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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으면 찾고, 못 찾으면 만들어서 가라!

함안 한 달 살기 : 아라가야 GoGo 걷기 챌린지 1구간



걷기 챌린지 홍보 포스터


어제부터 '아라가야 Go Go 걷기 챌린지'를 시작했다. 어제 오전에는 개인 업무가 끝나고 오후부터 시작해서 6구간만 걸었고 초6 아들과 3번 헤매면서 걸었다. 오늘은 또 어떻게 잘 찾아갈지, 아들과 갈등 없이 잘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총 7구간 16.7km 중 6구간만 3, 7km 걸었으니 13km가 남았다. 토요일이라 가능하면 나머지 구간을 다 걸어보리라 마음먹는다. 5시간 가능하려나~


토요일이라 06시 아침 줌 낭독 독서 모임만 참여하고 나가려고 하니 아들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지 않았다. 어제도 3.7km 걸었기 때문에 푹 자라고 놓아둔다.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숙소를 나섰다.


© pixel2013, 출처 Pixabay


세 번째 묵고 있는 지금 숙소는 버스 정류장과 거리가 멀어서 20분 거리다. 아침이어서인지 걸어 나오는 길이 상쾌했고 마을도 아담하니 정감이 가며 아들과 손잡고 신나게 내려왔다. 함안 가야 읍내로 가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걷기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 ingodoerrie, 출처 Unsplash


10시 40분 버스 시간을 보고 기다렸는데 20분이 지난 11시에도 오지 않는다. 버스가 한 대도 지나지 않는다. 핸드폰 검색을 해도 마땅치 않다. 내가 이런 것도 못 찾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보니 마침 숙소 사장님이 지나가신다. 버스 시간표를 어제 문자로 보내주셨기 때문에 이 시간이 맞냐고 다시 물었더니 11시니 앞으로 20~30분 후에 올 것 같다고 한다. 버스 시간표가 그 마을에 도착하는 시간이 표시되지 않고 그전 마을 경유하는 시간만 있어서 보기가 무척 불편했다. 전 정류장 기준으로 20분을 더하라는 것이다. 이런 불편할 데가 있나.


© Pexels, 출처 Pixabay


슬슬 마음까지 아주 불편해졌다.

버스로 도대체 몇 번째 헤매고 있는 것인가?

전 숙소에서도 4번이나 잘못 타거나 기다리거나 했던 기억이 났고 걷기 챌린지 하려고 서둘러 가던 일정도 계속 늦어져 속이 상했다. 마냥 기다리는 것도 오늘은 내키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조용히 앉아서 스스로를 바라본다. 내가 왜 이러지? 왜 짜증이 올라올까?


버스로 마음이 상하니 다른 것들도 걸린다. 새로운 숙소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과 20분 거리는 그렇다고 해도, 너무 오래되었고, 깨끗하지 않고 포근하거나 안락한 느낌이 전혀 없다. 아들은 밤에 화장실에 갔는데 너무 춥다고 옮기자고 한다. 냉장고도 화이트가 아닌 옛날 냉장고인 누런색이라서 음식을 보관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나하나가 다 걸리기 시작했다. 체크인하기 전에 인터넷이 안되면 줌 수업을 오전에 할 수가 없어 숙박할 수 없다고 하니 일부터 인터넷 와이파이를 설치까지 한 곳이다. 가능하면 일주일 정도 머문다고 이야기도 한 상태다. 이런 복잡한 마음이 있었는데 버스까지 안 오니 심란해지기 시작한다.



© hero, 출처 Unsplash


불편한 마음을 갖고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오늘은 무척 힘이 든다고. 버스 타고 다니기도 힘들고, 방도 마음에 안 들고, 빨래도 10일이 지나니 해야 하고, 투정을 부려본다. 남편은 역시 나의 상담쌤이다. 누구나 처음 일주일은 여행이라 즐겁지만 11일차가 되면 현실에 부딪힌다. 불편한 게 하나 둘 나타나는 게 당연하다며 위로를 해준다. 그러나 누구나 쉽사리 시간적, 경제적, 상황적 여유가 없어서 못 가서 부러워한다고.


© OpenClipart-Vectors, 출처 Pixabay



전화를 끊었지만 해결한 일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택시를 타려고 하는 차에 버스가 왔지만 50분을 기다려서인지 반갑지가 않았고 10분 후 가야읍에 도착해서 더 기분이 안 좋았다. 10분이면 차라리 걸어서 가면 좋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산책로가 아닌 갓길로 되어 있어서 걸어서 갈 수도 없는 길이었다.


