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오징어볶음
35. 오징어볶음
#오징어 요리의 눈부신 확장성
오징어는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오징어로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실체를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오징어 요리의 확장성은 시원한 맛이 일품인 오징엇국을 비롯해 오징어회, 오징어물회, 오징어 숙회, 오징어구이, 오징어볶음, 오징어무침, 오징어튀김, 오징어 조림, 오징어찜, 오징어순대, 오징어 김치전, 오징어젓갈, 심지어는 생물 오징어를 채 썰어 김칫소와 함께 버무려 담근 오징어김치 따위로 실로 눈부시다.
날것으로도 먹고 끓이고 데치고 굽고 볶고 무치고 튀기고 졸이고 찌고 부치고 절여서 삭히는 방식인데 요리에 동원할 수 있는 사실상 모든 방법이 다 가능한 몇 안 되는 식품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데쳐서 먹는 오징어 숙회와 쪄서 먹는 오징어찜은 비슷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요리 방법과 식감에서 차이가 난다. 끓는 물에 45초~60초가량 살짝 데치는 오징어 숙회가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라면 찜기에서 15분 정도 통째로 찌는 오징어찜은 말랑말랑하면서 끈끈한 내장 맛이 특징이다. 오징어 숙회보다 살도 더 연하다.
깨끗이 손질한 생물 오징어 두 마리.
#밥반찬으로도 먹고 술안주로도 먹는 오징어 요리
오징어 요리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밥반찬으로도 즐겨 먹고 술안주로도 인기가 많다는 점이다. 오징어 숙회와 오징어볶음, 오징어무침, 오징어 조림이 그런 것들이다. 오징엇국은 밥과 함께 먹는 국물 요리로, 오징어젓갈과 오징어김치는 밥반찬으로, 오징어회와 오징어물회, 오징어튀김, 오징어찜, 오징어순대는 술안주로, 오징어구이와 오징어 김치전은 술안주 겸 심심풀이 주전부리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오늘 이야기는 오징어볶음에 관한 것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오징어볶음의 맛은 우연한 기회에 되살아났다. 2023년 봄 지하철 3호선 화정역 근처의 한 건물 지하의 허름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오징어볶음. 마지막으로 먹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맛집 탐방을 좋아하는 내가 화정역 광장 주변의 식당을 몇 번이나 훑었는데도 놓친 곳이다. 간판이나 입간판 등 식당의 존재를 알리는 광고물이 따로 없어 건물 바깥에서는 알아차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양파 두 개를 크게 썰어 준비한다.
#오징어볶음 숨은 맛집
출입문이랄 것도 없이 건물 지하 1층 구석의 개방된 공간에서 장사하는 집인데 입소문이 날 대로 난 숨은 맛집이란 사실을 들어오고 나서야 알았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네댓 테이블에 손님이 들어차 있었다.
내가 처음 갔을 때는 한여름 오후라 날씨가 꽤 더웠는데 에어컨 시설은 아예 없고 대형 선풍기 서너 대가 더운 바람을 뿜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요즘 세상에 에어컨이 없는 식당도 이례적이지만 그런 식당에 여름에도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는 것은 더 이례적일 것이다. 진정한 맛집의 힘이라 생각된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한입 크기로 썬 오징어를 먼저 볶는다.
서빙 아주머니가 내온 오징어볶음의 아우라는 정갈하면서 맛깔스러웠다. 오징어에 채 썬 양파만 넣고 볶은 단출한 모습의 오징어볶음을 한 입 베무는 순간 오랫동안 기억 밖에서 떠돌던 맛이 거짓말처럼 침샘을 자극했다. 가스 불로 볶는 주방 모습이 훤히 보이는 것과 달리 직화로 요리한 것처럼 불의 향이 강하게 와닿았고 탱글탱글한 오징어 살의 식감과 함께 매콤한 풍미가 추억 속의 맛을 흔들어 깨웠다.
