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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샘 Mar 03. 2023

단층침대에서 자는 행복

#24일 차, 만족스러운 식사와 저녁식사

 모두는 각자 마음에 드는 색깔의 침대에 가서 신나는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그저 단층침대에서 잔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큰 만족과 행복감을 가졌다. 



이동 : San justo de la vega --> Elganso





아침 일찍 아스토르가까지 걸어와 아침을 먹으며 오늘의 일정에 대해서 의논한 끝에 아스토르가를 좀 둘러보기로 했다. 산타마리아 대성당도 볼 만하고 무엇보다도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순례자박물관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어제 숙소에서 불과 3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8시 전 후에 아스토르가에 도착했다. 카페에서 천천히 아침을 먹었지만 대성당과 박물관이 문을 여는 10시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우리 일행은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실내 게임도 하고 길거리를 어슬렁 걸었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아름다운 아스토르가를 걷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우리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 다녔다. 그러다가 우리처럼 아스토르가를 구경하는 또 다른 순례자들을 만났다. 




에바가 잘 아는 젊은 친구가 다가와서는 어젯밤 알베르게에 경찰이 왔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제 아침 스페인 TV에서 큼지막한 기사가 나왔는데, 몇 달 전 실종된 순례자에 대한 유력한 용의자가 잡혔다는 기사였다. 

그런데 그 실종된 장소가 바로 아스토르가라고 했다. 이곳 아스토르가에서 잤던 순례자들은 경찰들이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갔단다. 아무래도 실종된 곳이 아스토르가라서 그럴 것이다. 또 마침 용의자가 잡힌 곳이라 더 민감하게 경찰들이 순례자들에게 질문을 했던 모양이다. 우리들은 잠깐 그 실종된 순례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서로의 안위에 대한 걱정을 하고 순례길을 걸을 때 가능하면 일행을 만들어 함께 걷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실종사건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스토르가를 걷다가 엊그제 함께 저녁을 먹었던 일행 중 미국인 마크를 만났다. 마크는 나이가 70 가까이 되었는데, 사진 찍는 걸 좋아했고 우리들 각자의 이메일을 기록했다. 그렇게 나중에라도 연락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오늘 우리 일행은 마크와 또 함께 걷기로 했다. 


대성당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중세 때 만들어진 책이었다. 직접 쓰고 그려서 만든 것인데 그 필체나 그림의 색깔들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가우디 박물관에서는 이곳 아스토르가의 유물들과 순례자 관련 전시물들을 볼 수 있었다. 워낙 유명한 건축가가 지어서 그런지 건물이 참 예뻤다.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보았음직한 요정의 성 같았다.

성 야고보의 기적을 믿고 이스라엘 전사들을 무찌르는 순례자가 여러 가지로 모습으로 표현된 것도 볼만했다. 내게 특히 인상적인 것은 아주 투박한 성모마리아상과 아기예수의 조각상이었다. 그 투박함이 무척이나 정겨웠다.




오늘 우리들은 이름도 예쁜 아스토르가를 깊숙이 만끽하고 점심도 먹고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때마침 날이 개었다. 다행이었다. 오늘은 도미니크가 맨 앞에서 걸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후 도미니크를 만나지 못했다. 보통은 맨 앞에서 걷는 친구가 중간쯤에 쉬어주면 다 같이 쉬다가 또 함께 걷기 시작하곤 했는데, 오늘은 아무리 걸어도 도미니크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그는 혼자 많이 걷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오후부터 걷기 시작했기 때문에 얼마 못 걸을 것 같았는데, 거의 17km 정도를 걸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이곳 엘간소다.

이곳 알베르게는 사설로 운영되는 곳이다. 

마을이 아주 작아서 근처에 마땅히 저녁 먹을 곳도 없었다. 

그런데 알베르게가 참 마음에 든다. 

입구 인테리어도 편안하고 우리들이 함께 자게 될 방이 특히 마음에 든다. 



단층 침대가 6개가 널찍하게 놓여있고 가운데에는 거실처럼 작은 홀도 있는 2층의 다락방 공간이었다. 침대시트의 색깔도 화려했고, 무엇보다도 모두가 아래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모두들 마음에 들었는지, 우리 모두는 각자 마음에 드는 색깔의 침대에 가서 신나는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그저 단층침대에서 잔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큰 만족과 행복감을 가졌다.




오늘은 나와 커터가 저녁을 만들기로 했다.

근처에 아주 작은 슈퍼가 있었다. 크기라야 겨우 1평 정도였는데, 바게트와 과일 파스타 등 저녁거리 등을 두루 갖추었다.

커터와 나는 파스타와 수프 그리고 바게트와 와인으로 저녁을 해 보기로 했다. 

장을 보고 금액은 동일하게 나누기로 했다.

막상 파스타를 만들고 보니, 소스가 많이 모자랐고 수프는 많이 짰다.

하지만 모두들 맛있게 먹어주었다. 환상적인 맛이라며.^^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처럼 근사하지 않고,

와인 잔이 없어서 플라스틱 컵에 와인을 따르고,

소스가 부족해서 밍밍한 파스타를 앞에 두었지만,

그저 아름다운 침대가 있고, 

저녁 먹을 공간이 있고,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애틋하게 바라보는 우리들 마음 가득하기에,

그 어느 식당의 필그림 메뉴보다 훌륭한 저녁식사였다.


우린 정말 행복했다.


2015년 9월 13일 엘간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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