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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여행 첫날 스펙터클하다

경남 함안 한 달 살기

여행도 미니멀 라이프로 해볼까?

미니멀 라이프를 하겠다며 점점 집안 물건들을 줄이고 있는데 이번 여행도 그래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짐을 싸다가 바로 포기했다. 아들 겨울 바지 2개, 티셔츠 2개만 넣어도 작은 캐리어가 꽉 차서 결국 대형 캐리어 1개와 백팩 2개로 짐을 쌌다. 내 맘처럼 되지 않는구먼. 남편은 한 달 사는데 작은 캐리어로는 불가능하니 대형 캐리어를 가져가라며 쓸데없이 짐 줄이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난 간편하게 가고 싶다고!


06시~07시  낭독 독서모임을 진행한 후 부랴부랴 준비하고  카카오 택시를 타고 영등포역으로 향했다. 평상시에는 택시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타는 편이지만 짐이 무거워서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이 짐이 여행 가는 마음의 짐보다 더 무거운 짐이 되는구나.

아침도 못 먹고 집을 나선 아들과 영등포역 롯데리아로 가서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09시 02분 출발이기 때문에 30분이나 남았는데도 아들은 먹다 말고 기차를 놓칠까 봐 미리 트랙에 가 있자고 한다. 아들의 다른 모습을 본다.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할 것 같은데 미리미리 챙기는 모습이 집에서와는 달라서 낯설다. 날씨가 싸늘하여 트랙 대기장에 있는데도 아들은 승차 번호 앞에 가 있자고 한다.  기차가 도착했다는 메시지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도 백팩을 등에서 내려놓지 않고 메고 있다. 무거우니 내려놓으라고 해도 그냥 메고 있겠단다. 귀찮아서인지 놓고 갈까 봐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들은 귀찮아서 그런다고 한다. 그럴까?


여행을 가든 어떤 용무가 있든지 기차 타기 위해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두 작은 가방을 메거나 손가방을 들고 있는 게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다. 별 게 다 부럽구먼.

함안까지는 4시간 50분, 멀다, 멀다, 멀다.

그래도 일단 기차 좌석에 앉으니 여행 가는 실감이 난다.

창밖을 보니 은행잎, 단풍나무들이 휙휙 지나가기만 해도 정겹다. 이쁘다, 멋지다.

비가 내리는 창은 또 왜 그리 이쁘노?


감상이 끝났으니 햄버거나 먹어볼까?

우적우적 먹고 있는데 기차 승무원이 코로나로 인해서 음식물은 섭취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음료수만 가능하다고 한다. 1~2시간도 아니고 4시간 50분이나 가야 하는데 음료수만 먹으라니..... 좀 심하다. 기차인데.....


1시간이 지나니 아들은 졸기 시작했고 나는 아침에 낭독 독서모임을 한 독서록을 쓰고 내 카페에 올린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8장 성숙한 인간관계 낭독 후 '마음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돌아가며 특징을 이야기해봤다.


왔다 갔다 한다, 불안하다, 욕심이 많다, 나를 괴롭힌다, 계속 뭔가를 요구한다, 실망한다, 좌절한다, 뭔가 해보려고 한다, 도전한다 , 열정이 넘친다, 내 마음만 관리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 마음 관리 힘들다, 사람에 대해 관심 많다. 안 좋은 부분을 잘 본다, 좋은 부분을 잘 본다, 평온하다,  흔들리는 촛불과 같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슬프다, 조절할 수 있다. 따뜻하다, 마음은 내가 아니라 감정일 뿐이다, 사로잡히지 말자, 토닥여야 한다.


마음의 특징을 알면 흔들리는 마음을 바라보거나 잡을 수 있고, 꺼진 마음의 불을 켤 수 있고, 불안하면 평온한 길로 데려올 수 있고, 마음이 변하는 것이라면 내 마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마음은 내가 컨트롤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마음은 내가 아니라 나의 소유물로 객관화하고 지켜보면 관리가 가능하다. 이번 여행에서도 상황마다 내 마음을 지켜보고 잘 데리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선 햄버거를 못 먹어서 아쉬운 마음부터 다독여본다~^^

잠이 깬 아들에게 묻는다.

