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rroty Jan 17. 2024

김봄비를 소개합니다

털은 많지만, 빡빡이가 되는 건 싫어

남편과 같이 퇴근하던 어느 날,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오빠, 봄비 털이 황금이었다면 어땠을까?"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남편은 나의 이런 '만약에' 질문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나 또한 남편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물어봤다기보다 '그런 상황이 된다면 내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볼 테니 같이 한 번 생각해 보고 들어줘.'라는 의미가 강하다.     


"오빠, 그러면 처음에는 내가 봄비의 빠진 털을 모아서 부를 축적하다가 욕심이 나면 털을 밀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왜 털이 빨리 자라지 않느냐고 봄비를 추궁하겠지? 그러면 결국 파국이네."     


동시에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이야기가 생각났다. 탐욕에 눈이 먼 농부가 결국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나 또한 욕심에 눈이 뒤집혀 봄비를 진심으로 아껴주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봄비의 털이 황금이 아닌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까지 미치게 된 건 봄비의 털이 유독 많이 빠지기 때문이다. 단비는 털 빠짐이 적고 추위를 많이 탔고, 봄비는 털 빠짐이 심하고 추위에 무척 강했다. 각자 단일모, 이중모의 특성을 뚜렷하게 보였다. 이중모인 봄비는 단비에 비해 털 빠짐이 심한 것이 당연했기에 따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봄비의 털 빠짐이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봄비랑 함께 산 지 5년이 지나고 병원 진료 때 알게 되었다.      


이사 오고 나서 처음으로 가는 병원이었다. 낯선 병원이 무서운 탓인지 봄비의 털이 미친 듯이 빠지기 시작했다. 진료실 가득 봄비 털이 봄바람에 날린 민들레 홀씨가 하늘을 수놓듯 펼쳐지는 것을 보고 의사가 말했다.     

“보통 저 정도로 털이 빠지진 않은데, 봄비는 털 영양제를 먹이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는 인터넷에서 털 빠짐 관련 영양제를 찾아서 원하는 것으로 급여하면 된다고 알려줬고, 그 말에 따라 영양제를 급여하기 시작한 뒤 봄비 털 빠짐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봄비의 털 빠짐은 평균적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평균값이 존재한다. 여러 기관, 업체 등에서 평균 연령, 평균 키, 평균 몸무게, 평균 성적, 평균 연봉 등 셀 수 없이 많은 평균값을 자료로 내놓는다. 우리는 자료를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 자신이 평균과 비교했을 때 어느 범주에 있는지 가늠한다. 우리는 비교하며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비교를 떠올려보자면 ‘나는 동생보다 피아노를 못 쳐, 나는 친구들보다 키가 작아, 나는 남편보다 공부를 못했어 등’ 정말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는 굉장히 단편적인 것이다. 나는 동생, 친구들, 남편보다 잘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얼굴이 더 예쁠 수도 있고, 집에 가지고 있는 두루마리 휴지 수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보다 무엇이든 항상 다 잘하고, 많이 가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반드시 평균값을 넘어야 ‘정상’인 걸까?     


물론, 봄비와 같이 의학적인 면에서 봤을 땐 평균값이 어떤 질병의 척도가 될 수 있으니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에 있어서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재단하고, 평가하고, 비교하는 삶을 살고 있다.      

키가 작든 크든,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라면, 설령 하는 일이 큰돈이 되지 않더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라면 그 자체로 멋지고 대단하지 않은가? 나는 나로서 존재할 때 가장 빛나는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자신이 먼저 알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봄비도 털이 많이 빠졌던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똑같은 봄비고, 여전히 귀엽다.

이전 05화 김봄비를 소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