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후에 티엔무 사원, 퐁냐케방으로 이동
불길한 예상은 적중했다.
두 시간쯤 지나니 바로 우리들 슬리핑 시트 사이에 판때기를 깔고 그 위에 매트를 깔더니 잠시 뒤 젊은이 한 사람이 찾아와 그 위로 눕는다. 하노이로 간단다.
1601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티엔무는 천모사天姥寺라고 하는데, 천모라는 노인이 200년 후에 나타날 응우엔 왕조의 출현을 예언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어디나 절을 지을 때는 하늘의 뜻을 받은 이가 지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거대한 7층 탑을 볼 수 있다. 무려 21미터라고 한다.
사실, 우리는 이 티엔무 사원의 틱꽝득 스님이 정부의 불교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호찌민까지 타고 갔다는 자동차를 보고 싶었다. 틱꽝득 스님이 보여준 소신공양은 너무나 충격적이지만 이러한 신념은 반전운동을 증폭시킨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 역사를 언급할 때면 늘 언급되는 스님이다. 차를 타고 호찌민으로 가 스스로를 불사르는 공양을 마친 후 스님은 사람들 마음속에 영원으로 남았고, 자동차만 티엔무로 돌아왔다. 스님의 차를 보는 사람들 모두 숙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기도하는 사람들이 더 간절해 보였다. 사원은 후에를 가로지르는 흐엉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매우 뛰어난 풍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원이나 교회를 돌아보길 좋아한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성물을 준비하여 바치고, 향을 피우고 혹은 초를 바치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경건해 보인다. 지구상의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부처님에게, 마흐메트에게 기도하기도 하고 공자님에게, 조상님께 기도하기도 하고 시바신이나 비슈누 신에게 기도하기도 한다. 그들이 갈구하는 신에게 나 또한 기도한다.
실체가 없는 신은 곧 우리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인간의 손길이나 의식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존재겠다. 아니 존재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그저 의식 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신에게 기도한다는 것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는 겸손을 상징하기도 하고, 최선을 다하되 나머지는 기다리겠다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분들 덕에 나 또한 신실해지고 겸손해지곤 한다.
점심시간이 지나니 더워서 후에의 모든 길에 사람이 없다. 다들 카페에서, 집에서 쉰다. 우리도 에어컨이 나오는 베트남의 스타벅스, 하이랜드로 들어갔다. 더위에 지친 우리들은 그저 쉬기 위해 베트남 음료를 잔뜩 사 먹는다.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 사람들도 구경하고, 글도 쓰고, 인터넷으로 우리의 루트를 점검하기도 한다. 솔직히 밖은 너어무 덥다.
후에에서 퐁냐로 가는 버스는 누워가는 버스다. 마찬가지로 3열로 되어 있다. 모든 좌석에는 커튼이 있어 프라이버시가 보호된다. 호이안에서 후에로 올 때는 약 150도 정도 누울 수도 있고 옆에 있는 밸브를 조정하면 95도 정도로 의자를 세울 수도 있었는데, 이번 버스는 그냥 눕게만 되어 있다. 그러려니 했다. 뭐, 긴 시간 동안 편하게 쉬는 것이 좋지. 한두 시간쯤 지났을 무렵 3열의 시트 사이로 보조 매트를 깔고 있다. '설마 그 매트 위로 사람들이 더 눕는 건 아니겠지? 그럼, 5 열이잖아? 버스 바닥에 보조 시트를 깔고 사람들을 더 태워서 하노이까지 간다고?' 하지만 불길한 예상은 적중했다.
조금 뒤 2층 맨 뒤에 앉은 우리들 슬리핑 시트 사이에 판때기를 댔다. 그 위에 매트를 깔더니 젊은이 한 사람을 앉힌다. 맨 뒷 열이었고, 2층이었고 두 시트 사이에 바닥이 없기 때문에 2층에 추가 시트를 놓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젊은이는 커플 사이에 누운 본인이 미안한 지 내 쪽의 커튼을 닫아주었지만 난간도 없는 그 좁은 공간이 얼마나 위험하고 답답할 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걱정은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 버스 내 TV에서는 축구경기를 하고 있었고 젊은이는 신나게 경기를 즐겼다. 파트너랑 박항서, 박항서 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동허이 도착 조금 전쯤 휴게소에서 저녁 먹을 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그곳이 휴게소라는 것도 잘 몰랐는데, 바로 옆의 젊은이가 알려주었다. 어두컴컴한 휴게소의 한쪽 부엌 같은 곳에서 배급하듯이 돈을 받고 저녁식사를 접시에 담아준다. 볶음밥과 고기와 이런저런 반찬들을. 우리는 안 먹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50,000동이란다. 음식에 비하면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드디어 동허이를 지나고 퐁냐에서 내릴 때가 되었다. 아래층 시트 사이 바닥에 깐 보조매트에는 사람들이 가득 누워 있었다. 빈 곳이 없었다. 발 딛고 앞으로 걸어야 하는데 어찌할지 모를 정도로 난감했다. 거의 대부분이 하노이로 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익스큐즈미'를 연신 외치며 사람들을 깨우고, 모로 눕게 하고, 바닥에 발을 딛고 걸어 나와 마침내 버스를 탈출했다. 우리 사이 판때기 위에 누웠던 그 젊은이는 우리 자리로 옮겼을 터. 아래층보다 2층이어서 더 걱정했지만, 젊은이는 이제부터는 비교적 쾌적하게 하노이까지 갈 것이다.
퐁냐에는 거의 10시쯤 도착했다. 예상한 시간보다 2시간이나 더 걸렸다. 내리자마자 어떤 분이 다가와서 어디서 자느냐고 해서 예약한 숙소를 얘기했더니 픽업 나오게 해 주겠단다. 고마웠다. 배가 고파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숙소 주인이 나오셨다.
우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오토바이에 우리의 큰 배낭 두 개를 싣고 우리를 태워 숙소까지 데려다주셨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다음날 투어를 하겠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하고 그 밤에 예약까지 했다. 다음날 8시에 나오라고 한다. 우리는 그러겠다고 했다.
숙소 주인은 우리가 예약한 시간이 지나도 안 오니 버스정류장 역할을 하는 카페에 이 사실을 알렸던 모양이고, 우리가 도착하자 바로 정류장 카페 주인은 숙소에 알리고 픽업 나오게 해 주신 거다. 그날, 숙소 주인이 우릴 픽업하러 나오지 않았으면 우리는 아마 밤중에 택시도 못 타고 걸어서 무려 40-50분은 걸리는 숙소를 찾아 헤맸을 것이 틀림없다. 호찌민, 호이안, 후에라는 도시를 거쳐 퐁냐로 올 때 우리는 각오했어야 했다. 퐁냐는 그랩도 안되고, 카페도 별로 없는 그저 동굴만 유명한 조그만 시골마을이란 것을. 그러니까 그렇게 밤늦게 도착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밤늦게 도착할 것이었으면 미리 숙소에 알리고 픽업을 부탁했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모른 채 도착한 우리들에게 퐁냐의 모든 분들은 천사였다.
2022년 6월 5일, 퐁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