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주말 밥상 메뉴 짜기
39. 주말 밥상 메뉴 짜기
#금요일 오후의 고민
오늘처럼 금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하는 일이 있다. 주말 밥상에 올릴 이틀 치 식사 메뉴를 짜느라 끙끙대는데, 일주일이 금방 다가와 빚 독촉에 쫓기듯 한다. 메뉴를 선택하는 것은 요리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보다 어렵다.
요리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밥상 메뉴의 이름을 매번 새롭게 길어 올리는 일의 지난함을. 4년간 집밥을 지으며 새삼 어머니의 노고(勞苦)에 고개가 숙어졌다. 어머니들은 평생을 집밥과 동행해 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매일 똑같은 시간에 식구들의 끼니를 묵묵히 떠맡아 왔다. 어머니들은 집밥을 차리면서 노동의 고단함 대신 음식의 숭고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했을 것이다. 어머니들에게 집밥을 짓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적인 일상이었고 고귀한 의식(儀式)이었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이렇다.
식구들 앞에서 한 번도 힘든 가사(家事) 노동에 대한 불평불만의 속내를 드러낸 적이 없다는 점, 몸이 아파도 때가 되면 밥을 안치고 음식 만드는 일에 소홀한 법이 없다는 점, 먹고 싶은 반찬이 있어도 언제나 남편과 자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양보한다는 점, 차갑게 식어버린 찬밥일지라도 망설임 없이 깨끗이 비운 점은 나의 추측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근거들이다.
주말 아침의 우리집 밥상. 잡곡밥과 얼갈이 된장국, 조기구이, 밑반찬 여섯 가지로 차렸다.
#도제식 요리 교육의 효용성
요리 정보를 힐끔거릴 수 있는 사회적 통로가 보잘것없던 시절, 음식을 만드는 조리법은 철저하게 도제식(徒弟式)으로 전수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그 어머니는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요리하는 방법을 배웠을 테고 배움의 실체는 눈동냥, 귀동냥, 눈치 동냥이었을 것이다.
직접 보고 듣고 눈칫밥을 먹어가며 실전(實戰)의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요리법은 책이나 방송 등을 통해 수동적이고 단편적으로 습득한 내용과 같을 수 없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나은 것처럼(百聞不如一見),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실천하는 게 더 효과적(百見不如一行)인 것은 물으나 마나다.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은 고사성어(故事成語)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을 차용(借用)한 표현이다.
갈치조림
축적된 오랜 경험을 통해 대대로 전해 내려온 요리법을 줄줄 꿰고 있는 어머니들 앞에서 정형화된 요리법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일 따름이다. 몸이 기억하는 체화(體化)된 요리 정보야말로 최고의 음식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정보 소통의 창구가 사방팔방에 널린 시대라 요리에 관한 궁금증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동일한 음식이라도 온갖 레시피가 난무한다. 입맛이 다 다르고 취향도 그러할진대 천차만별의 미각(味覺)을 만족시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모두가 다 인정하는 소문난 맛집이라면 기꺼이 다리품을 팔고 통 크게 지갑 열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닭볶음탕
#지난(至難)한 맛의 세계
인터넷에서 거르고 캐낸 요리 정보를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정성껏 주말 밥상을 차린 지 4년이 훌쩍 흘렀다. 똑같은 재료와 똑같은 방식과 똑같은 마음으로 요리를 하건만 그때마다 미세한 맛의 차이를 느낀다.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금방 수긍이 갔다.
재료의 신선도가 매번 같을 수는 없고, 재료를 다듬고 손질하는 손길의 성정(性情)과 양념의 조합도 마찬가지고, 불의 강도 조절과 타이밍, 나도 모르게 시간 차가 나는 요리 시간의 총량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의 원인은 요리 과정에서 언제든지 돌출할 수 있는 이런저런 변수를 효과적으로 다스릴 줄 아는 재능과 감각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시간과 노력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그곳까지 다가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오징어무침
#밥상 메뉴 결정 기준과 요리 준비 과정의 전후
내가 주말 밥상 메뉴를 결정하는 기준과 요리 준비 과정의 전후는 이렇다.
1. 메뉴 결정의 기준
내 나름의 집밥 메뉴 선택의 기준은 첫째가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음식 취향이고, 둘째가 건강식(健康食)이나 계절(節氣)의 특성에 어울리는 제철 음식을 중시하는 것이다. 또 가족 중 누군가가 특별히 먹고 싶어 하거나 원하는 밥상을 차리는 일도 적지 않다. 내 나름의 기준이라기보다 어느 집이나 비슷할 것이다. 집마다 음식 문화가 다 다르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식구들의 음식 기호가 가정 상차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겠다.
