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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Oct 23.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37. 부대(部隊)찌개

37. 부대(部隊)찌개     


#특이한 이름의 찌개 음식

 한국인이 좋아하는 찌개류 중에 특이한 이름의 음식이 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처럼 찌개류는 찌개 앞에 중심이 되는 식재료 명칭이 붙는 게 지극히 마땅한데 유독 이 음식만 별난 수식어를 달고 다니니 유별나다는 인상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가 다 아는 이 음식의 이름은 부대찌개다.


부대찌개의 유래는 수식어인 부대의 한자어로 짐작할 수 있다. 부대는 나눌 부(部), 무리 대(隊)로 군대 조직 단위 중 하나를 일컫는 말이라 식재료의 출처가 부대라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식재료의 정체가 고기와 햄, 소시지라 식재료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부대찌개의 유래

요약하면 한국 전쟁 후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주한미군 부대에서 유출된 식재료를 우리 입맛에 맞게 요리한 음식이 부대찌개의 원조라는 견해가 통설(通說)이다. 미군 부대 물품의 국내 반입이 금지된 시절이라 소위 암시장에서 몰래 빼돌려 민간에 불법 유통한 음식이 부대찌개인 셈이다. 부대찌개는 자연스레 미군 부대 주둔지에서부터 발달했고 의정부 부대찌개와 동두천 부대찌개가 유명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평택과 파주, 군산 지역도 마찬가지다.      


부대찌개는 초창기에 볶음 요리로 출발했다가 훗날 찌개로 바뀌면서 서민들의 먹거리로 정착한 가운데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식재료의 국산화와 더불어 동네마다 부대찌개 식당이 들어서 있고 토종 프랜차이즈점이 경쟁적으로 영업 중인 것을 보면 부대찌개를 한국 음식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시대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나이 든 세대에게 부대찌개가 우리나라 현대사의 애환과 추억이 서린 음식이라면 서구식 식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맛있는 먹거리일 뿐일 것이다.     


큰 냄비에 부대찌개용 식재료와 양념을 한꺼번에 다 넣는다.


#부대찌개 메뉴판의 낯선 용어

 부대찌개 식당 메뉴판을 보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낯선 용어가 눈에 띈다. 부대찌개 가격이 명기된 메뉴판 아래에 민찌라고 적힌 글자가 그것이다. 민찌는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다짐육을 업자들끼리 부르는 일본식 표현이다. 영국에서 잘게 썰어 다진 고기를 뜻하는 mince(민스)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용어다. 다짐육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등 식용(食用) 고기를 분쇄 가공한 것이다. 부대찌개용 다짐육은 상품성이 낮은 부위라 값이 싸다. 햄버거 패티로 사용되는 고기도 다짐육이다.


 부대찌개는 김치와 햄, 소시지, 토마토소스에 절인 콩, 다짐육에 고춧가루, 고추장, 다진 마늘 등으로 만든 양념장과 대파와 양파 따위의 채소를 넣은 뒤 육수를 붓고 팔팔 끓인 음식이다. 우리나라 음식을 대표하는 김치와 양념장에 서양식 식재료를 넣어 한국적인 방식으로 끓인 찌개 요리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순두부찌개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즐겨 먹는 찌개라고 할 수 있다.


내용물이 넉넉히 잠길 정도로 육수를 붓고 센 불에서 끓인다.


#한때 멀리했던 부대찌개와의 재회(再會)

 한때 부대찌개를 멀리 한 적이 있었다. 카투사로 복무한 경험 때문이다. 삼시세끼 끼니때마다 먹는 서양 음식에 질려 자대(自隊) 복무 1년이 채 되기 전부터 한국 음식을 찾아 먹었다. 얼큰한 국물 요리와 쌀밥에 김치가 그리워 본능적으로 벌어지는 식문화 행동의 패턴이라 나뿐 아니라 동료 카투사들도 다 그랬다.


1980년대 중반 제대할 무렵에는 카투사들을 위해 김치와 깍두기, 쌀밥, 컵라면도 제공됐다. 나하고 같은 부대에서 복무했던 아들 때도 그랬다고 한다. 제대 후 햄이나 소시지가 들어간 요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내가 다시 부대찌개에 입맛을 들이게 된 계기가 있다.      


2016년 3월 초, 딸의 고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했을 때였다. 입학식 시간이 점심때를 지나 서라 집사람과 딸, 셋이 학교 근처 식당을 찾았다. 부대찌개로 유명한 지역이라 부대찌개 식당에 들어간 것이다. ◯◯◯ 부대찌개라는 지역명을 상호(商號)로 내건 부대찌개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맛을 본 그곳의 부대찌개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육수가 비등점을 돌파한 뒤 중불로 낮추고 10분 정도 더 끓인다. 다양한 식재료와 양념의 맛이 국물에 충분히 우러나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양한 미각적 체험

 우리가 먹는 부대찌개는 햄과 소시지, 다짐육의 짜고 느끼한 맛이 김치와 다진 마늘, 고춧가루, 고추장, 대파, 양파 등 한국식 양념과 채소와 어우러져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미각적으로 조화로운 음식으로 탄생한 것이다. 부대찌개의 특징은 짜고 시고 달고 느끼하고 고소하고 맵고 감칠맛에 더해 시원한 맛까지 모두 음미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또 하나, 부대찌개에 넣어 끓여 먹는 라면 사리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미각적 체험을 할 수 있는 부대찌개의 국물로 끓인 라면의 맛이 라면수프를 넣고 끓인 맛보다 입에 착착 감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러 라면 회사에서 만든 부대찌개 전용 사리가 식당가에 대량 유통되고 있는 데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처럼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라면 사리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밀가루 성분인 라면 사리가 국물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국물이 졸고 사리가 불기 때문이다.     


부대찌개는 다양한 미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찌개 요리다.


 일반적으로 부대찌개는 식당에서 먹거나 밀키트(meal kit) 형태로 포장한 것을 사 집에서 끓여 먹는다. 나도 가끔 주말에 동네 부대찌개 전문 식당에서 포장 구매한 부대찌개를 끓여 밥상에 올린다. 길게 세로로 채 썬 대파와 양파가 듬뿍 들어가 있고 양념장이 특히 맛있다. 페트병에 담아주는 육수도 진하면서 담백하다. 다양한 식재료와 양념의 맛이 국물에 충분히 우러나기 때문에 따로 간 볼일은 없다. 포장 구매하면 햄과 소시지를 1.5배 정도 더 넣어준다. 프랜차이즈 식당인데 점심때고 저녁이고 늘 손님들로 북적댄다.      


식재료를 일일이 사서 손수 요리하는 방법도 있으나 준비 과정의 번거로움으로나 맛의 전문성으로나 가성비 측면으로나 기회비용만 날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서구식 식재료를 사용한 일종의 퓨전 요리로 출발한 부대찌개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어엿한 한국식 찌개 음식으로 토착화된 걸 보면 음식도 필요와 환경에 따라 진화의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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