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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타임루프를 되돌려줄까.

그림책 [09:47] 위기인가 기회인가 둘 중 하나가 되는 이야기..


"만일 내가 다시 타임루프를 타고 돌아왔다면 자, 이제 어떤 선택을 바꾸겠는가?"


"아이가 베어 문 한 숨으로 우리의 여정은 시작된다. 하늘 높이 솟구쳤다 심해보다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 

  아이가 만난 토끼와 갈매기 그리고 고래의 그것, 그들이 어떤 존재가 될지, 과연 누구에게 달려 있을까?

  다름 아닐 것이다. 바로 당신, 그리고 나,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 심인서점 | Mindinbookstore



prologue

09:47

물에 홀딱 젖어버릴 그림책을 만났다. 

[09:47 | 이기훈 | 글로연]


타임루프 1회 차

아이가 베어 문 첫 번째 한 숨으로 우리의 여정은 시작된다. 하늘 높이 솟구쳤다 심해보다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 아이는 무엇을 만나고 어떠한 여정을 겪게 될까? 문을 열고 나온 아이는 방금 전에 화장실에 들어 간 아이일까? 지금은 홀딱 젖고 돌아왔지만 다음번 타임루프를 타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까. 이 아이를 지켜줄 수 있기를. 욕망의 역사에서 생존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통영항 여객터미널에 한 가족이 왔다. 삼 남매 중 막내를 알아보는 단서는 충분하다. 머리에는 벌써부터 물안경이 써져 있고 왼 손엔 아빠 손, 오른손엔 토끼 인형을 들고 있다. 이 가족을 제외한 선창작 주변인들과 초반 탑승객들은 대부분 동물 머리를 하고 있는데, 작가가 전작들에서부터 보여준 노아의 방주 개념과 상호텍스트성이 돋보인다. 참신하고도 알맞은 은유법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설정은 또한 나와 같은 팬이나 독자들을 길들여 이제는 어느덧 이 작가의 로고처럼 느껴지기도. 나야 나, '이기훈'. 꿋꿋하다. 그래서 주목하게 된다.

순조로워 보이는 출항. 끼룩끼룩 부산스러운 갈매기들에게 시선을 빼앗길 세라 바닷물에 비친 아이와 토끼의 형체?! '어, 나는 여기에 있는데 내가 왜 저기에 있지? 내 토끼랑 같이?' 어리둥절할 새도 없이 아이의 토끼 인형이 납치된다. 토끼는 애착 인형이다. 애착 인형은 아이가 인류로 태어나 처음으로 욕망하는 대상일 게다. 아이는 실망하고 슬프다. 토끼 인형은 내 옆에 있어야 한다. 토끼 인형은 나를 위로해 주는 좋은 존재다. 그러므로 내 것이어야 한다. 아이의 욕망은 순수하다. 그럴만하다.


갈매기는 왜 이토록 집요할까? 아이도 지지 않는다. 토끼 인형을 사수하려고 안간힘을 다 쓴다. 최선을 다해 욕망을 지키려는 아이. 이러한 대결구도, 즉, 갈매기와 아이의 쫓고 쫓기는 형세에서 우리가 받는 인상, 의미를 해석해본다.


갈매기는 계속해서 토끼 인형을 물고 또 물어간다.
우리들에게 묻고자 하는 것인지 모른다. 

욕망인가요? 맞나요? 어떤 욕망인가,
순수한, 타락한, 당연한, 또는 과한 욕망?

끝까지 물어가는 갈매기의 모습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욕망에 스스로 자문하라, 철저히 검증하라고.

타당한 욕망인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며.
최선을 다해 지킬만한 욕망인지 아닌지.



한편 고래를 통해 받는 깜짝 선물이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고래의 그것은 거대한 생명의 눈이며, 고래의 몸무림에 의해 떨쳐 나온 것들은 나무판자들과 같은 부산물로 묘사된 것임을. 나는 알아챘다. 그것은 작가의 전작 [빅피쉬]의 눈이고, [양철곰]의 배경인 숲에서 나온 나무판자들이거나 양철곰의 몸을 이루는 알쏭달쏭한 판자 들일 것이라 추측하게 만든다. 숨겨진 것들을 발견할 때의 희열은 그림책을 계속 공부하는 원동력이다.

미소 짓고 있는 나 자신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간. 이런 게 선물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소임을 다한 고래들은 회선 한다. 고래 떼가 상승하며 서서히 사라질 때 동시성을 보여주며 심해로 하강하는 아이와 토끼가 대비되며 마치 서로 다른 종에게 주어지는 자유와 속박이 교차하는 지점을 시사하는 듯 하다. 지구의 환경 위기라는 것은 무엇을 겨냥한 건지 숙고하게 되는 지점이 여기서 발생한다. 환경과 기후위기라는 말은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렇다. 인간을 겨낭한다. 지구란 행성을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구는 소멸하지 않는 한 끝끝내 아주 작은 생명으로부터 다시 태어나 새롭게 진화할 것이다. 멸망을 걱정해야 할 대상은 인류다.


epilogue


이 그림책은 독자들에게 N차 타임루프를 선물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서사는 어디로 갈까.

아이가 베어 문 첫 번째 한 숨으로 우리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하늘 높이 솟구쳤다 심해보다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었다. 아이가 만난 토끼와 갈매기 그리고 고래의 그것, 그들이 어떤 존재가 될지 과연 누구에게 달려 있을까? 다름 아닐 것이다. 바로 당신, 그리고 나,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만일 내가 다시 타임루프를 타고 돌아왔다면 자, 이제 어떤 선택을 바꾸겠는가? 인간이 쌓아 올린 욕망의 형체를 보았다면 이제 그 타고난 욕망을 데리고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 09:47이다.


- 심인서점 | Mindinbookstore


심인서점 (@mindinbookstore) • Instagram photos and videos


인스타에 실었다. 표지 커버내부에 있는 이기훈 작가의 시를 본다.

이 작품이 얼마나 탁월하게 이중주곡을 연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위기 속에서도 아이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은 아름다운 어른의 마음에 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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