'여행'이 뭔지 하나씩 말해볼까?


관광지를  보는 것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많이 걷는 것

같이 간 사람과 이야기 많이 하는 것

낯선 곳을 가보는 것

기차를 타는 것


아들은 아주 단편적인 여행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말한다.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여행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든다.  너와 내가 말한 여행이라는 정의를 오늘부터 우리는 다 하게 될 거야.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아들과 같이 음악을 듣는다. 한쪽씩 끼고 듣는다. 그리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냥 같이 듣는 것만으로도 공감이 될 것 같아 듣는다. 어느새 다양한 가수들의  발라드, 댄스 음악을 듣는 초6이 되어버린 걸까. 엄마를 위한 노래도 하나 들려준다.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인데 참 좋다. 트롯가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발라드 음악이고 가사도 잔잔한데 영 목소리가 임영웅 같지 않다. 역시 노래 잘 부르는 영웅님 만세!


12시가 되니 아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디쯤 있냐고? 아직도 기차 안이라고. 가도 가도 끝이 없다고. 반 대항 피구는 어떻게 되었냐고 아들이 묻는다. 너무도 참여하고 싶어서 함안 여행까지 미루자고 했었다. 다행히 여자, 남자 모두 이겼다고 하니 무척 좋아한다. 누가 누가 잘했냐고 묻기도 하고 다른 반 친구들은 누가 에이 스였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아들의 생활을 엿보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평상시에는 들려주지 않는다. 초등 저학년에는 엄마에게 많이 이야기하더니만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과묵해지고 말이 적어졌다. 엄마들은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 하는 데 말이다. 대신 친구들과 많이 이야기한다. 커가는 과정이다.


드디어 함안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여항산 정원 펜션(주중 5만 원)으로 향했다. 9분 거리(10,200원)로 그다지 멀지 않아서 다행이다. 대형 캐리어를 펜션에 두고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다. 펜션이라 작은 방 한 개와 거실 겸 부엌, 화장실이 있어서 아담하고 아늑하다. 사방으로 작은 산들이 둘러싸여 있어서 포근히 안아주는 느낌이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가을이 가려고 한다. 붉게 물들다 못해 잎이 떨어지려는 듯 노랗게,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여항산정원펜션 정원

거의 5시간 구부려져 있던 허리와 다리를 침대에서 쭉쭉 늘려본다. 일단 좀 쉬어야겠다. 오는 날, 가는 날은 여행 일정에서 빼야 한다. 이동하느라 에너지가 다 빠지기 때문이다. 방도 따뜻하게 데워놓으시는 사장님의 센스.  3일간 묵을 곳을 둘러본다. 창 밖의 풍경은 또한 좋아하는 산이 보여 풍경은 기대 이상으로 멋지군. 매의 눈으로 무엇이 불편할지, 눈에 거슬리는 게 없는지 살펴본다. 난 개인 자격으로 온 게 아니라 함안군청 지원으로 온 여행자이기 때문에 성실하게 알려줄 의무가 막중한 사람이다.

여항산정원펜션 마당

어머나, 중요한 와이파이가 안 터진다. 사장님에게 전화해보았더니 우리가 예약한 방은 잘 안 터진다고 한다. 다른 방은 40평 대형 룸이라서 바꿔 줄 수도 없단다. 그 방은 와이파이 잘 된다고 하신다. 매일 아침 낭독 독서모임을 줌으로 해야 하는데 어쩌나..... 핸드폰 핫스폿으로 3일간 줌을 해야겠구나. 바로 옆에 사장님 집이 있어서 본인 집에서 컴퓨터를 사용해도 된다고 친절히 말씀하셨으나 매일 아침 06시에 가기엔 민망한 시간이다. 오전 10시~12시 '갈매기의 꿈' 필사 독서 줌 진행은 추운 40평 방에서 한 번 해볼까나...... 고민 중이다. 앞으로 묵을 곳을 예약할 때는 인터넷이 연결되는지 필히 물어봐야겠다.


