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권 Oct 11.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33. 한우(韓牛)구이

33. 한우(韓牛)구이     


#한우의 색깔별 분류

 한우(韓牛)는 전통 한국소를 말한다. 털 색깔에 따라 누렁소라고 부르는 황우(黃牛)와 흑우(黑牛), 백우(白牛), 얼룩덜룩한 검은 칡 무늬가 있는 칡소 등으로 구분한다. 한국인이 애송하는 정지용(1903~1950)의 시 ‘향수’에 등장하는 얼룩백이 황소가 바로 칡소다. 칡소와 흑우, 백우는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묘사돼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반출된 신편집성 마의방우의방(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 전주판을 토대로 간행한 조선우마의방(朝鮮牛馬醫方)에 한우의 색깔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우마의방(朝鮮牛馬醫方)에 따르면 한우는 황색과 검은색, 흰색, 갈색, 적갈색 등 다양한 털빛과 무늬를 갖췄다고 적혀 있다. 


신편집성 마의방우의방(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은 조선 개국 초기인 1399년에 조준(1346~1405) 등이 편찬한 수의학서(獸醫學書)로 여러 판본이 있다. 한우가 지금처럼 황우 일변도로 쏠리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 시행한 한우 모색(毛色) 개량 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멸종되다시피 한 희귀 품종인 백우는 2011년 7월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시험장에서 유전자 기술을 이용해 복원된 바 있다.     


동네 마트에서 주로 사는 한우 모둠 세트.


#한국인의 한우 사랑

 황우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과 공존 공생해 온 토종 한우다. 성질이 온순하고 질병 저항력이 강한 데다 노동력까지 우수해 살아서는 농사일의 도우미 역할은 물론 물자를 운반하고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 생산을 도맡는 소중한 가축으로 농경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가족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황갈색인 황우의 몸무게는 황소가 대략 420~460kg, 암소가 300kg 이상이다.      


한국인의 한우 사랑은 각별하다. 농업 기술의 발달과 과학화로 한우에 대한 인식도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소에서 고기소로 전환된 지 오래다. 1992년 소고기 수입 자유화 이후 한우 등급제가 도입되면서 한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한우를 살 때 꼭 사는 키조개 관자


한우 등급제는 1++ 등급, 1+ 등급, 1등급, 2등급, 3등급 등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등급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근육에 포함된 지방의 정도를 뜻하는 마블링이다. 마블링은 살코기 조직 사이사이에 우윳빛 지방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것으로 마블링이 많을수록 등급이 높고 가격도 비싸다. 좋은 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하면서 기름지고 고소하고 감칠맛이 난다. 흔히 한우를 구워 먹을 때 입에서 살살 녹는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풍미(風味) 때문일 것이다.     


한우는 국거리나 탕으로도 많이 쓰이지만 역시 구이로 먹을 때 특유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다 아는 얘기지만 한우의 단점은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신토불이에 유달리 집착하는 한국인의 정서적 방향성도 무시 못 할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인건비와 운영비, 세금, 유통 이윤 등 제반 경비가 반영된 음식점에서 한우구이를 먹으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삼겹살은 외식으로 즐겨 먹고 한우는 대개 집에서 구워 먹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막 불판에 올려진 한우와 관자.


#한우 모둠 세트

기껏해야 어쩌다 소불고기나 먹을 수 있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입 호강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은 시대라 세월의 변화를 실감한다. 여느 가정처럼 우리집에서도 한우를 심심찮게 구워 먹는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한우를 살 수 있는 마트가 여러 군데 있다. 산지 생산자와 직거래한다는 믿을만한 정육점에서도 경쟁적으로 한우 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나는 주말에 단골로 드나드는 마트에서 한우를 사는 편인데 주로 모둠 세트를 고른다. 모둠 세트는 치마살과 살치살, 등심, 안창살, 제비추리 등 서로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는 네댓 가지의 특색 있는 부위로 이루어져 한우구이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급은 1++ 또는 1+ 등급이라고 표시된 것을 선택한다.      


고기가 익으면 양송이버섯과 아스파라거스꽈리고추도 불판에 올린다.


한우를 살 때 조개 내부에 붙어 있는 단단하고 질긴 근육인 키조개 관자(貫子)도 꼭 산다. 관자를 살짝 구워 기름장에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적당히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이 혀에 착착 감긴다. 소고기에서 나는 육향(肉香)과 달리 바다향이 은은하게 올라와 후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다.     


한우를 구울 때는 곁들여 먹을 몇 가지 부재료도 같이 굽는다. 꽈리고추와 양송이버섯, 아스파라거스 따위인데 모두 한우와 잘 어울려 입맛을 돋우기에 그만이다. 쌈 채소와 오이고추도 준비한다.      


고기를 싸서 먹는 쌈 채소와 오이고추     


#한우의 부위별 특징

 한우구이가 맛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미각 세포가 섬세하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만 한우의 특정 부위 이름을 알 수 있지, 눈을 감고 맛을 보고서는 도무지 어느 부위가 어느 부위인지 알기가 힘들다. 보지 않고 맛만 보고도 한우의 부위별 명칭을 안다면 도축업자(屠畜業者)거나 지독한 식도락가 또는 내로라하는 음식 평론가일 것이다.


없어서 못 먹는 판에 시각적 판별이든 미각적 판별이든 감식(鑑識) 능력을 따지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중요한 건 한우가 맛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이 아닐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자꾸 먹다 보면 부위별 맛의 특징도 주워섬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우 숯불구이


*등심 : 소의 등골뼈에 붙은 살. 육즙이 많고 살이 두툼해 고소하고 씹을 때 와닿는 식감이 뛰어나다. 등심에 박혀 있는 힘줄인 떡심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구워도 상당히 질기다. 

*안심 : 소의 갈비뼈 안쪽에 붙은 살. 소고기 중에서 살이 가장 부드럽고 연하다. 지방이 적어 담백한 맛이 난다. 스테이크용으로도 많이 소비된다.

*치마살 : 소의 가슴과 배 사이, 횡격막 아래에서 내장 가까이 붙은 근육. 힘줄을 이루는 근섬유질이 선명하고 살코기와 마블링이 조화를 이뤄 쫄깃하면서 감칠맛이 좋다. 주름치마를 닮은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안창살 : 소의 횡격막 주변의 짙붉은 살. 근섬유 뭉치가 굵어 살이 단단하고 쫄깃한 식감이 나며 육즙이 풍성하다. 신발의 안창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다. 

*살치살 : 소의 갈비 위로 붙은 톱날 모양의 근육. 마블링이 우수하고 육향(肉香)도 진해 감칠맛이 탁월한 특수 부위다. 

*제비추리 : 소의 가슴과 횡격막 주위의 살로 양이 적어 희소한 특수 부위. 근육과 마블링의 균형적인 분포가 특징으로 진한 붉은색을 띤다.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육질에 육즙이 많아 고소하다.     


 한우구이는 소금에 찍어 먹거나 소금에 참기름을 얹은 기름장에 찍어 먹는데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소주 한 잔을 털어 넣고 한우구이 한 점을 입에 넣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작가의 이전글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