유심히 살펴본 결과 오징어볶음에 고추장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간장, 설탕, 참기름, 통깨만으로 요리한 듯, 텁텁함이 없이 깔끔한 맛이 났다. 볶음 요리인데도 자작하게 졸여진 알싸한 국물이 인상적이었는데 밥에 몇 숟가락 끼얹어 먹고 나니 입이 개운해졌다.
오징어가 어느 정도 익으면 고춧가루와 진간장, 설탕, 맛술 따위의 양념을 넣고 골고루 섞어 볶는다. 청양고추 한 개도 넣는다.
#오징어볶음 요리의 특징
그날 이후로 오징어볶음은 다시 내 입맛을 돋우는 단골 메뉴가 됐고 우리집 주말 밥상에도 심심찮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호불호의 문제이겠지만 나도 오징어볶음을 요리할 때 고추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징어볶음은 센 불에서 후다닥 볶아야 맛있다. 오래 볶으면 오징어 몸속의 단백질 성분이 엉기거나 뭉쳐져 오징어가 질겨진다. 오징어를 볶는 시간은 3~4분 이내가 적당하다.
볶을 때 오징어와 양파에서 수분이 우러나오기 때문에 따로 물을 넣을 필요는 없다. 양념 국물을 좋아하면 종이컵 기준으로 반 컵 정도의 물만 붓는다. 오징어볶음을 밥 위에 얹은 게 오징어덮밥이다.
마지막으로 양파를 넣고 살짝만 볶아 익힌다.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약불로 맞춘 뒤 1분 뒤 불을 끈다.
오징어볶음은 오징어 살의 쫄깃함의 정도와 채소의 종류와 양, 양념, 불의 강도, 볶는 시간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라 의외로 까다로운 요리다. 오징어볶음 요리에 들어가는 채소로는 양파와 대파, 당근, 양배추, 풋고추 등이 있으나 나는 양파와 청양고추만 사용한다. 채소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오징어볶음이 맛이 산만해지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취향이다.
다른 채소를 생략하는 대신 양파를 두 개 준비한다. 양파는 감칠맛을 내고 청양고추는 매콤한 풍미를 배가시킨다. 양파는 오징어를 다 익히고 난 뒤 넣고 살짝만 볶아 아삭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도록 한다.
양념은 고춧가루 두 큰술과 다진 마늘 한 큰술, 진간장 네 큰술, 설탕 반 큰술, 맛술 두 큰술, 후추를 섞어 만들고 요리 마지막에 참기름을 두른다.
완성된 오징어볶음. 매콤하면서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오징어 맛이 밥도둑으로 손색이 없다.
맛술로도 오징어의 비린내를 제어할 수 있어 굳이 청주나 소주는 넣지 않는다. 통깨는 뿌릴 때도 있고 생략할 때도 있다. 오징어를 양념에 버무린 뒤 볶는 방법도 있다. 오징어는 둘이 먹기에 넉넉하도록 생물 오징어 두 마리를 손질한다.
정성껏 차린 오징어볶음 밥상은 밥도둑으로 손색이 없다. 오징어볶음을 먹을 때는 오이와 오이고추도 꼭 곁들여 먹는다. 매운맛의 뒤끝을 순화시키면서 상큼한 기운이 샘솟기 때문이다.
지하철 3호선 화정역 근처 단골 식당의 대표 메뉴인 오징어볶음. 탱글탱글하고 윤기가 흐르는 오징어 살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지난해 봄 우연히 들른 이곳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오징어볶음의 맛이 되살아났다.
내가 차리는 오징어볶음 요리는 이렇다.
1.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한입 크기로 썬 오징어를 센 불로 먼저 볶는다.
2. 오징어가 어느 정도 익으면 고춧가루와 진간장, 설탕, 맛술, 다진 마늘, 후추 등 준비한 양념을 다 넣고 중불에서 골고루 볶는다. 송송 썬 청양고추 한 개도 넣는다.
3. 양파를 넣고 살짝만 익히고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린 뒤 약불로 맞추고 1~2분 후 불을 끈다. 비주얼을 살리고 싶다면 통깨를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