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차, 에바와 헤어지다
도미니크와 에바가 혼자 걷던 순간을 아주 정확히 기억한다.
그렇게 멀리서 눈에 들어왔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어느 순간 우리가 일행이 되었던 데에는 또 그만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왔으나, 소나기가 내려 알베르게에서 기다렸다.
이윽고 소나기가 멈춰서 나왔으나, 여전히 걷기는 불편해서 일단 알베르게 건너편 카페로 들어갔다.
아침으로 카페오레와 크루아상을 먹었다. 순전히 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침을 먹으며 시간을 좀 보내고 나니, 점점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해서 얼마 안 되어 에바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
늘 친절하게 대해주고 영어도 듣기 쉽도록 이야기해 주고 나의 부족한 영어를 잘 이해해 주던 정말 고마운 에바였다.
갑자기 서운해졌다.
에바는 원래 짧은 일정으로 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는 부르고스에서 까미노를 시작했고 내년에 또 온단다.
그녀는 가족들과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긴 휴가를 내지 않는다고 했다.
작년에 이미 한번 걸었던 경험 때문인지, 에바는 다른 사람들보다 짐이 많지 않았으나,
꼭 필요한 준비물은 확실히 잘 챙겨 왔다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작은 배낭에 비에 대비한 판초며,
베드버그에 대비한 얇은 매트덮개
그리고 근육통에 대비한 연고까지…….
그리고 에바는 남다르게 따뜻했다.
함께 걷는 일행들 한 명 한 명에게 늘 세심하게 안부를 건넸을뿐더러,
각자가 가진 장점을 들춰내 주곤 했다.
거의 일주일간 에바와 지내면서 에바의 아이폰 카메라가 문제가 많아 그녀의 사진을 좀 찍어주었는데,
그녀는 나보고 정말 아름다운 구도로 사진을 찍는다며 칭찬을 해 주었다.
사실, 나 또한 늘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까미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다들 그렇게 하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에바는 그렇게 내겐 유난히 따뜻한 큰 이모 같았다. 그래서 에바가 떠난 자리가 많이 서운했다.
만남과 헤어짐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늘 일어난다.
처음 에바를 보았던 때가 기억난다. 에바는 혼자 우리 앞에 걸어갈 때도 있었고, 우리 뒤에 걸어갈 때도 있었다.
한쪽 팔에 유난히 큰 혹이 있어, 눈에 뜨였었다.
그리고 팔다리와 얼굴에 주름도 많아, 나이 많은 할머니라고 여겼다. 걸을 때도 스틱 하나에 의지하며, 천천히 힘겹게 걷는 것 같이 보였었다.
산티아고 길을 걷다 보면, 그저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들이 있다.
나에겐 도미니크와 에바가 혼자 걷던 순간을 아주 정확히 기억한다.
그렇게 멀리서 눈에 들어왔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어느 순간 우리가 일행이 되었던 데에는 또 그만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삶의 순간순간이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귀촌을 한 것도,
대안학교 교사가 된 것도,
어느 땐가 교사연수 때 다른 대안학교 교사를 만나 산티아고 경험을 듣게 되었던 것도,
오늘 내가 산티아고 길을 걷게 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의 순간순간은 어찌 보면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소중한 인연은 그저 노력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삶의 인연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고맙다…….
내가 만난 나의 인연의 고리에 있는 분들에게…….
내가 줄리라고 불렀던 독일 젊은이의 이름은 엄밀히 독일어로 하면 율리아라고 한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율리아로 부르기로 했다.
엊그제부터 합류한 율리아는 늘 쾌활하다.
에바가 독일인이다 보니 서로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우리와 함께 걷게 된 것이다.
호텔에서 일했기 때문인지 영어를 아주 잘했고,
무엇보다 늘 밝은 얼굴로 늘 큰소리로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었다.
다만, 쉴 때마다 꺼내드는 담배로 인해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되긴 했다.
마침 비가 거의 오지 않아 원래 목표로 한 곳을 지나 페레헤까지 왔다.
이제 거의 막바지이기도 하고,
어제 비가 와서 많이 걷지 못한 데에 대한 보상이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우리들은 오늘 거의 30km 정도를 걸었다. 마지막에는 좀 많이 힘들었다.
이제, 200km도 남지 않았다
나는 날이 갈수록 잘 먹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필그림메뉴의 양이 너무 많아 무척 부담스러웠고, 남기기도 했는데, 요즘엔 싹싹 맛있게 남기지 않고 잘 먹는다.
오히려 산티아고를 걷다가 살찐 최초의 사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늘 배가 고프고, 또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재미가 크다.
매일 거의 다른 음식을 먹어보는 데도 늘 새롭기만 하다.
오늘은 걷는 중에 포도밭을 많이 지났다.
포도를 수확하고 있는 농부들도 보였다.
살짝 포도송이를 따서 먹으니 너무나 맛있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사이로 아름다운 무지개를 본 것도 좋은 기억이다.^^
2015년 9월 16일 파레헤에서