다. 나빠지는 데도, 좋아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바심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건 숨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