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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y Jan 10. 2024

김봄비를 소개합니다

겁이 많지만, 겁쟁이로 보이는 건 싫어

우리가 입양할 당시 봄비는 내가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귀여웠다. 지금의 봄비를 보면 그때의 강아지를 어딘가에 잃어버리고 온 것만 같은 기분이다. 감사하게도 봄비는 우리와 함께 살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다 큰 봄비를 보고 남편은 내게 말했다.


“선영아, 봄비가 원래 크는 정도보다 더 큰 것 같은데?”     


그 뒤로 남편은 나를 ‘강아지 확대범’이라고 불렀다. 남편이 간과한 점이 하나 있는데, 본인도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배만 보면 '곰돌이 푸'같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챙겨주는 것으로 애정표현을 한다. 특히, 먹을 것으로 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 초대되어 온 손님들은 먹다 지쳐 돌아가면서 말한다.     


“사육당한 것 같아.”     


나에게 집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고, 휴식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는 것이다. 손님이 오는 날의 냉장고는 어떤 음식을 내놓을 수 있도록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손님들이 ‘완벽한 사육’을 당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바로 봄비다.      



봄비는 손님들을 무서워한다. 집에 외부인이 들어올 때 극도로 경계를 하며 큰 소리로 짖는다. 여러 방법으로 교정을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그런데 이상한 포인트가 있었다. 봄비는 앉아 있는 손님에게는 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사를 하고 거의 1년 동안 집들이를 했다. 초반 집들이 경험으로 봄비는 함께 살지 않는 가족들, 그러니까 남편과 나에게는 가족이지만 봄비에게는 가족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짖기 때문에 ‘비동거인을 경계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게 되었다.      


덕분에 집들이로 오는 손님들에겐 ‘미안합니다. 집주인 김봄비 씨가 겁이 많아 외부인이 오면 짖습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있으면 짖지 않으니 집에 들어오면 바로 앉아주세요.’라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온 친구들이 내가 다음 메뉴를 위해 상을 치우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내가 도와줄게’라며 바로 따라 일어난 순간, 봄비는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앉아! 앉으라고! 자리에 앉아!”

“미안, 미안해. 봄비야, 앉을게. 앉았어.”     


친구들은 내가 보낸 메시지를 떠올리며 바로 자리에 앉았고, 나를 도울 수 없다는 사실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지만 목청 좋은 봄비의 성화를 이길 순 없었다. 덕분에 나는 손님 접대를 푸짐하게 할 수 있었고, 친구들은 몇 시간이고 앉아서 내가 주는 애정을 끊임없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집들이로 우리 집에 온 모든 손님들이 (심지어 남편의 친구들까지도) 봄비의 성향을 이해하고 배려해 준 사실에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우리 집에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고, 그 가능성은 현실로 일어났다.     


친구의 남자친구가 우리 부부를 집에 데려다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친구 커플을 집으로 초대했다. 봄비는 여느 때처럼 손님을 향해 짖었고, 친구는 익히 봄비의 성향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의 남자친구가 맹렬히 짖는 봄비를 좇기 시작했다.

봄비는 뒷걸음을 치며 계속 짖었고, 거실 테이블 밑으로 도망치는 자신을 좇아 따라오는 낯선 이를 피하기 위해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봄비를 좇아 침실로 따라 들어갔고, 구석에 몰린 봄비는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보는 것도 모자라 대변을 봤다. 소변을 본 그는 방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아, 쟤 쉬했어요.”     


봄비를 따라가는 친구의 남자친구를 따라간 남편이 손 쓸 새가 없이 일은 벌어졌고, 친구 커플이 도착함과 동시에 배달 온 음식을 받느라 나는 상황을 뒤늦게 알았다.

고작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한마디 나눈 뒤 생긴 상황에 남편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봄비의 뒷수습을 했다. 그리고 모두가 테이블에 앉았을 때 친구의 남자친구가 말했다.     


“친구네 집 강아지도 저래서 좇아가면 그 뒤론 무서워서인지 잘 안 짖더라고요.”



친구의 남자친구는 본인의 지식과 경험 내에서 학습된 말과 행동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때로 그와 같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 가령 ‘A는 이런 상황에 그렇게 했더니 괜찮았어. B도 그럴 거야.’라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말과 행동을 했다고 한들 상대방에겐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다른 의도와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섣불리 판단하고 단정 짓지 않으려고 스스로의 경험에 지속적으로 경계해야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의도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낀 봄비에게 미안하고, 친구 커플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져 이틀을 울었다. 그때,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봄비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일지라도 그 안에서 깨닫고 느끼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 경험 속에서 얻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유의미한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지않을까. 우리는 그 안에서 긍정적인 원동력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봄비를 위해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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