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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한 입만'이 무슨 뜻이죠

by Carroty

어김없이 오늘의 모임 장소도 아웃백이었다. 이 정도면 아웃백 러버처럼 보이지만, 일 년에 한 네 번 정도 간다. 추석 연휴 때 가족들과 이미 한 번 갔으니, 이렇게 빨리 또 가면 돼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1년에 네 번이면 적은 편 아닌가. 혀가 길어지면 켕기는 게 많은 거다.「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를 시작하고는 첫 만남이었다. 나는 메시지를 보냈다.


- 십 분 정도 뒤에 도착 예정입니다. 저는 텐더 같은 튀김류와 크림파스타 같은 유제품 진하게 들어간 건 안 먹을 예정입니다. 그 외에 선호하는 건 샐러드와 스테이크예요. 아, 탄산이랑 에이드도 안 먹습니다.


내가 보낸 메시지가 유난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유제품을 유달리 조심한 이후로 얼굴(특히 턱 라인)에 염증성 여드름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굴빛이 좋아졌다고 했다. 얼굴빛이 좋아진 건 퇴사를 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유제품을 계속 조심하고 있다. 나는 우울해지면 유제품을 찾고, 유제품을 먹으면 염증이 올라온다. 이 연결고리를 알았으니 구태여 챙겨 먹을 필요가 없었다.


예전 같으면 메뉴를 잔뜩 시켰을 텐데, 오늘은 평소보다 두어 개 정도 덜 시켰다. 친구들은 확실히 나에게 먹는 양이 줄었다고 말했다. 나는 식전에 차전자피를 먹고, 애사비를 물에 타 먹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점심도 밥을 안 먹으려고 했는데, 배려심 넘치는 남편이 내 밥까지 해동해 줘서 고마운 마음으로 먹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메뉴 중에 오지 치즈 프라이, 보늬밤 몽블랑 케이크를 손도 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 입만'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대체적으로 뭔가 권할 때, 사람들은 '한 입만 먹어봐.'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한 입만 먹고 딱 끊어낼 수 있는가. 나는 아예 안 먹을 수는 있지만, 한 입만 먹고 내려놓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서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눈길은 주되 손길은 주지 않으려고 한다. 혀 끝으로 무슨 맛인지 알게 되는 순간, 나의 뇌는 '더 내놔!'라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한 입만'을 거절한다. 나를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한 입도 먹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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