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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그랬구나, 치킨을 꼭 먹어야겠구나

by Carroty

전 날 무사히 계획대로 식사를 마쳤지만, 여기엔 사실 큰 유혹이 있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이 ‘치킨 먹을래?’ 공격을 했던 것이다. 저녁 식단까지 미리 박제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둔 터라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고 된장찌개를 끓이러 나갈 수 있었다.


된장찌개를 끓이는 내내 치킨을 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튀김옷을 벗기고 먹었어야 했나? 아니면 애초에 구운 닭을 시켰어야 했나? 남편이 레드콤보를 시켜 먹고 싶다고 했으면 두 방법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릴수록 힘들어졌다. 치킨이 먹고 싶지 않아 졌다. 이게 무슨 일이람. 내가 힘들 때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나를 달래주던 친구가 아니었던가, 우정과 사랑 사이 그 진한 애정을 가졌던 친구가 보기 싫어지다니. 남편에게 한 방 먹이는 것은 그보다 중요했던 것이었나 보다.



친구들을 만나 애슐리 퀸즈에서 거하게 포식을 즐겼다. 음식 이름은 사진을 보고 유추해서, 최대한 먹은 순서대로 적었다. 케이크는 한 조각도 안 먹으면 눈에 아른거려서 나중에 후폭풍이 더 심하게 올 것 같았다. 케이크 중 먹어보고 싶은 두 가지를 한 조각씩 가져와서 한 입씩 맛봤다. 둘 중 하나만 성공이었다. 그래도 피자, 치킨 등 밀가루로 만들어진 음식이나 튀김옷을 입힌 음식은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마침 해산물 요리가 많아서 더욱 신나게 먹을 수 있었다.


돌아오며, 내심 혼자 즐겼나 싶어 미안한 마음에 남편에게는 오늘 매콤한 오징어 볶음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레시피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 언제 와? 배고파, 치킨 시켜 먹자.

아, 너는 기어이 치킨을 먹어야겠구나. 자신은 kfc 통다리살 4조각만 있으면 된다고. 치킨을 더 많이 시키는 대신 햄버거를 시킬까 잠시 흔들렸지만, 결국 남편 것만 주문했다. 점심을 과하게 먹은 터라, 배가 고프지 않기도 했고 이 상태에서 치킨까지 먹으면 너무 과하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사진첩을 열어보지 않아도 배에 손을 얹는 것만으로도 점심의 무게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치킨이 도착했다는 알람에 바로 셰이크를 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치킨 봉투는 어느새 내 손에 있었을 테니까. 고소한 기름 냄새와 바삭한 소리를 들으며 바로 옆에서 꿋꿋하게 셰이크를 마셨다. 통다리살은 4조각짜리가 없어서 5조각을 시켰지만, 남편에게 비굴하게 '한 조각만 먹을게'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나는 순간의 즐거움보다 미래의 즐거움을 위해 딱 한 입 참았다. 치킨아, 우리 잠시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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