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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y Jan 17. 2024

김봄비를 소개합니다

털은 많지만, 빡빡이가 되는 건 싫어

남편과 같이 퇴근하던 어느 날,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오빠, 봄비 털이 황금이었다면 어땠을까?"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남편은 나의 이런 '만약에' 질문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나 또한 남편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물어봤다기보다 '그런 상황이 된다면 내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볼 테니 같이 한 번 생각해 보고 들어줘.'라는 의미가 강하다.     


"오빠, 그러면 처음에는 내가 봄비의 빠진 털을 모아서 부를 축적하다가 욕심이 나면 털을 밀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왜 털이 빨리 자라지 않느냐고 봄비를 추궁하겠지? 그러면 결국 파국이네."     


동시에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이야기가 생각났다. 탐욕에 눈이 먼 농부가 결국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나 또한 욕심에 눈이 뒤집혀 봄비를 진심으로 아껴주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봄비의 털이 황금이 아닌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까지 미치게 된 건 봄비의 털이 유독 많이 빠지기 때문이다. 단비는 털 빠짐이 적고 추위를 많이 탔고, 봄비는 털 빠짐이 심하고 추위에 무척 강했다. 각자 단일모, 이중모의 특성을 뚜렷하게 보였다. 이중모인 봄비는 단비에 비해 털 빠짐이 심한 것이 당연했기에 따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봄비의 털 빠짐이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봄비랑 함께 산 지 5년이 지나고 병원 진료 때 알게 되었다.      


이사 오고 나서 처음으로 가는 병원이었다. 낯선 병원이 무서운 탓인지 봄비의 털이 미친 듯이 빠지기 시작했다. 진료실 가득 봄비 털이 봄바람에 날린 민들레 홀씨가 하늘을 수놓듯 펼쳐지는 것을 보고 의사가 말했다.     

“보통 저 정도로 털이 빠지진 않은데, 봄비는 털 영양제를 먹이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는 인터넷에서 털 빠짐 관련 영양제를 찾아서 원하는 것으로 급여하면 된다고 알려줬고, 그 말에 따라 영양제를 급여하기 시작한 뒤 봄비 털 빠짐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봄비의 털 빠짐은 평균적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평균값이 존재한다. 여러 기관, 업체 등에서 평균 연령, 평균 키, 평균 몸무게, 평균 성적, 평균 연봉 등 셀 수 없이 많은 평균값을 자료로 내놓는다. 우리는 자료를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 자신이 평균과 비교했을 때 어느 범주에 있는지 가늠한다. 우리는 비교하며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비교를 떠올려보자면 ‘나는 동생보다 피아노를 못 쳐, 나는 친구들보다 키가 작아, 나는 남편보다 공부를 못했어 등’ 정말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는 굉장히 단편적인 것이다. 나는 동생, 친구들, 남편보다 잘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얼굴이 더 예쁠 수도 있고, 집에 가지고 있는 두루마리 휴지 수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보다 무엇이든 항상 다 잘하고, 많이 가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반드시 평균값을 넘어야 ‘정상’인 걸까?     


물론, 봄비와 같이 의학적인 면에서 봤을 땐 평균값이 어떤 질병의 척도가 될 수 있으니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에 있어서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재단하고, 평가하고, 비교하는 삶을 살고 있다.      

키가 작든 크든,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라면, 설령 하는 일이 큰돈이 되지 않더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라면 그 자체로 멋지고 대단하지 않은가? 나는 나로서 존재할 때 가장 빛나는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자신이 먼저 알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봄비도 털이 많이 빠졌던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똑같은 봄비고, 여전히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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