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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감자튀김 앞에서 의지가 무너지기 전에

by Carroty

전날의 식단에는 사연이 있다. 아웃백에서 거하게 먹은 탓에 몸도 마음도 포만감에 잠겨 있었다. 저녁은 이미 셰이크로 정해 둔 상태였다. 남편은 저녁으로 개운하게 라면이나 끓여 먹자고 했다. 점심을 무겁게 먹었는데 저녁으로 탄수화물 파티라니. 하필이면 그게 라면이라니. 그 길로 다이어트가 끝나버릴 것 같았다. 남편은 내게 '라면 냄새를 맡으면 못 참을 텐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라면 냄비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지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식탁에 앉아 라면 냄새를 맡으며 단백질 셰이크를 먹었다.


나는 삼겹살을 눈앞에 두고도 참고 안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진짜 못 참는 게 있다. 바로 감자튀김이다. 아웃백에서는 워낙 먹을 게 많았기 때문에 감자튀김을 외면할 수 있었다. 그날 의식적으로 튀김류와 크림 파스타를 피했는데, 마지막 순간 아이스크림에 항복했다. 나는 셰이크에 감자튀김을 찍어 먹을 정도로 감자튀김에 진심이다. 감자튀김이 메인이고, 햄버거는 핑계였다. 한 번은 야근할 때, 같이 야근하는 동료들과 감자튀김을 산처럼 쌓아놓고 먹었다. 그때가 가장 설레고, 가장 무모했던 야근 식사였던 것 같다.



물론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갓 튀긴 감자튀김에 뿌려진 소금맛에 길들여진 건지, 맥도널드 감자튀김을 가장 좋아한다. 왜 이렇게 감자튀김 이야기를 길게 하냐면, 오늘 그 감자튀김을 저버린 영광스러운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점심으로 장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적추적 이슬비가 내리는 납골당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온 탓에 에너지가 너무 떨어졌다.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도, 에너지는 쉽게 차오르지 않았다. 지친 우리는 쉽고 간편한 패스트푸드 유혹에 넘어갔다. 한 번은 괜찮겠지, 그 말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남편의 선택은 맥도널드였다. 순간, 머릿속에 감자튀김이 스쳤다.


맥도널드 원픽은 쿼터파운드 치즈지만, 나는 유제품을 피하기로 했으니까 메뉴 사진 중에 치즈가 없어 보이는 1955로 선택했다. 그리고 과감히 감자튀김을 저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남편이 감자튀김을 먹겠다고 했다. 코울슬로가 있는데도 남편은 '맥도널드는 감자튀김이지!'라고 말하며, 감자튀김을 주장했다. 진짜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다.


남편이 감자튀김 라지를 혼자 먹는 내내 나는 햄버거에 집중했다. 그리고 결국 승리했다. 감자튀김을 한 개도 집어먹지 않았다. 일전에 '감자튀김을 드실 바에 햄버거를 두 개 드세요'라고 말해줬던 나의 트레이너의 조언을 떠올렸다. 하지만 다행히 햄버거 하나로 배가 충분히 불렀고, 코울슬로도 많이 먹지 못했다. 요새는 탄산음료가 너무 달게 느껴진다. 물을 마시는 게 더 편해졌다. 입맛이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짠맛과 단맛의 고리를 끊어내는 법을 이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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