아들이 목마르다고 하는데 물이 없다.

펜션 사장님에게 근처에서 버스를 탈 수 있는지 전화로 물어보고 길을 나선다. 펜션에서 도로까지 나가는 길이 그림 같다.  멋지다면서 풍경을 서로 찍느라 바쁘다.  큰 도로 옆으로 물이 흐르는 저수지가 보인다. 참 드문 광경이다. 도로 옆에 저수지라, 그 유래를 알고 싶다. 봉성 저수지 둘레길이 유명하구나. 바로 거기가 거긴 가비~^^ 내일 찜이다~

여항산정원펜션 주변 풍경

버스 정류장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마침 두 여자분이 걸어오고 계신다. 여기 사시는 분이냐고 물어본 후 버스 정류장을 물어봤는데 버스가 드물게 있다며 난감해하신다. 차 없이 아들과 둘이 여행 왔냐고 물어보시면서 시장이 있는 곳까지 차로 태워다 주신다고 했다. 자동 히치하이킹이 되어버렸다.


아들은 멀치감치 서서 어떻게 하나 지켜보기만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저렇게 말을 해도 되나 싶은 표정으로....... 교육기관에 있는 사람들이니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며 웃으신다. 짐작컨대 선생님들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봉성 저수지에서 내서 IC 근처 하나로마트로 데려다주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흔쾌히 아들이 따라왔냐고 물으시길래 처음에는 안 온다고 했다가 친구들이 가라는 말에 왔다고 했고 엄마와의 관계가 좋으냐고 물어보신다. 저는 좋다고 하는데 아들은 모르겠다고 했더니 아들도 자기도 엄마와 관계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시장을 보고 함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방향까지 알려주시고는 헤어졌다.

여항산 봉성 저수지 둘레길

아들은 왜 모르는 사람을 태워주느냐고 묻는다.

아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인가 보다.

낯선 사람들 차는 타지도 말라고 안전교육을 몇 번이나 받았다. 마침 두 분 중 한 분이 펜션 사장님 동생이라고 했고 여자분들이라 믿고 탔다고 말해줬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두기도 했다.


시장을 보고, 저녁을 먹고 귀가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버스 정류장을 보니 함안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도 가는 길이 마땅치 않다.


다시 펜션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했더니 함안 시내 쪽으로 가야 하는데 너무 멀리 시장 보러 갔다는 것이다. 버스로 함안 갔다가 펜션까지 가는 게 맞냐고 물어보니 그렇게 하면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교통비도 많이 차이 나지 않을 것 같으니 고생하지 말로 택시비가 들더라고 택시를 권하셨다.


카카오 택시를 부르고 펜션까지 오는데 예약할 때는 19,800원인데 창원, 함안 경계라 25,000인데 가겠냐고 묻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사님이 하도 조심스럽게 물어보셔서 믿고 펜션까지 오는데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남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당연해, 거리가 멀고 타 지역이면 잘 안 가려고 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불편한 마음을 오늘 아침 낭독 독서모임 한대로 조절해본다. ' 마음이 불편하구나, 처음에 예약한 그 비용이 아니라서 억울한 기분이 드는구나, 그러면서도 이해하려고도 하는구나. 친절한 말투에 누구러지기도 하는구나, 5천 원으로 마음 상하지 마, 그럴 수 있어, 멋진 밤 풍경을 바라봐, 언제까지 그렇게 할 거야, 지금 이 순간을 즐겨봐'라고 속으로 말해본다.


아침 낭독한 내용을 여행 현장에서 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여행은 항상 변수가 생기는 법이니까.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예상했던 일이 하나도 없다. 그만큼 스펙터클했다. 내일은 어떨까? 마음 하나만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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