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가 만 6세, 만 3세 지나면서부터 둘 사이 대화가 좀 더 촘촘하게 연결되는 모습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단편적인 대사가 아니라 서사를 만들면서 놀이의 규모나 내용을 확장해 가는 식이다. 그 안에는 아주 다양한 것들이 담기는데 우리 집 동선 육아 범주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언제든지 자유로운 방식으로 구현하는 모습이 보인다. 요즘은 주로 역할 놀이 형식 안에서 많은 "작업"이 이루어진다. 재료실에서 아이들이 직접 소재를 고르고 어떤 놀이를 할 것인지 상의해서 정하며 모든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육아 관찰 일지 1.
그러던 중 훈육할 일도 물론 가끔 생기는데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 한다. 엄마의 작업실에서 일을 좀 보고 있었는데 둘째 방통이의 소리가 꽥하고 귀에 꽂히는 거다. 그래서 긴급 출동해서 복도를 지나 거실로 가 보았다. 두 아이는 마주 보고 서 있었으며 감정적으로 대치 중인 상황이 한눈에 읽혔다. "무슨 일이니?" 물어보니 두 아이가 서로 한풀이를 하려고 난리인 거다. 엄마인 내가 즉각 교통정리를 했다.
1) 각자의 입장 정리하기
"누구의 얘기든 끝까지 들어줄 테니 순서를 정해서 말해."
"엄마는 마지막으로 말하는 사람 이야기도 끝까지 들어줄 테니 걱정 말고 기다려."
라고 했더니 역시 그래도 좀 더 정서 발달이 된 첫째 신통이가 순서를 양보해 주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방통이 얘기를 들어보니 "전쟁놀이를 하는데 나는 이기려고 때리고 소리 지른 거예요." 하며 아주 순수하게 자신의 전략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 엄마가 방통이 입장을 이해했어. 다음 신통이 얘기해."라고 했더니, "이건 전쟁이 아니고 전쟁놀이인데 방통이가 밀치고 소리 질렀어요!"라며 억울함을 표출하는 거다.
2) 이해관계를 공동의 문제로 환산하기
자, 이런 상황이면 보통 엄마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나의 선택은 아이들에게 '남매의 갈등 상황을 한 문장으로 재구성해' 그것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의식하도록] 만든 것이다.
"응. 이제 엄마가 우리 신통이 방통이 입장을 다 잘 들었어. 모두 이해 가네. 그러면 (오른쪽 주먹을 쥐며) 신통이는 이건 놀이인데 진짜 전쟁처럼 때리고 소리 지르는 방식은 불편하다는 거고, (왼쪽 주먹을 쥐며) 방통이는 진짜 전쟁처럼 이기려고 그냥 했다는 거네. (양손 주먹을 가운데로 부딪힌 다음 포물선을 그리며 손바닥을 펼쳐 저울처럼 보이게 만들며) 자, 이 두 가지 입장이 부딪혀서 문제가 생긴 거구나."
3) 공동의 문제를 발제하기
"와, 엄마는 도통 해답을 잘 모르겠는데, 너희들은 혹시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니?"
이렇게 질문의 형태와 방향을 바꾸니 아이들은 어느새 한 팀이 되어 우리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궁리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더니 방통이가 먼저 "때리지 않아요. 소리 지르지 않아요."라고 자신의 행동을 수정할 내용을 스스로 말하게 되었고, 신통이가 이어서 좋은 생각이 있다며 "우리가 적이 아니라 한 팀이 되어서 상상의 적을 물리치는 놀이로 바꾸면 돼요!"라고 생각을 전환하는 모습을 보인 거다.
4) 각자의 해결책을 인정해 주고 최종 합의안 조율하기
만 3세 방통이는 보통 자신의 행동을 올바르게 수정하는 방안을 도출하곤 한다. 그 또한 자신의 마음에서 새로 우러나온 다짐이기에 마치 공약이라도 한 것처럼 약속이 잘 지켜진다. 그럴수록 같은 갈등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미 정식으로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오빠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기억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올바른 행동인지 잘못된 행동인지 더 잘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 6세 신통이는 이제는 지렛대의 중심점을 바꾸거나 관점을 환기시켜서 문제를 더 슬기롭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문학, 창작, 인성, 정보 그림책, 백과사전, 전집, 옛이야기까지 가릴 것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이끌리는 대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지성이 생기면서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밥상머리 말미에 남매가 엄마와 함께 그림책의 그림 읽기나 주제 읽기와 관련된 하브루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철학적인 질문과 대답이 익숙한 상황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직 어린 아이라 당연히 처음 겪는 불편한 상황에서는 영락없는 아이와 같이 울기도 하고 화도 내지만 당연한 감정의 표출 뒤엔 스스로를 추스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힘이 길러지고 있는 게 보인다.