가야읍 터미널에서 내린 후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는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음식으로 달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역시 가야 읍내라서 음식점이 많아서 좋다. 다음 관문은 메뉴 선정이다. 초딩 아들과 나의 입맛이 달라서 고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아침부터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고 싶지 않은데 아들은 식당이 지나칠 때마다 먹자고 한다. 떡볶이도 아침에 먹기 싫다. 그렇게 지나치다가 도착한 곳은 서로의 의견 일치가 맞는 식당이었다. 나는 뜨근한 국물이 먹고 싶었는데 아들 역시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기에 의견 일치를 보고 들어갔다. 감자탕을 먹고 싶었지만 2~3인분만 가능하다고 해서 뼈다귀해장국을 주문했는데 입맛에 맞았다. 아들도 콧등에 땀을 흘리면서 맛있게 먹는다. 국물이 담백해서 맛있게 먹은 곳이다.


함안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도드람 본래 순대 식당

맛있지 않으면 음식점을 아예 소개하지 않는다. 뚜벅이라서 일부러 음식점을 찾아가서 먹지는 않는다. 지나가다가 맛있는 음식점이 있으면 소개하고 싶은데 맛있는 집을 만날 확률이 적다. 각자의 입맛은 다르지만 함안 와서 몇 안 되는 나에게는 맞는 음식점이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함안시외버스터미널


뜨뜻한 국물을 먹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라가야 역사 순례길 걷기 챌린지를 시작한다.

1구간 시작점인 함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인증샷을 찍고 출발한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함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미니 현수막을 보고 길을 나선다. 어제 미니 현수막을 보고 6구간을 가면서 익숙어진 터라 그것만 찾으면서 발길을 나선다. 나도 살아오면서 항상 어떤 안내를 받고 싶어 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나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길찾기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가야시장


오~ 가야 시장이 나온다. 가야 시장 안을 들어서니 역시 작은 표지판도 보인다. 시장 구경보다 표지판을 찾는 나. 즐기소서, 시장을.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가야시장 안


이런 표지만 보면 뛸 듯이 기쁘다. 딴 길로 새지 않았구나, 잘 가고 있구나 하는 안심이 된다. 내 삶도 이렇게 살아왔을까? 바른 길로 앞만 보고 오지는 않았나, 중간 중간 옆을 구경하지 못하지는 않았을까?

시장골목을 빠져나가는 순간 미니현수막이 없다. 그냥 직감으로 왼쪽으로 향한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아라길


오늘이 장날인가 보다, 지난번에 지날 때는 공터였는데 장사진을 치고 있다. 아들은 '오는 날이 장날이네요'라고 말해서 웃음이 빵 터졌다.

가야 시장은 5, 10,15 ,20,25,30(31일 경우 31일)인데 마침 20일이었다. 의도하지 않게 장날 1구간을 지나게 되어서 시장 구경을 해서 좋다. 시장은 항상 활기가 넘친다. 팔려는 사람, 사려는 사람, 나처럼 구경하는 사람으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가야시장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가야시장


아들은 고양이를 보더니 발걸음을 멈춘다. 강아지가 지나갈 때마다 키우고 싶다고 말하는데 '키워 보자'라고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파트에서 키우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도 난 세 아이들 키운 것만으로도 족하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가야시장


양쪽에 늘어선 장사꾼들 물건만 봐도 볼거리가 넘친다. 별다를 것도 없지만 그냥 구경만 해도 좋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아라길


가야 시장 옆 작은 영화관 앞 공연장에서는 '아라길 버스킹' 준비로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이 연주하는 피아노 연주도 듣고 기타 연주도 듣고 한복 입은 분들의 공연도 살짝 엿본다. 연년생 두 딸이 피아노 학원 다닐때 작은 음악회를 했는데 '헝가리 무곡'을 앙증맞게 연주한 기억이 난다. 예쁜 드레스와 리본 머리핀을 하고 한 피아노에서 스무 개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모습은 참 흐뭇햇다. 한참이나 앉아서 구경하고 음악도 듣는다. 음악은 자연과 달리 다른 충족감을 준다. 그래서 영혼의 울림이라고 하는 건가. 이런 거야말로 제대로 된 시장 구경이지.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아라길


함안여중의 그림 동아리 예사랑 친구들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다. 함안 아라가야 문화유적 창작 그림 전시회다. 유적, 유물을 생각하면서 그렸을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림도, 글도, 조각도, 음악도 마음이 담겨져야 함을 알기에 눈여겨 본다. 여기서 4가지를 보고 듣는 복을 누려보는구나.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아라길 전시


'불꽃무늬 토기' 다. 내가 아는 유물만 나와도 호감이 간다. 성산산성에서 발견한 연꽃 씨앗으로 피운 '아라홍련'이라는 연꽃 그림을 그린 것 같다. 5세기 가야시대의 토기는 주변으로,  또는 이웃나라 일본까지 널리 알려져 유명했다고 한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아라길


