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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샘 Mar 02. 2023

허름한 우리의 오아시스

#23일 차, 범상치 않은 고원 위의 카페

우리가 언제나 타운이 나오나 궁금해하며,
힘들고 지친 마음이 막 차 올라,
아, 쉬고 싶다! 했을 때,
바로 그때 나타난 카페였다.



Vilar des mazarife --> San justo de la vega





오늘의 목표는 사실 아스토르가까지였다

하지만 아스토르가를 3km 정도 남겨놓고 이곳에 머물렀다.


모두들 힘든 상태였는데, 우리가 머물고자 하는 알베르게가 꽉 찼다.

그래서 조금 더 걸어 새로 지은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도착시간은 5시 10분쯤.

하지만 이 마저도 잡지 못할 뻔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 일행이 좀 많아 나, 캐시, 잔, 에바, 도미니크, 커터까지 머물 수 있는 6개의 베드가 없다고 한다.

알베르게 주인이 영어가 원활하지 않아 대화도 쉽지 않았다.

에바가 스페인어로 겨우 알베르게 주인과 이야기를 해서,

본인은 다른 알베르게의 싱글 룸을 잡고 우리 5명을 머물게 해 주었다.

아주 좁지만 그럭저럭 지내야 한다.




오전엔 힘차게 걸었다.

잔과 함께 걸었는데 잔은 여전히 '데모크래틱'이 완전하지 않은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공산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고 본인은 정말 자본주의가 낳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불평등한 이민자들의 문제 그리고 bio genetic이라고 했는데,

생명을 함부로 재생산할 수 있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좀 더 문제에 깊게 접근하고 싶어, 꾸준히 철학을 공부한다고 했다.

커뮤니즘에 관한 책도 많이 읽어왔다고.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가장 극단적인 공산주의인 나라인 중국이 가장 자본주의적인 행동들을 보인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나는 잔이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참 좋아 보인다고 응원했다.


어쩌다 보니 에바와는 분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독일과 한국이 비슷한 분단국가였던 점 때문에 에바도 관심이 많았다.

나는 통일을 원한다. 아무리 통일 비용이 들더라도 통일은 필요하다고 했고, 에바도 거기에 동의했다. 하지만 통일 후에 정말로 너무 많은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나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일반 국민들은 서로 교류하기를 원하는데,

정부가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긴장분위기를 일부러 이용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햇볕정책을 통해 서로 교류를 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없다고, 현재의 정부는 그렇게 못한다고.

에바가 햇볕정책이 뭐냐고 궁금해하기에 이솝우화의 햇볕이 바람을 이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가 된다고 했다.

내가 너무 과격했나?



중간쯤 점심식사를 하며 오늘의 목적지를 어떻게 정할지를 논하다가 헝가리에서 젊은 여자를 만나 함께 점심을 먹게 되었다. 오며 가며 만났던 그녀도 베드버그로 고생한 것을 잘 알기에 마음이 쓰였다. 혼자서 밥을 먹는 걸 보고, 우리 일행이 함께 걷자고 제안했고, 이후 함께 걷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커터. ( 캐시랑 같은 뜻이란다 )

나이는 27살이고, 공부를 하다가 중간에 마음에 안 들어 다시 다른 공부를 시작했단다.

지금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이 싫어 까미노로 왔다고.

자기는 자연이 너무 좋다고 했다.




이곳 알베르게에 도착하기 전 광활하고 긴 메세타 지역을 걷게 되었다.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더 아름다웠던 것은,

그 광활한 고원 한가운데에,

우리가 언제나 타운이 나오나 궁금해하며, 힘들고 지친 마음이 막 차 올라,

아, 쉬고 싶다! 했을 때,

바로 그때 나타난 카페였다.

도네이션 카페다.


집시처럼 생긴 커플이 근처 농장에서 딴 과일들과 커피, 와인, 과자 등을 팔고 있었다.

뭐 없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1유로를 도네이션 함에 넣고, 바나나를 하나 사 먹었다.

그랬더니, 옆에 무화과가 잔뜩 든 바구니가 보였다.

예사롭지 않은 주인은 무화과를 먹으란다.

한 입 베어 무니 정말 달콤하고 맛있었다.

조그만 무화과였다. 자꾸만 손이 갔다.

하나, 둘 먹다가 또 하나, 둘 먹는다.


어떤 이들은 포도주를 한 잔 마시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커피를 한 잔 먹기도 하고,

우리 일행은 오렌지, 바나나, 사과, 계란 등 정말 꿀맛과 꿀 휴식을 이곳에게 누렸다.

그 집시 커플 주인들은 순례자들이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 관심이 없는 듯,

자기들끼리 앉아서 여자는 담배를 피우며, 무언가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옷차림이며 머리스타일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은 차도 없었다.

거기서 자는 것 같았는데,

화장실도 없었고 그저 침대같이 보이는 매트와 방이란 걸 구분하기 위한 허름한 천막이 걸쳐져 있을 뿐이었다.




까미노 중간에서 이처럼 운영되는 카페나 상점들은 대부분 도네이션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오늘 만난 카페는 정말 이색적이었다.

막말로 하면 옷도 거지처럼 입었고, 판매대도 좀 더러웠지만,

무척이나 운치 있었다.

뭐라 표현해야 할까? ^^

영어로는 그저 interesting 하다고 표현하면 되는데.


이들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카페의 주인들은 대부분 참으로 소박하다.

그저, 과일 몇 개 놓고 도네이션 함 하나 놓고 옆에서 무심히 책을 읽기도 한다.

또 어떤 곳은 글만 덜렁 써놓은 곳도 있다.


보통은 1유로를 넣고 먹고 싶은 것 하나를 집어 든다.

어떤 카페는 꽤 널찍한 집과 마당을 갖춘 곳도 있다.

그리고 그곳은 마치 순례자들끼리 소통하는 공간처럼 함께 만나 인사를 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때로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는 곳도 있다.

물론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고, 장사를 목적으로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도 있다.

우리는 그런 곳은 거의 그냥 지나치는데,

이렇게 따뜻한 도네이션 카페에는 간혹 들러 조그만 먹을거리를 산다.




그런 곳은 때로 우리가 정말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곳일 때가 많다.

하루에 20여 km를 걷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 나는 어깨가 너무 아파서 잠깐 쉬고 싶을 때가 있을 때, 그런 도네이션 카페를 만나면 너무나 반갑다.

때로 너무나 갈증이 났는데, 생각지도 못한 모퉁이에서 무인으로 사과주스를 판매하는 곳을 만나면 정말 고맙다.


까미노가 우리에게 의미 있어지는 순간이고,

까미노에서 감사함을 배우는 순간이다.



2015년 9월 12일, 산 유스토 데 라 베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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