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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색채의 하루.

그림책 [삶의 모든 색]에서 발견한 어제, 오늘, 내일의 이야기..


"그런데 여기서 진짜 문제는,
 내가 그것이 경합인지 연극인지 모른 채 그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지나고 봐야 아는 것, 어쩌면 그 자체가 삶의 묘미일까?"


- 심인서점 | Mindinbookstore



prologue

잊혀진 기억들을 소환해버린 그림책을 만났다.

[삶의 모든 색 | 리사 아이사토 | 길벗어린이]


엄마가 된 이후로 일상 안에 갇힌 또는 일상 안에 머문 나의 하루는 온전히 하나였다가도 완전히 무한하기도 했다. 소녀였을 때 이 사회가 이끄는 전형적인 공식들을 제공받고 그것을 배우며 살아왔던 내가 무엇 무엇을 의심할 틈은 없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요동치는 비밀들은 그대로 진흙 더미에 묻혔고 대신 그 자릴 메꾼 건 다름 아닌 그들 나름의 성공한 척도로 깍듯하게 잘라 맞춘 퍼즐이었다.


아이의 삶


그 깍듯한 퍼즐이 꾸역꾸역 맞춰지는 동안에도 한동안 나는 아주 해맑은 아이였다. 소녀였던 나의 해맑음은 삶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을 넉넉하게 쓸어 담고도 남았던 것 같다. 그때는 호기심이 이끄는 일상을 지내고있었기 때문에 부산물 따위가 진흙 더미에 묻히는 줄도 몰랐다. 사람은 호기심이라는 유전자를 타고 나기에 그 때 경험한 호기심은 처음이라는 황홀감을 안겨 주기에. 그렇게 넉넉했던 소녀의 마음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지금의 우리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최소한 절반 이상 닮아 있을 나의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그 천진난만함은 애초에 나의 것도 아닌, 그 누군가의 것도 아닌, 아이들의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같은 나, 가장 뛰어난 자정 능력이 있는 아이의 삶은 그래서 황홀한 씨앗을 품은 땅이다.


자기의 삶 


이제 무대로 나왔다. 한 뼘 더 자란 이 아이를 사회는 초년생이라 부른다. 주니어에서 시니어 대회로 넘어간 선수들처럼 긴장이 된다. 소녀로서 일상에서 편안하게 누려왔던 황홀한 경험은 그대로 이어졌을까? 누군가에게는 수월하게 오고 누군가에게는 혹독하게 왔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떠했을까? 나에겐 세상이 무대처럼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말하자면 극한치의 경합을 해야 할 곳에서 연극을 하는 느낌으로 지낸 나날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시절 내가 만났던 선후배들 덕분일 것이다. 회상해보면 선배님들이 참말로 나를 예뻐해주었던 것 같다. 참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공부하는 방법, 일하는 방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까지. 찬장이나 창고를 정리하다가 선후배들에게서 받은 선물을 가끔 들여다 볼 때가 있다. 눈물나게 고맙고 그립다. 그 때 우리들에게 어린 향기가. 선후배들과의 티키타카로 채워진 향기어린 추억들. 즐겁고 행복했다. 합주였다. 함께였다. 열심히 후회없이.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긴 했다. 무언가를 할 때 그것이 경합인지 연극인지 모른 채로 최선을 다했다는 거. 도대체 이런 지점은 어떻게 설명이 될까. 물음표로 남긴다.

군중 속의 나, 자기의 삶은 그래서 경합일지 연극일지 모르는 합창이다.


부모의 삶


남편을 만난 후로도 계속 아름답다 여겨지는 세상을 보고 있는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강렬한 느낌이 있었다. 이 사람과 함께 해야겠다라는 확신. 자신감. 그리고 사랑. 나는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이 남자를 보았을 때 굳건한 사랑을 배울 수 있음을 직감했다. 망망한 대심해 한복판, 나의 커리어가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그 언덕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마치 이정표를 만난 것처럼 이 남자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는 남편도 나도 알고 있는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감사함. 시소에 달아본다면 아내가 가진 감사함이 더 클테지만...^^; 그럼에도 이 마음이 유지되는 이유는 우리가 부모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진지한 교집합은 아이들이다. 육아보다 더 역동적이고도 농도 깊은 교집합이 있을까. 울고 웃으며 멈출 수 없는 춤을 춘다. 배경은 째즈. 선율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즉흥 연주다.

춤추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나, 부모의 삶은 그래서 영원하다.


p.s.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해 속단할 수 없다. 사람들 사이사이 마다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기에 새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 세상에 탄생되고 있는 게 아닐런지. 그래서 이 그림책은 읽는 이마다 감상이 다를 것이다. 인생이 얼마나 축복인지 경험해 보길, 사람으로도 책으로도 위로가 안되는 날이면 더더욱, 그림 속의 나를 발견하기를. 진흙 속에 감춰뒀던 나를 만나 이해하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울고 있는 나의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해 공명하는 것. 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타인을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 타인과 공명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삶의 한 시공간에 의미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것. 이 그림책 [삶의 모든 색]처럼.



cookie poet


제목: 어떤 날들이,


정글 속 카멜레온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나의 온도.

그건 마치 나의 삶을 뜨겁게도 차갑게도 만드는 카멜레온 같은 삶. 

어떤 날은 참.. 미- 미지근하다 하.


좋아하는 차와 커피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나의 농도.

그건 마치 나의 삶을 진하게도 흐리게도 만드는 차와 커피와 같은 삶. 

어떤 날은 참.. 어- 어중간하다 하.


금은 보화보다 귀한,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나의 시간.

그건 마치 나의 삶을 빠르게도 느리게도 만드는 속절없는 시간과 같은 삶. 

어떤 날은 참.. 맴- 맴돈다 하.


그렇게 어떤 날들이 모이고 모인다.

그 어떤 날들이 모이고 모여 연료가 된다.

나의 색은 그 어떤 날들이 모여 만든 연료가 섞인 색이다.


심인서점 (@mindinbookstore) • Instagram photos and videos


epilogue

내 나이 마흔. 이곳과 저곳을 오가는 느낌을 감당하느라 애쓴 나의 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뚱뚱해져도 괜찮다고 말해본다. 본래의 호흡에 아이들의 호흡을 담아내느라 수고했다고. 본래의 호흡에 남편과의 호흡을 맞추고 또 맞춰보느라 수고했다고. 앞으로도 길고 긴 호흡이 남아 있으니 이제부터는 몸을 더 아껴주고 많이 돌봐주겠다고 약속하고 싶다.


심인서점 | Mindinbook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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