앉아서 구경하다 보니 누룽지라고 샘플도 나눠주신다. 바삭바삭 먹어보니 맛있어서인지 아들은 사가자고 한다. 만 원어치를 사고 가방에 넣고 슬슬 걷기를 시작한다. 오늘도 이러다간 밤이 되어서야 숙소에 갈지 모른다. 항상 이렇게 여유 부리다 보면 날이 어두컴컴해진다. 이런 게 걷기 챌린지의 재미지. 주변을 둘러보면서 걸으라고 하는 거겠지.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아라길


함안말이산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기원 아가 가야 Go Go 챌린지 1코스 표지판이 보인다. 이런 표지만을 6개를 거쳐야 한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아라길


시집 필사를 운영하고 있어서인지 시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얼른 사진 찍어서 시집 필사 단톡방에 올린다. 시를 보면 같이 시집 필사를 하는 분들이 생각난다. 시를 보면 못 참지, 안 참지. 시간 없어도 읽고 음미하고 가리라. 감사하게도 시간이 충분하다. 



관계


       이달균


혼자 이곳까지 걸어왔다고 말하지 말라

그대보다 먼저 걸어와 길이 된 사람들

그들의 이름을 밟고 이곳까지 왔느니

별이 저 홀로 빛나는 게 아니다

그 빛을 이토록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하늘이 스스로 저물어 어두워지는 것이다.



내가 이곳까지 오게 한 많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 그 길을 만난 사람들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별이 빛나기 위해서 하늘이 스스로 저물어 어두워진다는 문장을 몇 번이나 읽어본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아라길


무슨 색깔이 나올까


               조병무


저 바람을 손아귀에 쥐고

꼬옥 짜면

무슨 색깔이 나올까


저 하늘을 양손에 쥐고

더욱

꼬옥 짜면

무슨 색깔이 나올까


그러나

그러나


저 사람의 말씀을

마음으로 눌러짜면

무슨 색깔이 나올까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을 사랑으로 짜면

무슨 색깔이 나올까



아들에게 묻는다.

나 : 바람을 손아귀에 쥐고 꼭 짜면 무슨 색깔이 나올까?

아들 : 왜 짜?

나 :......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아라길



하나뿐인 나와 오늘


              구자운


오늘은 또다시도

올 수 없다 말들 하지


나는 또 지구상에

둘도 없는 하나일세


하나인 나와 오늘을

허비 말자 하노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구자운 님이 쓰셨군요. 허비 말고 즐기다 가련다.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진다



걷다 보니


            김민들레


걷다 보니 기분이 변한다

좋아졌다가 힘들어진다

싸우다가 화해하게 된다


걷다 보니 안내표지가 없다.

없으면 찾아야 하는 길

만들어서 가야 하는 길


걷다 보니 다양한 길을 만난다

곧장 가는 길

돌아가야 하는 길

거꾸로 출발해야 하는 길

서로 만나게 되는 길


인생같은 길



걷기 챌린지를 하다 보니 이런 다양한 감정과 다양한 길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또 내가 풀어야 하고 다시 찾아야 하는 길이었다. 마치 인생처럼.


아라길에서 만난 꽃들

아라길을 쭉 따라가면 된다.


아라길를 쭉 따라가면 될 줄 알았는데 막다른 길까지 가버렸다. 막다른 길 가기 전 오른쪽으로 꺽어야 했다. 다시 되돌아와서 미니현수막이 있는 곳까지 온 후 다시 찾다보니 2구간 표지판이 보인다. 그나마 어제는 6구간에서 3번이나 헤맸는데 1구간에서 1번 해맸으니 잘 한 셈이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2구간 안내표지


1구간 끝을 알리고, 2구간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2구간 안내표지


2구간 시작 제일 자동차 정비 가는 길


제일 자동차 정비 가는 길에서 헤갈렸다. 역사 순례길 같지 않더라도 지나가야 하는 길이다. 때론 인생에서도 이 길이 아닌 것 같다 하면서도 가다 보면 맞는 길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기분으로 지나가면 된다.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1구간 지도


아라가야 GOGo 챌린지 코스 2구간 지도


안타깝게도 7구간 다 걸은 후에야 위 지도를 보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길거리에 붙어있는 미니현수막 표지만 보고 걸었다. 함안군청에서 올린 챌린지 공고를 꼼꼼히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도만 있더라도 덜 헤맸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이 지도 없이 찾아간 덕분에 더 뿌듯하기도 하고 아들과 헤맨 길이 더 소중하고 기억에 남기도 한다.


꼭 길을 알려주는 게 좋은 것도 아니고, 길을 모른다고 스스로 찾아간 게 꼭 나쁜 것도 아니다.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제일 중요함을 배웠다. 나는 경쟁하러 온 게 아니라 즐기러 왔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 함안군청 ' 함안 한 달 살기' 에 선정되어 함안군청의 지원을 받고 쓰는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이전 15화 걷기 코스도 임시 우회, 아들도 임시 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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