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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늦잠이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by Carroty

남편이 배고프다며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가끔 생각해 보면 남편은 나한테 배고프다는 말 외에는 딱히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것 같다. 아, 뭐가 필요해서 사야 된다고 말할 때도 말을 시키긴 한다. 얼마 전에 남편한테 '오빠는 스스로 생필품 구매하고, 옷 사고, 이런 거 귀찮아서 나랑 이혼을 쉽게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라고 말하자, 수긍하기도 했다. 이런 대화도, 결국은 애정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눈을 뜨니 한시였다. 세상에. 열두 시간을 잤다. 잠결에 반려견 봄비가 깨우긴 했는데, 손으로 훠이훠이 내젓고 다시 잠든 게 기억이 났다. 눈을 뜨자마자 공복혈당을 측정했다. 111mg/dL이라니! 최근에 130mg/dL 근처만 맴돌던 걸 생각하면 기적 같다. (정상은 100mg/dL 미만이다.) 어떤 게 요인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늦잠으로 인해서 공복이 길었다. 역시 저녁 식사 시간을 앞당겨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전 날, Chat GPT가 처방해 준 나의 앞으로 3개월 동안의 생활패턴은 아래와 같다. 참고로 보조제 루틴은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 시간을 분배해 준 것이다. 나는 지금 제2형 당뇨를 진단받기 직전의 혈당 수치이고, 고지혈증, 다낭성 난소 증후군, 중증 수면무호흡증이 있다. 그래서 각 과 의사들이 하나같이 "자정 전에는 자라"고 당부했지만, 아직도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은 어렵다. 지금도 새벽 1시가 넘어가도록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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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을 줄였다. 전에는 300g짜리 한 팩을 '1인분'이라고 생각해서 600g씩 구워서 남편과 나눠먹었는데, 나의 다이어트를 위해서 오늘은 300g짜리 한 팩만 구웠다. 남편에게 슬쩍 '이거 하나만 있어도 될까?'라고 물어봤지만, 남편은 '된장찌개 있으면 괜찮지, 뭐'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어쩌면 남편은 나 몰래 내가 올리는 모든 글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걸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남편도 나의 다이어트를 바라고 있다는 건가?


간식도 건강하게 바꿨다. 그런데 오늘 선물 받은 샤인머스켓이 왔다. 사실 당뇨가 있는 사람한테 가장 안 좋은 과일이 '포도'라고 한다. 게다가 샤인머스켓은 극강의 당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너무 맛있잖아. 지금 후숙 중이어서 이틀 뒤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루에 5~6알 정도로 제한하면 괜찮다고 한다. 하루가 아니라 간식으로 한 끼도 가능한 나에게 너무 가혹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사과도 큰 사이즈 기준으로 1/2개가 권장량이라고 한다. 쉽게 생각해서 과일은 하루에 한주먹 안에 들어올 만큼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제철 과일을 열심히 먹어서 혈당이 망가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고 싶지만, 한 여름에 복숭아를 5~6박스씩 사서 쟁여놓고 먹던 나의 지난날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샤인머스켓도 말할 것도 없고. 이래서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주먹을 쥔 손을 오래 내려다본다. 어떻게 하면 주먹이 커질까, 궁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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