5) 엄마의 훈육 과정 돌아보기 (셀프 피드백)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이 훈육 방식이 아이들의 지성을 상당히 높이게 된다는 점에 확신이 들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감탄하게 된다. 그렇지만 언제나 개선의 여지는 있는 법. 어떤 사람도 완벽할 수 없기에. 다만, 매일 나아지고 싶기에.
엄마의 어휘에서 더하거나 뺄 것은 없는지 되돌아본다.
훈육 일기 2. 마찬가지 원리로 훈육이 아주 슬기롭게 진행된 사건이 있어서 기록에 남긴다.
신통이 방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역시 바로 출동한다. "무슨 일인지 말해줄래?" 하자마자 아이들은 바로 성화를 부린다. "얘들아, 누가 먼저 얘기해도 엄마는 너희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거야. 그러니 순서를 정하자." 신통이는 이미 엄마와의 신뢰가 아주 탄탄하기 때문에 (이래서 첫째 육아를 정식으로 놓치는 것 없이 잘 키우는 게 둘째 육아까지 얼마나 유익한지 모른다)
"제가 형님(=오빠)이니 양보할게요." 한다. 이때 방통이가 냉큼 "이 투명 볼 내가 먼저 잡았는데 오빠가 계속 달래요." 한다. "그래. 엄마가 방통이 입장 잘 들었어. 다음 신통이 얘기 들어보자." 신통이가 하는 말은 "(투명 볼 자체가 원래 본인 것인데 그것도 어필을 못하고... ㅜㅜ) "내가 좀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는데도 방통이가 절대로 주지 않아요."라는 거다.
여기서 남매 갈등을 우리의 '공동의 문제'로 전환하는 나만의 훈육 언어가 발휘된다.
"그래. 엄마가 너희들 이야기 잘 들었어. 그러니까 방통이는 먼저 잡은 걸 자꾸 달라고 하니 싫은 것이고, 신통이는 부탁을 여러 차례 했는데 빌려주지 않으니 서운한 거지?" 여기서 엄마의 역량이 필요한 부분은 아이들이 처한 각각의 입장에서 보이는 문제의식을 '각자의 진실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의 어휘로 구성된 문제를 표현하는 서사에 아이들이 공감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어려워진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1단계가 잘 닦였으니, 다음 단계 "그래 (오른쪽, 왼쪽 주먹을 부딪히며) 이런 경우 엄마는 도통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데, (양손 바닥을 저울처럼 펼치며) 우리가 편안하게 지내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라고 문제를 환기시켜 던져본다.
아이들은 어느새 퀴즈 맞히기 경쟁을 하듯, 방통이가 먼저 "이십 분 뒤에 빌려 줄게요." 하면, 신통이가 그 말을 듣고 좋은 자극을 받아 "아니라고 극구 본인이 양보하겠다." 한다. 한두 차례 다짐을 확인하며 양보나 또는 더 흔쾌히 해줄 수 있는 아이를 가리고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아이를 구분해 둘 다 편안한 마음 가짐이 든 상태가 될 때, 그때 직접 새로운 아이디어와 다짐을 실천할 기회를 준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깨닫고 그 기회를 획득한 것에 기뻐하면 누그러지고 밝아진다.
그러면 꽁꽁 언 긴장 관계가 따스한 햇볕 아래 순식간에 녹는 게 느껴진다. 서로를 더 믿게 된다.
이렇게 나는 훈육을 남매가 우정을 쌓고 신뢰를 다져가는 기회로 잘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 성향도 많이 다르고 가정마다 특색이 다르지만 "갈등을 공동의 문제로 전환해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풍으로 만들면" 서로 더 폭넓게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노하우를 응용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