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직원의 이사하기 프로젝트(8)
※ 전편은 [젊은 사람이 돈이 그렇게 없어요?]입니다.
내가 내 발 저리기 때문에 다음 임차인을 구해준 것이 거꾸로 사기를 쳤던 공인중개사를 보호하는 꼴이 되어버리니, 이쯤되면 비싼(42만원 + 이사에 필요한 모든 금액) 인생공부를 했단 셈 쳐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딱히 이사에 여유로운 시간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니, 돈 잡아 먹는 귀신이라는 인테리어를 신경 쓸 차례였다.
5층까지의 침대 배달
우리는 그 당시 전 세입자가 놓고 간 매트리스를 그대로 사용 중이었다. 때문에 새로운 집에 가장 필요한 가구는 침대였다. 오늘의 집에서 구매했던 침대헤드도 사망한지 오래고, 매트리스는 오른쪽 구석이 푹 꺼진게 보일 정도로 재생 불가 상태였기 때문이다. 침대를 사는 건 문제가 안됬는데, 모든 가구가 옮기는 게 문제였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이라는 말에 어느 침대 브랜드는 계단의 폭이 얼마 정도 되는지를 물었다. 살면서 현관 밖 계단의 너비를 재 본적이 있는가? 두 팔을 벌린 너비 정도인가? 라며 팔을 벌려보기도 하면서 줄자로 너비를 재는 일까지 있었다.
다행이 이사가 2월이라 지금과 같은 폭염경보가 아니었음에 훨씬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상상하면 끔찍하다) 매트리스와 헤드 등을 짊어지고 오신 기사 분께서는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을 배달 당일 날 아시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리셨다. 도와드리고 싶어도 길이가 긴 가구들의 조합이라 도움도 마다하시고는 한참동안 배달을 진행해주셨다. 나는 계속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예쁜 커피머신으로부터 차가운 아.아를 내어드렸다.
배달서비스를 하는 이케아 가구
배달서비스와 추가로 조립서비스까지 있는 이케아 가구조차 엘리베이터 없는 5층까지 배달을 거부했다. 사내규정에 따르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경우 3층까지만 배달을 해준다고 했다. (그럼 뭐 나머지는 3층에서 받아서 직접 올리나요?) 배달기사를 예약할 때, 추가금을 내도 좋으니 예외를 적용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해진 배달료 이상으로 웃돈을 주는 형식은 회사 차원에서 허가가 불가하다는 말만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립서비스까지 신청한 상태. (우리 커플에게는 손재주조차 없다. 오죽했으면 비데조차 설치서비스를 이용했을 정도)기사님 입장에서도 어차피 옮겨야 설치가 가능하니 배달 날 우리는 옮기는 걸 같이 거들었고, 우리는 죄송하다며 배달료를 더 드릴 수 있다고 했지만 배달료를 받기를 한사코 사양하셨다.
본인의 짐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이사업체 선정은 그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반포장 이사를 하다보니 일일히 이사업체에 연락해서 견적을 받아 직접 비교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 5층에 엘리베이터 없음을 클릭하자마자 죄다 두손두발 포기를 외치는 업체가 많았다. 사장님들께서는 하고 싶어하지만, 실질적으로 일하시는 업자 분들께서 매우 꺼려하신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거꾸로 견적요청을 넣으면 견적들을 보내주는 서비스까지 이용해봤는데, 견적을 아무도 넣지 않아 무려 일주일을 낭비했다. (입주청소는 5분만에 5건이나 견적요청을 받은 걸 보니, 정말 업체가 꺼려하는 조건이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일단 해주는 업체가 있으면 계약하는 것이 우선이라서 하겠다는 업체와 계약을 했는데, 청년이 운영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이 업체에서 이삿날 우리 아버지보다도 연세가 지극해보이시는 두 분의 기사님이 오셔서 매우 당황했다.
혹시나 짐이 많을까봐 용달트럭 2대를 불렀고, 엄마는 단촐한 집안살림에 뭐하러 트럭 2대를 부르냐 했지만, 짐의 양에 있어서만큼은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전셋집의 공간이 없어 계절마다 옷을 바꿔서 가져가고 본가에서 가져오는 행위를 계속했지만, 그릇, 냄비 욕실용품 등등을 다 담자 2개의 용달트럭은 꽈악 찼다. 심지어 덜컹거리기까지..ㅎㅎ
당근마켓에서 구매하고 무려 버스 탑승을 통해 들고 왔던 애증의 그릇장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차로 5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1층에서 5층까지 2분이서 짐을 나르는 과정은 꽤 오래 걸렸다. 적어도 20번은 왔다갔다 했고, 짐이 들어올때마다 재빨리 박스 안에 있는 짐을 빼서 박스를 다시 가지고 내려가실 수 있도록 협조했다.
끝까지 일처리가 좋지 못했던 집주인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는 이삿날 정작 나의 동거남은 기존 전세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림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바로 잔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사람이 전세집에 들어와 집주인에게 송금을 진행하고, 우리는 집주인으로부터 송금을 받아야 했다.
잔금을 받기 전까지 당사자가 해당 공간에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동거남은 그곳에서 잔금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모든 이사가 끝날 3시 즈음에 새로운 전세집에 돌아온 그는 아직 잔금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한시간 후-
핸드폰 : 띠링 띠링 띠링 *10
집주인이 은행에서 한도설정 늘리기를 안해놔서 천만원씩 보내고 있대..
마지막 입금알람이 끝났을 때, 우린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진짜 새로운 집에서 삶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