콩나물국
1~2주 전에 먹었던 음식은 메뉴에서 제외하는 것도 또 다른 기준이다.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라 일정한 주기(週期)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주요리는 닭백숙과 닭간장조림, 닭볶음탕, 오징어볶음, 오징어무침이다. 국 종류로는 콩나물국과 뭇국, 미역국이고 무침류로는 오이무침과 상추 겉절이, 볶음류로는 마늘종 건새우 볶음, 조림류로는 생선조림과 두부조림이다.
미역국
메뉴 결정의 부담이 한결 가벼워질 때가 있다. 소고기나 삼겹살을 집에서 구워 먹거나 식당에서 포장 구매한 부대찌개나 동네 마트 수산물 코너에서 산 밀키트 매운탕을 식탁에 올리기로 마음먹은 때다. 메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 식사 준비 시간이 단축되는 것도 물론이다. 국이나 찌개류와 같은 별도의 국물 요리를 만들지 않아도 돼 이래저래 상차림 손놀림이 흥겹다. 바깥에서 외식(外食)하는 날은 말할 것도 없다.
나만의 음식 일람표(一覽表)
4년 전 맨 처음 주말 밥상을 차리기 전에 한 일이 있다. 우리 집 식탁에 오르는 단골 메뉴인 국과 찌개류를 비롯해 구이, 무침, 조림, 볶음, 생선 요리 등 밥상 식단(食單)을 짠 뒤 각각의 조리법을 간단하게 정리한 음식 일람표(一覽表)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이무침
인터넷 검색을 통한 메뉴별 요리법 중 서너 가지 정보를 비교해 공통적인 내용을 추려 알기 쉽게 정리했다. 필요한 식재료와 식재료 다듬기, 양념장과 육수 만들기, 불 조절과 끓이는 시간, 간 맞추기 따위를 요약한 정보를 휴대전화 메모장에 차곡차곡 저장했다. 음식을 요리하는 경험이 쌓이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터득한 점을 반영해 메뉴별 요리법 내용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 주말마다 선별해 저장한 메뉴 수를 헤아려보니 주메뉴와 부메뉴, 반찬류 따위를 모두 포함해 80가지가 넘었다.
두부조림
2. 평균 조리 시간과 장보기
내가 주메뉴를 요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1시간 이내다. 장(場)을 볼 내용물은 주말 메뉴를 정할 때 달력형 핸드폰 메모장에 빠짐없이 기록해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 매주 토요일 오후 동네 산책로를 따라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15분가량 쇼핑한다. 생선은 매번 빠지지 않고 육류는 한 주를 걸러 사는 편이다.
3. 밥 짓기
집사람과 나, 둘 뿐이지만 한 번에 3~4인분의 밥을 안친다. 계량적으로는 두 끼 분량이나 실제로는 둘이 세 끼를 먹고도 조금 남는다. 집사람의 식사량이 평균 이하고 나는 소식(小食)이라서다.
우리집 주방용 칼. 나는 요리할 때 왼쪽에서 두 번째 중간 크기의 칼을 주로 사용한다.
4. 향신채(香辛菜)와 양념장
가장 많이 사용하는 향신채는 양파와 대파, 다진 마늘, 청양고추, 후추, 참깨다. 양념장 재료로는 고춧가루와 진간장, 다진 마늘, 맛술, 매실액, 올리고당, 설탕, 참기름, 멸치액젓, 소금, 식초, 참깨 등이다. 떡볶이를 요리할 때 말고는 가급적 고추장은 사용하지 않는다. 텁텁한 맛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용유와 들기름은 식재료를 굽고 볶고 부치고 조리고 무칠 때 사용한다.
우리집 조리 도구
5. 주방 도구
주방 도구의 기본이자 핵심은 칼이다. 나는 식칼 대신 중간 크기의 칼을 고집한다. 손에 쥐었을 때의 그립감이 편해 굳이 식칼을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다. 주방의 필수 도구인 칼은 위험한 물건이다. 자칫하면 손을 벨 수 있어 식재료를 다듬고 손질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도마, 가위, 집게, 뒤집개, 국자, 망(網) 국자, 밥 푸는 주걱과 볶음 요리용 주걱, 달걀옷을 만들 때 거품을 내는 거품기, 냄비, 프라이팬, 찜기 등 일상적인 주방 도구를 다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