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경주하는지와 무엇을 경주하는지의 차이.
경주. 시합. 대결. 이런 단어들을 떠올려요. 우리는 질문하지요. '상대는 누구인가?'
이기고 싶을 때 나와 상대의 역량을 파악하고 전략을 생각해 내야 하니까요. 그렇죠?
그런데 한참 달리다 보면 누구와 경주하는지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을 고민하는 어느 날이 와요.
이 경주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생겨요.
'나는 지금 무엇을 경주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나요?'
- 심인서점
[토끼와 거북이의 두 번째 경주]
(사)한국북큐레이터협회
글 | 캐롤라인 렙척 그림 | 앨리슨 제이
옮김 | 이승진
prologue.
심인서점은 픽픽 웃으면서 생각했다.
최초의 라이벌은 아마 토끼와 거북이 일 것이라고.
우리의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있는 토끼와 거북이.
요즘 이들도 세상에 맞추어 변하고 있다.
어쩜 이렇게 재밌을까. 우리가 토끼와 거북이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언제나 옛이야기 [토끼와 거북이]를 떠올리니 말이다.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속 한편에 살아있는 세기의 라이벌, 토끼와 거북이다.
거북이가 꽤나 출세한 모양이다. 이번에는 국제 도시, 뉴욕에 가는 중이란다. 거북이의 스타일리시한 복장과 차림을 보면 거북이의 일정에 바로 납득이 간다. 여유를 부리며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경주를 약속하는 둘은 서로 참 다르다. 토끼는 즉흥적이고 거북이는 계획적이다. 토끼는 유쾌하고 거북이는 진지하다. 따라서 경주에 대한 두 라이벌의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토끼는 수단이 참 좋다. 그래서 이동 수단도 다양하다. 자동차로 시작해서 케이블카, 배, 열기구, 낙타, 카누, 삼판, 비행기, 서핑까지 역동적인 여정이 펼쳐지고 그만큼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겪어 나간다. 반면, 거북이는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다. 끝까지 우아한 여정 위에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며 자유의 여신상에 당도해 있다.
누구의 경주가 더 나았는지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그 판단이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승리와 패배 관점에서 고개를 조금만 돌려서 그 보다 토끼와 거북이가 각각 얻었을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토끼는 경기에서 졌다. 그러나 토끼는 얻은 게 너무나도 많다. 아이들이라면 토끼를 더 부러워할지 모른다. 갖가지 교통수단을 다 타보고 그만큼 여러 지역의 다양한 자연환경을 둘러볼 수 있었고 현지의 동식물들을 보고 느꼈으며 때로 도움도 받아가며 그렇게 자신의 여정을 꾸려 나갔을 것이다. 토끼에게 남은 추억은 이렇듯 강렬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자신의 것이 되었다.
거북이는 경기에서 이겼다. 누가 봐도 질 거라 여겨지는 거북이지만 경주의 형태가 바뀌었다. 그냥 달리기가 아니라 목적지까지 먼저 이동하는 자가 승리하는 판으로 바뀐 것이다. 거북이가 느리기만 할 때는 달리기가 불리하지만 거북이가 이동하는 수단에 있어서 인내심과 성실함으로 무장해 자신의 탁월한 계획성을 발현한다면 그 경쟁은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된다.
무엇을 경주하고 있느냐는 결국 나의 장점을 단점으로 만들거나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뀌게 할 수도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경주의 형태와 실체는 경쟁 자체의 판을 흔들고 바꾸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면면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epilogue.
만 6세, 만 3세 우리 남매는 토끼가 안쓰러웠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빠른 비행기를 만들었다.
종이로 각자의 비행기를 만들었는데 비행기 내부에 긴 빨대를 고정해 줄이 관통할 수 있게 했다.
그 빨대 안으로 종이로 만들어진 노끈을 길게 설치하고 양 끝을 냉장고 자석과 1호 방 의자 다리에 묶었다.
노끈이 팽팽할수록, 노끈의 기울기가 클수록 비행기가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배웠다.
도착 지점에는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했고, 그 덕에 활주로라는 단어를 배웠다.
모두 토끼를 위한 것이었다. - K-mama & Ki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