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0] - 누구보다 성격있는 ENTJ형 신부의 등장
저 신부, 성격 좀 있어 보이지 않니?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는 하객들 사이로, 누구보다 정신없는 오늘의 주인공 신랑, 신부가 인사하고 지나간 후 엄마는 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으레 엄마는 꼭 결혼식이 끝나면 오늘의 감상평을 얘기하곤 한다. 밥이 괜찮더라, 층고가 높아서 자연광이 들어온다 등등.. 신부가 예쁘더라는 들어본 적이 없다. 엄마 기준에서 신부는 당연히 예뻐야 하고 예쁜 거니까.
엄마, 그 얘기가 내년에 내 결혼식 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말할 얘기야.
저 신부, 성격 드센 가봐~
촌철살인으로 엄마의 뒷얘기를 막았다. 엄마는 입을 삐쭉 내밀긴 했지만, 크게 웃음을 터뜨리셨다. 동의한다는 소리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딸의 결혼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누가 봐도 이건 100% 딸 맘대로, 본인의 의견은 언감생심, 예비사위의 의견도 1스푼 들어가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다.
나는 현재 25년 4월 예신으로서(신부님의 호칭에 슬슬 익숙해지고 있다) 으레 남들이 겪고 있는 신부병*, 보태보태병* 메리지블루* 등의 관문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다. 가득이나 까칠했던 성격은 결혼 과정 중에 가장 극대화되어서 이 결혼식의 존망에 영향을 주는 사람은 결단코 없애겠다의 다짐으로 하루를 나아가고 있다. 왜냐 이 결혼식의 주최자도 나요, 프로듀싱, 기획, 편집, 연출, 총괄도 나니까. 돈도 책임도 내가 진다.
6년 차 연애, 동거한 지 3년 이상, 둘 다 30대 초반.
누군가 결혼하면, '너넨 언제 해?'의 주인공. 그게 나고 우리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까지 결혼식 안한 이유는 하나다. 결혼식에 대한 내 로망이 너무 많아서, 근데 수많은 로망 중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못할 것 같아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건 못 볼 것들 투성이인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아서.
뭐 얼마나 대단한 로망이겠어 싶지만, 들어보면 한국에서 그게 되냐, 부모님 허락은 받았냐, 예산 괜찮냐로 10가지 질문으로 되돌아온 걸 보면 내가 원하는 게 가히 일반적이진 않긴 했나 보다. 웨딩플래너도 난색을 표했고, 본식스냅 작가님도 난색을 표했고, 신랑분이 외국인이신가요?라는 질문도 들었었다. 그럼에도 하는 이유는 1.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고 2. 내돈내산에 아낌없이 뽕을 뽑겠다는 의지와 3. 이런 나와 함께 결혼식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기도 하다.
나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인에게 거의 알리지 않고, 마무리된 후에 이렇게 결혼식을 해보려 해~라고 전달했다. 실제로 이것에 대해 왜 미리 알리지 않았냐며 서운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알리지 않은 이유로는 결혼식은 한 사람 개인에게는 인륜지대사이자 인생의 한 번뿐인 특별 이벤트이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매우 특별하지 않은, 과도하게 말하면 주말 안 씻고 누워있을 수 있는 귀한 시간에 참석해야 하는 귀찮은 일련 행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내 결혼식 준비과정을 본 누군가는 유난이라고 평하기도 했으며, 또한 유난인 것도 맞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일반적/특별함으로 결혼식을 나눌 생각은 전혀 없으며, 각 개인의 모든 결혼식에는 이유와 나름의 특별함이 있다고 믿는다. 이 글 또한 결혼을 준비하는 많은 예비부부들에게 왜 우린 저렇게 결혼식 할 수 없어?를 주제로 싸움과 박탈감을 조장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전하고, 한국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다와 미리 겪게 될 어려움을 중점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 앞으로의 글에도 제가 최종 계약한 업체의 정보나 견적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저는 웨딩플래너가 아니에요ㅠㅠ 다만 궁금하신 분들의 니즈는 매우 이해하여, 비밀 댓글 및 쪽지 주시면 공유 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