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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냄새를 참을 수 없는 음식

by Carroty

전날 남편이 야식으로 교촌치킨 레드콤보를 시켰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치킨 냄새가 자꾸 날 자극했다. 남편과 함께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곤욕이었지만, 일하고 온 남편이 혼자 식사를 하게 둘 순 없었다. 야식에 교촌치킨 한 줄을 넣고, 냅다 먹어버릴까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내일 먹을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참자, 지금 이 시간은 참자. 남편이 치킨을 남기길 바랐다. 안 남기면 안 남기는 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 남편은 혼자 닭다리를 다 먹어치웠고, 윙과 봉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신에게는 아직 9조각이 남아 있었다.


기다리던 오늘이 됐다. 아침부터 레드콤보를 때려 넣기에는 양심에 가책이 들었다. 점심에 남편과 둘이에 먹기엔 양이 적었다. 결국 남편이 없는 저녁에 꺼내며, 지난번에 남긴 마늘빵을 슬그머니 곁들였다. 토요일 점심에 한 끼만 하겠다고 다짐한 치팅 밀을 며칠 만에 다시 하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래도 밤 11시에 먹는 것보다, 저녁을 먹고 야식을 또 먹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고 자위했다. 오늘 밤에 남편에게는 김치전을 해줬다. 김치전 냄새는 전날 레드콤보처럼 자극적이진 않았지만, 유혹적이었다. 내가 기름에 튀겨지거나 구워진 매콤한 냄새에 많이 흔들리는 건가 싶었다. 지글거리는 기름 냄새를 떠올리자, 반사적으로 군침이 돌았다. 기억에서 태어나는 허기같았다. 하지만 오늘도 참아냈다. 야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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